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내 남편과 관람해 줘 : 2천년 전 타임슬립 전시, 폼페이 유물전"

2024. 2. 3. 14: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얼마 전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인기 급상승 중인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내 남편과 결혼해줘'.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날 살해당한 여주인공 강지원.

그런데 눈을 떠보니 10년 전입니다.

한마디로 과거로의 '타임슬립'이 이어진 건데요.

그런데 이 드라마처럼 타임슬립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있습니다.

무려 2천년 전으로 말이지요.

바로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인데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프레스코 벽화, 거대 조각상 등 서양 문화의 원형을 느낄 수 있는 그리스, 로마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폼페이'가 펼져집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를 기획한 '황무늬 큐레이터'를 만났습니다.

▮ 아트홀릭 독자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시기획사 씨씨오씨의 황무늬 큐레이터라고 합니다.

씨씨오씨에서 전시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고, 자료나 글을 정리하는 아카이빙 업무부터 전시 홍보 마케팅, 디자인, 해외 소통까지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2년 더현대 서울에서 열렸던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이 씨씨오씨에서의 첫 프로젝트였는데요. 오랜만에 더현대 서울에서 "폼페이 유물전"을 열게 되어 기쁩니다.

▮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는 어떤 전시인가요.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는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의 해인 2024년을 맞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직접 큐레이팅한 폼페이의 아름다운 유물 127점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입니다.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폼페이 유물전인 만큼 이전의 전시들과 다르게 주제전이라는 게 주목할 만한 점인데요.

폼페이 시민들의 호사스러운 삶, 신화 속 사랑, 폼페이에서 최고로 여겨지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어, 프레스코 벽화, 대리석 조각,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면서도 현재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폼페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유물 속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전시를 보며 궁금했던 점인데요. 서기 79년 8월 고대 도시 폼페이. 이곳의 유물이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타임캡슐’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당시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던 순간, 폼페이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 도시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되었는데요. 헤르쿨라네움이라는 도시를 예로 들면, 지진으로 건물은 모두 부서지고, 화산쇄설물로 지상의 모든 것들이 불탔으며, 30m가 넘는 화산재에 덮여 지도에서 도시 자체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는 폭발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비교적 적었고, 화산재도 3m 정도만 쌓여 도시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죠. 폼페이의 유물이 보존 상태가 좋은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고대 폼페이는 부유한 계층이 머물던 휴양 도시였던 만큼 로마 양식뿐만 아니라 그리스 양식까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폼페이 시민들의 높은 생활 수준도 엿볼 수 있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유물들은 당시 유행하던 예술 양식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 남녀노소 폼페이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에겐 이번 전시가 더 특별할 거라 생각됩니다. 전시 구성 이야기로 가보죠.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전시는 크게 5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 ‘폼페이인들의 위대한 시대를 꿈꾸며’에서는 도시 폼페이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명한 건축물을 통해 폼페이 시민들의 높은 생활 수준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섹션 ‘폼페이에서 찾아낸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사랑’에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조각상과 유물 속에 녹여낸 인간과 신의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세 번째 섹션 ‘폼페이의 삶의 즐거움: 멋진 삶에 대한 로마인의 사랑’에서는 술의 신이자 유흥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등장하는 유물을 통해 폼페이 시민들의 연회 문화, 여가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흥미롭네요. 네 번째 섹션에선 어떤 것들을 엿볼 수 있나요?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네 번째 섹션 ‘폼페이 고대 예술의 미 개념’에서는 위생에 민감하고 몸단장을 즐겼던 폼페이 사람들의 치장 도구들, 장신구, 향수병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섹션 ‘다시 찾은 폼페이’에서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폼페이의 모습과 이머시브 영상으로 다시 재현한 폼페이 최후의 순간이 펼쳐집니다.

처음 전시 구성을 보았을 때 한국 정서에 아주 딱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폼페이와 주변 도시들의 맥락에서부터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등 그리스 로마 신들로 풀어낸 폼페이 이야기, 그리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발굴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심도 있는 협의를 통해 한국 정서에 맞도록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해 이번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 앞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만나 본 조각상도 말씀하셨지만, 이를 보고 2천년 전이지만 당시의 미적 감각이 놀랍다는 반응인데요.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조각상은 무엇일까요.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가장 큰 대리석 조각상들에 유리 덮개가 없습니다. 이는 보존 상태가 좋은 유물에 대한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 관람객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관람객의 반응을 보면 이처럼 정교한 조각을 어떠한 가림막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가장 인기 있는 조각들은 거대한 대리석 조각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가니메데와 독수리’라는 대리석 조각상입니다.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 ‘가니메데와 독수리’가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도 동시대 인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었던 트로이아 왕자 가니메데는 이 조각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니메데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나머지 제우스 신의 은총을 받아 신들의 술 시종을 드는 불멸의 인간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에서 독수리는 제우스가 변신한 모습이며 당시 가니메데를 묘사한 다른 조각상들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고 합니다.

가니메데 발치에서 자기 주인을 우러러보는 개의 표정이나 탄탄한 근육질의 육체와 나른하면서 자연스러운 자세는 폼페이 시대가 추구하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 그런가 하면 폼페이 건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이기도 하고, 이번 전시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춤추는 마이나드'. 어떤 의미가 담긴 작품인가요.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마이나드는 술과 유흥의 신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추종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황홀경에 빠져서 격렬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보통 군집의 양상을 보이기에 이들 무리를 부르는 마이나데스가 더 익숙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프레스코 벽화에서 마이나드는 비칠 듯 얇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를 입고 있고 베일이 몸통을 휘감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왼손에는 티르소스를, 오른손에는 탬버린을 들고 있습니다. 디오니소스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티르소스는 아이비 덩굴을 두르고 끝에 솔방울을 단 지팡이를 일컫습니다.

▮ '춤추는 마이나드'가 메인 작품이 된 계기가 있었나요?

10년 만에 선보이는 폼페이 유물전을 준비하면서, 폼페이라는 콘텐츠에 대해 국내 관람객들이 가지는 지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팬데믹 시기를 거쳤던 것이 큰 영향이겠죠.

우리나라 주변에서 가장 최근에 열렸던 폼페이 유물전은 도쿄에서였는데요. 유물을 내세우기보다는 베수비오 화산이나 폼페이 도시 전경을 강조하며 폭발이나 멸망과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마케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전시는 보다 즐겁고, 유물 그 자체를 향유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감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인 ‘춤추는 마이나드’를 전시 메인 이미지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 전시를 준비하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이번 전시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기획하여 아시아 투어 중인 전시를 한국에 유치하게 된 사례입니다.

서울 이전에는 베이징에서 하고 있었기에 항공 운송을 통해 한국에 유물을 들여오는 일정이었는데, 유물이 공항으로 이동하는 새벽에 하필 안개가 잔뜩 끼어 35개의 크레이트를 나눠 실은 트럭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심지어 화물 항공편도 하루 연기되었는데요.

새해를 맞아 물류량이 많아져 자칫하면 유물이 계획된 일정에 도착하지 못 할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유물 설치 하루 전 유물을 실은 항공편이 한국에 도착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 마음고생하셨겠네요. 그만큼 전시작들에 대한 애정도 크실 텐데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 하나 추천해 주세요.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소개하고 싶은 유물은 ‘사모바르’입니다.

아우텝사라고도 불리며 음료를 데우거나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쓰이는 용기로, 용기 아래쪽에 숯을 놓아 용기 내 음료를 가열하고 몸통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음료를 따랐습니다. 동물의 다리 모양을 한 받침이 몸통을 받치고 있으며 양쪽에 소용돌이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쿠리어와 함께 유물 컨디션 체크를 할 때 사모바르의 내부는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가열뿐만 아니라 냉각도 가능한 구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대에서 사용하는 보온, 보냉 주전자가 2천년 전에도 있었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쉽게도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오면 사모바르의 내부를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삶을 추구했던 폼페이 시민의 생활을 상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 2천년 전의 보온, 보냉 주전자 '사모바르', 기억해 두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관람객들이 전시에서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이번 전시는 수준 높은 유물과 함께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직접 제작한 영상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 중 로마 시대 저택을 뜻하는 ‘도무스’와 사람 캐스트와 함께 연출된 ‘영원함을 통해 본 아름다움의 순간’은 이머시브 영상으로 폼페이 최후의 순간을 느껴볼 수 있도록 전시장에 연출되었습니다.

‘도무스’ 영상에서는 폼페이에 있었던 저택처럼 연출된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흔들리며 무너지는 건물과 현실감 있는 폭발 음향으로 폼페이가 멸망하던 순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함을 통해 본 아름다움의 순간’은 주세페 피오렐리가 발견한 사람 캐스트로부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폼페이 시민들의 삶이 어땠을지를 상상해 구성한 이머시브 영상으로, 전시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여운을 남깁니다.

▮ 마지막으로 "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가 아트홀릭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더불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전시 전경,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2천년 전 폼페이에서의 삶을 유물 몇 조각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우리와의 작은 교집합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한 묘한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중 영광스럽게도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님이 직접 도록 내용을 감수하시고 오디오가이드 녹음도 진행하셨는데요. 덕분에 한층 재미있고 유익한 전시가 된 것 같습니다. 함께 감수에 참여하신 조은정 교수님, 강인욱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전시 관람 시 양정무 교수님의 목소리로 듣는 오디오가이드를 함께 듣는 것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전시가 시작하고 첫 주를 보내고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백화점에서 여는 유물전이라 생소한 분들도, 신선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더현대 서울이라는 핫플레이스에 오시는 만큼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를 찾아주시기를 바라며, 장소 특성상 주말에 관람하실 경우 관람객이 몰릴 수 있으니 평일에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또한, 유물에 온습도를 맞추어 전시장이 다소 덥고 습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백화점 내 물품 보관함을 이용해 주시면 편하게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 "폼페이 유물전 - 그대, 그곳에 있었다" 
장소 : 더현대 서울 6층 ALT.1(~5월 26일까지)
관람료 : 유료

(사진 제공 : CCOC)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Copyright © CJB청주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