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다 암초 만난 김동준, 과거 최수종 연기에 답이 있다('고려거란전쟁')

‘고려거란전쟁’, 김동준의 현종이 한계에 부딪친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제국의 아이들은 하염없이 눈물이 나는 서글픈 흑역사 무대를 많이 남기기는 했다. 그럼에도 팀에서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황광희는 초반 비호감 예능 게스트에서 이제는 예능과 교양을 오가는 방송인이 됐다. 또 임시완과 박형식이라는 두 명의 주연급 남자배우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반면 외모적으로나 피지컬적으로 가장 빛났던 김동준은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제국의 아이들이 어둠의 자식들이었을 때, 김동준은 수많은 예능에서 운동돌과 남자 한가인으로 분장하며 팀의 이름을 알렸다. 제국의 아이들이 대중 인지도가 올라간 데는 김동준의 노력 탓이 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김동준은 배우로도 여러 드라마에 얼굴을 비췄지만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는 모범적인 배우였고 정석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그런 연기 스타일이 트렌디하진 않았다. 대중들은 젊은 남자 배우에게 좀 더 생기 있는 모습을 원했다. 생활연기에 가깝거나 남자친구 같은 달콤함 말이다. 같은 그룹의 임시완과 박형식은 배우로서 그에 어울리는 길을 찾았다. 임시완은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생>을 거치면서 젊은 성격파 배우의 길을 찾아갔다. 박형식은 예능에서 귀여운 얼굴로 눈도장을 찍고 이후 몇몇 로맨틱코미디를 성공시키면서 로맨틱 가이의 이미지를 얻었다.

같은 시기에 김동준은 여전히 한가인 닮은 아이돌이었다. 그의 히트작이라면 변비약 '메이킨' CF 정도. 그 후에 김동준은 남자 한가인과 함께 메이킨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의 김동준은 달랐다. 김동준은 고려의 왕 현종으로서의 존재감을 지난 연말까지 훌륭하게 보여줬다. 최수종을 비롯해 베테랑 사극 배우들과 함께하는 장면에서도 상대배우를 압도하지는 못해도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았다. 정극 사극에서 연기는 기본기가 중요하고 사극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김동준이 현대극에서 보여준 기본기에 충실한 연기는 오히려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득이 된 셈이다. 하지만 처음 캐스팅이 알려졌을 때 김동준은 많은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극 초반 사찰로 도피한 철없는 왕세자로 등장한 김동준에 대해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무게감 있는 사극에 아이돌 출신의 배우를 꽂았군, 같은 반응이었다. 게다가 캐릭터 자체가 처음에는 철이 없었다.

하지만 어수룩한 왕세자가 강조(이원종)의 반란으로 엉겁결에 현종이 되면서 대중들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허수아비 왕에서 겁먹은 젊은이로, 고민 많은 왕으로 목종의 복수를 위해 무모한 용기를 보이는 모습까지. 김동준이 현종으로 짧은 기간에 보여주어야 할 연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설픈 젊은 왕 현종에 어울리는 모습을 부여주면서 대중들의 의심을 거두게 만들었다. 극의 흐름 역시 전혀 깨지지 않았다.

이후 <고려 거란 전쟁>이 사랑을 받으면서 김동준 역시 배우로서 확실한 재평가를 받았다. 드라마의 절반이 지났을 때 김동준은 지금까지 보여준 성실함을 바탕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고려 거란 전쟁>은 전쟁 사극인 동시에 성숙한 황제로 성장해 가는 현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절반 이후의 <고려 거란 전쟁>에서 김동준이 현종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새해 들어 문제가 생겼다. 일단 현종의 매력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고련 거란 전쟁>이 긴박감 넘치는 전쟁이 끝난 후 이야기는 황실과 호족들의 다툼으로 변했다. 이 상황에서 드라마는 김은부(조승연)의 딸 원성(하승리)과 원정왕후(이시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현종은 대의를 추진하는 황제가 아니라 생각 없는 고집쟁이나 바람둥이처럼 보였다. 종종 술 취한 모습이나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모습만이 이어질 따름이다. 결국 사건의 주요인물인 현종이 억지스러운 전개를 위한 흔한 사극의 빌런으로 소비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김동준의 연기 역시 지금은 몰입을 떨어뜨리는 부분도 있다. 극 전개의 억지스러움 탓도 있지만 김동준이 그리는 현종의 취한 연기나 호통 연기도 공감은 가지 않는다. 그저 뻣뻣할 뿐 왕의 고뇌도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강감찬으로 등장하는 최수종의 과거 사도세자 연기를 보면, 권력 속에 흔들리는 인물의 사극 연기가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동준은 <고려 거란 전쟁>에서 사극 연기의 젊은 조연으로 입지는 다졌다. 하지만 격정 속에 흔들리는 사극 주인공의 섬세하고 광적인 존재감까지 드러내기는 아직 미숙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스타제국, 명인제약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