하늘 아래 같은 불륜은 없다
사랑이라는 허상, 결혼이라는 허들, 관계라는 모래성을 내포한 작품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불륜만큼 닳고 닳은 드라마 소재가 또 있을까. 그런데 또 이만큼 매번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도 드물다. 1월19일 1~2화 공개를 시작으로 매주 두 편씩 새 에피소드를 선보인 티빙 오리지널 《LTNS》는 불륜 커플의 불순한 작태를 치밀하게 쫓는 부부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의 추적을 중심에 둔다. 'Long Time No Sex'를 줄인 제목이 말해 주듯 소원해진 부부는 관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윤희에게》(2019) 임대형 감독, 《소공녀》(2018) 전고운 감독이 '프리티 빅브라더스'라는 범상치 않은 팀명으로 의기투합해 공동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표현 수위도, 대사도, 연출도 모든 것이 상상 그 이상이다. 시청 시 '후방주의'가 필수인 이 6부작 시리즈의 매운맛은 예상보다 깊고 풍성하다.
불륜으로 돈을 버는 법
여느 커플이 그렇듯 우진과 사무엘의 시작 역시 불타올랐다. 그러나 결혼 생활 5년 차, 눈만 마주쳐도 속옷부터 벗어젖히기 바쁘던 이들에게서 고물가 시대의 은행 대출 이자와 남는 건 피로뿐인 하루하루는 섹스를 깨끗이 앗아갔다. 밖에서 종일 택시를 모는 사무엘이 커피 한잔 사 마시는 것에도 예민할 만큼 빠듯한 살림인데, 설상가상 자연재해까지 덮쳤다. 운전기사의 차가 폭우에 침수되면 어쩌란 말인가. 돌파구 없던 부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불륜은 돈이 된다'는 깨달음이다.
사무엘의 친구 정수(이학주)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우진은 도의적 차원에서 그의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경고한다. 이때 정수가 돈으로 입막음을 한 것이 결정적이다. 통장에 3000만원이 찍히는 순간, 호텔리어로 일하며 목격한 수많은 불륜 커플들의 블랙리스트를 손에 쥐고 있던 우진에게는 전에 없던 시동이 걸린다. 불륜 커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것. 매일같이 볶음김치에 쌀밥만 간신히 먹는 곤궁한 생활을 청산할 묘책이다.
사연 없는 불륜은 없다. "넌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사랑이 두 개일 수가 있어. 명심해라. 사랑은 두 개까지야. 세 개부터는 사랑이 아니야." 정수의 정성스러운 헛소리를 시작으로 우진과 사무엘은 수많은 불륜 커플의 사정을 보고 듣는다. 불륜 사실 폭로 예고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다들 비루하다는 공통점으로 수렴한다. 요구대로 돈을 내놓거나 각자의 사정대로 통사정을 하거나.
당사자들만이 사랑임을 주장하는 온갖 불륜의 면면은 시리즈의 중반부까지 야릇한 흥미와 관음적 재미를 견인하며 펼쳐진다. 대사와 상황 모두 고점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어느덧 슬슬 감도는 씁쓸함은 모든 인물이 하나같이 치졸하다는 데서 나온다. 하우스 푸어 커플이 어딘가 어설픈 추적으로 생활비 벌기에 여념이 없는 한편, 호텔에서는 어떻게든 숙박비를 깎으려 애쓰는 불륜 커플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진다. 높은 이율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저축은행 직원 불륜 커플은 점심시간을 쪼개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햄버거를 입에 문 채 비좁고 불편한 섹스를 감수한다. 등산하다 눈이 맞은 나이 지긋한 이들은 생애 처음 찾아온 로맨스로 자신들의 관계를 포장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불륜일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어복쟁반을 요구하는 시부모의 전화를 받자마자 불륜 상대를 밀쳐내고 조신한 며느리 모드로 다시 돌입하는 사람도 있다. 불륜은 미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진과 사무엘 커플은 응원받아 마땅한가. 타인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이들도 치졸하긴 마찬가지다. 우진과 사무엘은 로빈 훗 같은 의적이 아니다. "남들 뒤꽁무니나 캐는 선생 인생도 참 딱하다"는 소리나 듣는 처지다. 그렇게 번 돈이 부부의 인생을 역전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대출 이자에 보태고 가족 모임에서 생색 좀 내는 데 쓰이거나, 밥상에 단백질 반찬 하나 더 올리고 무더위에 에어컨을 마음 편하게 트는 정도에 그친다. 《LTNS》에서 펼쳐지는 19금 추적 소동은 단순히 자극을 좇는 설정만은 아니다. 짐짓 다들 별일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상성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끝없이 곤궁하고 치졸한 삶으로 몰아넣는가. 이 시리즈의 불륜은 삶의 이면을 보게 한다.
르포에 가까운 현실적 풍경
'생활 밀착형'은 여느 작품에도 흔하게 붙는 말이지만 《LTNS》야말로 진정 그 수식을 가질 자격이 있다. 현실적 섹스와 애정, 결혼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며 발생하는 관계의 그래프, 현실의 젊은 세대가 마주하는 돈 문제는 불륜의 포장지로 싸인 이 시리즈를 추동하는 진짜 핵심이다. 우진과 사무엘의 결혼은 단순히 극의 배경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애초에 이들의 작전이 시작된 것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구입했지만 1억5000만원이나 뚝 떨어진 집값을 메우려는 이유에서였다.
대출 이자 내기에도 빠듯한 살림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언감생심이다. 설령 낳아도 답이 없다는 것은 우진의 언니인 정아(강진아)의 상황이 말해 준다.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자식을 제대로 뒷바라지하려면 각티슈 뽑아 쓰듯 돈이 필요할 것이 빤하다. 콩쿠르에서 딸이 제발 또 우승하지 않기를 바라며 "난 쟤가 너무 징그러워"라고 말하는 심정은 언뜻 양육자의 냉정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들리지만 생각해 볼수록 다분히 현실적이다. 돈도, 아이도, 섹스도 의미가 없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포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끝도 없이 행복을 유예하는 젊은 세대의 비극적 삶은 이렇게 완성된다. 현실에 기반한 풍경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공감은,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돈을 버는 커플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의 크기를 점차 넘어선다.
각기 다른 불륜 커플들의 면면이 계속 소개되는 구성인가 싶었던 시리즈는 5화, 정확하게는 의문의 여성에게 전화를 거는 사무엘의 모습이 담긴 4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점으로 놀라운 변화를 맞는다. 매일 뜨거운 불륜 커플을 좇으며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거는 듯 보였던 우진과 사무엘의 행동 패턴은 예상치 못한 급커브를 그린다. 둘은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진정 중요한 맥락을 잃어버린 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부에게 변곡점이 됐던 2년 전 어느 날로 돌아가 모든 것이 폭발하는 싸움, 끓어오르는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추격전까지 폭우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마지막 화의 풍경은 점입가경이다. 귀엽고 경쾌한 분위기가 무기인 줄 알았던 《LTNS》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허상, 결혼이라는 허들, 관계라는 모래성을 향해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돌진한다.
젊은 두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신선한 시리즈를 더욱 값진 결과물로 완성한 것은 배우들의 힘이다. 《소공녀》, 안재홍이 연출한 단편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2020)에 이어 세 번째로 커플 연기를 선보인 이솜과 안재홍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다. 앞으로 더 많은 찬사와 기회가 주어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 회차 등장하는 불륜 커플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래저래 제대로 된 '물건' 하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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