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등반 나선 KIA 타이거즈, 시즌 출발하기도 전에 ‘날벼락’
올 시즌 우승후보 ‘빅3’ 꼽힌 KIA, 분위기 수습에 전전긍긍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시즌 준비에 막 들어가려던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그렇다. KIA 선수단은 1월29일(코치진), 30일(선수) 이틀에 걸쳐 전지훈련 장소인 호주 캔버라로 떠났다. 하지만 정작 사령탑인 김종국 감독은 함께하지 못했다. 그는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돼 28일 전격적으로 직무가 정지됐고, 29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계약이 해지됐다. KIA 관계자는 "2년 연속 팀이 어수선하다"며 한탄했다.
시작은 장정석 전 KIA 단장의 뒷돈 요구 파문이었다. 장 전 단장은 2022 시즌 도중 FA(자유계약)를 앞두고 있던 박동원(현 LG 트윈스)에게 뒷돈을 요구했다. 계약 조건을 맞춰줄 테니 자신에게도 일정액을 달라는 것이었다. 박동원은 이 같은 내용을 녹음했고, LG로 이적한 후 프로야구선수협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장정석 전 단장이 쏘아올린 공에 불똥
현역 단장의 뒷돈 요구 사실이 입길에 오르자 장 단장은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KIA 구단은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장 단장을 해임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은 1주일 후 검찰에 장 전 단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고,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수사부는 사건을 배당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3~4월 벌어진 일이었다. 꼭 그것 때문만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난해 KIA는 5강 전력이 충분하다는 평가에도 중하위권을 맴돌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 장정석 전 단장의 뒷돈 요구와 관련한 9개월여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의혹이 추가로 드러났다. 김종국 전 감독의 금품수수 혐의였다. 맨 처음 관련 사실이 알려졌을 때는 아마추어나 FA 선수 계약 등에 따른 돈거래일 것으로 짐작됐다. 때마침 독립야구단의 고위 간부가 선수에게 프로구단 입단을 미끼로 고액의 금품을 받아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김 전 감독은 구단 광고계약과 관련된 청탁 의혹을 받고 있었다. 구단 광고 및 야구장 입점을 도와주는 대가로 A 커피 업체로부터 1억원대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 하지만 구단 광고 영업은 마케팅 부서의 몫이다. 감독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다. 김 전 감독이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밝힌 이유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1월30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금품수수 시기 이전의 구단에 대한 광고 후원 실태와 후원 업체의 광고 후원 내역·시기 등 일련의 후원 과정 및 피의자들의 관여 행위 등을 살펴볼 때 수수 금품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인지 아닌지에 관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김종국 전 감독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수장을 잃은 KIA는 혼돈 속에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른 시일 안에 새로운 사령탑을 임명할 계획이지만 내부 승진이 아닌 이상 후임 감독 선임까지는 2~3주가 소요될 전망이다. 프로야구단 감독 선임에는 모그룹의 승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KIA 감독 자리를 놓고 내부로는 진갑용 수석코치, 김상훈 배터리 코치 등이 거론되고 있고, 외부로는 선동열 전 KIA 감독, 이종범 전 LG 코치 등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 추스를 강력한 지도력 필요
올 시즌 KIA는 지난해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LG, KT 위즈와 함께 3강으로 꼽히고 있다. 비수도권 구단의 한 감독은 "KIA는 지난해에도 선수 부상만 없었다면 우승까지 가능했던 전력이다. 올해도 멤버 구성상 우승 후보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전력의 짜임새가 좋다는 얘기다.
KIA의 전력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선발 로테이션은 5선발까지 이미 정해져 있다.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 투수 윌 크로우, 제임스 네일과 함께 양현종, 이의리, 윤영철이 5인 로테이션으로 돌아간다. 이들을 뒷받침해 황동하·장민기·김현수와 신인 조대현 등이 예비 선발로 가능성을 테스트받는다. 다른 구단들은 스프링캠프 동안 4~5선발을 놓고 고민하지만 KIA는 여유롭게 6~8선발을 추린다. 외국인 투수 활약 여부가 문제지만 이들이 각각 10승 이상씩만 책임져준다면 토종 선발진은 여느 구단과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구성이다.
공격력 또한 무시 못 한다. 올해 주장을 맡은 나성범을 비롯해 베테랑 최형우가 든든하게 타선을 받치고 있다. 나성범은 지난해 햄스트링과 종아리 부상 탓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58경기에 나와 타율 0.365, 18홈런 57타점을 기록했다. '건강한 나성범'만큼 상대팀에 두려운 존재도 없다.
최형우 또한 건재하다. 최형우는 지난해 12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2, 17홈런 81타점의 성적을 냈다. 이를 인정받아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계약기간 1+1년에 연봉 20억원, 옵션 2억원 등 총액 22억원에 계약을 마쳤다. 그만큼 KIA 구단이 최형우의 성실함을 믿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 단계 도약한 유격수 박찬호도 든든하다. 여기에 서건창을 새롭게 영입하면서 내야 뎁스도 두터워졌다.
대부분의 포지션이 결정됐으나 1루수는 아직 경쟁이 필요하다. 김종국 전 감독이 가장 신경 썼던 부분도 1루수다. 감독이 경질됐어도 KIA 코칭스태프는 캔버라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1루 포지션을 제일 많이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변우혁·황대인·이우성 등이 1루를 놓고 다툰다. 지난해 11월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엄지 골절상을 당한 내야수 김도영은 4개월 재활 진단을 받았지만 캠프에 동행한다. 부상 회복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 김도영은 늦어도 4월초까지는 1군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KIA는 1~2년 내 챔피언 자리를 노려야만 하는 구단이다. 최형우·양현종 등 베테랑들의 나이가 있기 때문이다. 심재학 KIA 단장도 "1~2년 내 우승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던 차에 이번 사건이 터졌다. 결국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빨리 추스르는 게 관건이다. 그나마 호주에서 진행되는 1차 캠프는 체력·기술 훈련에 중점을 둔다. 이는 코치들의 몫으로 감독의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연습경기 위주로 진행되는 2차 캠프(일본 오키나와) 때는 감독의 지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올 시즌 구단의 방향성도 이때 정해진다. KIA의 빠른 감독 선임이 필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호랑이의 발톱을 세워줄 사령탑은 과연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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