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렇게 싸다는 일본, 골프치러 가볼까 [김경민의 도쿄 혼네]
바다만 건너면 '가성비' 골퍼 파라다이스
일본 골프장 가격이 낮은 이유
한국과 조금 다른 일본에서 골프 치기
잃어버린 30년 버틴 2200개의 골프장들 토요일의>
"많이 칠수록 많이 버는 거죠."
한국에서 온 일본 주재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로 골프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골프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일본에서 골프는 날씨 얘기와 비슷한 정도의 주제입니다. 골프 얘기를 꺼내는 게 우리나라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국에서는 "공 치세요?"라는 말이 시작되는 순간 모두가 긴장하죠. 한국에는 최근에 50만원짜리 골프장도 생겼다면서요. 웬만히 친하지 않으면 골프 한 게임 같이 하자는 말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요.
여기는 골프에 대한 대화가 한국보다는 대중적입니다. '이번에 어디 골프장에 갔는데 어떻더라' '그 골프장 그린 상태는 어떻고, 주변에 어디가 유명하더라. 꼭 가보시라'는 식으로 정보 공유가 끊이질 않습니다.
저도 일본에 와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라운드를 나갔지만 크게 뜻(?)이 없었어요. 겨우 맞은 주말인데 새벽에 겨우 깨서 나가야 하고, 음식도 비싸고, 나가면 하루 온종일이 걸리니까요.
솔직히 한국 골프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여러 이유 중에서도 한국에서 골프를 즐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비용 문제일 겁니다.
그린피, 캐디피, 카트피 등 게임비는 물론 교통비, 기름값에 식비 등을 고려하면 한 게임을 치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30만~40만원이 우습습니다. '월급쟁이'들에겐 높은 진입장벽입니다. 웬만한 국내여행 비용이잖아요.
일본을 한번 볼까요? 저는 도쿄 중심가에서 차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골프장을 자주 찾는데요. 별점 4점에 가까운 괜찮은 골프장들도 주말 기준 그린피(노캐디, 카트피 포함)는 1인당 10만원 선입니다.
일본에서는 무려 이 가격에 점심식사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나름 괜찮은 퀄리티의 돈까스, 소바, 라멘, 야키니쿠, 한국식 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를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한국보다 비싼 편입니다. 이 거리에는 교통비만 편도 기준 2만~3만원대(왕복 4만~6만원대)가 나오는데요. 보통 4인이 한 차를 타고 움직이니 이 돈을 나눠서 내면, 주말 기준 개인당 총비용은 11만~16만5000원 선에서 가능합니다.
주중의 경우에는 그린피가 주말 가격의 보통 반값이니까 훨씬 저렴합니다.
대충 계산해도 일본에서의 골프 비용은 한국의 반값 혹은 3분의 1쯤 되는 것이죠. 요즘은 또 역대급 엔저(엔화 가치 하락) 시대잖아요. 이러니 "치는 만큼 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죠.
일본 골프장이 처음부터 저렴했던 건 아닙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골프 역시 1980년대 일본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엔 지금보다 0이 하나 더 붙었단 얘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물론 그 정돈 아니지만 지금 우리나라 그린피 정도는 냈어야 했죠. 그 옛날에 말이죠. 이 때는 전체 골프장 숫자가 3000개를 넘기며 골프종주국 영국을 앞선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 경제 불황과 회원권 보유 골프 인구의 고령화, 신규 골프 유입 인구 정체, 골프 인기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며 골프의 인기가 하락했어요.
이 당시 일본 기업 신입사원들은 연수과정의 일환으로 골프를 배웠습니다. 직원들은 상사의 골프를 예약하기 위해 도쿄로부터 100㎞ 넘게 떨어진 골프장으로 달려가 길게 줄까지 서야 했다고 해요.
직원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상사를 태우고 골프장까지 2~3시간 운전하고 헉헉대며 치고, 다시 2~3시간 차로 돌아오고요. 마치 요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죠.
그러다가 불황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갑을 닫은 사람들이 골프를 끊자 회원권 가격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습니다. 프라이빗 골프장들은 도미노처럼 줄지어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콧대 높던 상당수 골프장들도 서로 손잡고 퍼블릭 프랜차이즈화하며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가격은 떨어졌고, 그 혜택(?)을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거겠네요.
일본의 퍼블릭 골프장은 노캐디가 일반적입니다.
사실 일본의 캐디들은 나이 지긋한 노인 분들이 많아 오히려 노캐디가 편하다고 하는 골퍼들도 많습니다.
보통 노캐디가 익숙해지면 골프 실력은 빠르게 성장합니다. (저는 아닙니다만...) 모든 것을 캐디가 해주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스스로 남은 거리를 재야 하고, 채를 골라야 하고, 그린에서도 직접 공을 세팅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골프 실력을 객관화하고 약점을 파악해 실력을 향상해 나갑니다.
일본에서는 거리를 불러주고 채를 골라주는 캐디가 없으므로 제대로 스코어를 내기 위해선 거리측정기나 골프용 워치를 챙기는 것은 필수입니다.
너무 신기한 건 캐디에 의한 운영이 아닌데도 라운드 시간이 기가 막히게 지켜진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선 앞 팀이 느리다, 뒤 팀이 빠르다 이런 민원이 수도 없이 들어오니 서로서로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이것 저것 신경쓸 것 많은 한국에선 저 같은 백돌이 친구들에게 골프는 거의 유산소 운동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선 심각하게 밀리지만 않는다면 빠른 진행을 보채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앞뒤 팀의 스타트 간격이 한국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 그럴 것입니다. 또 남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 문화도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조식 후 라운드를 도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본은 대체로 조식을 먹지는 않습니다. 대신 9홀 후 점심을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길게 먹습니다.
그늘 집이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는데 간단한 음료를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개념으로 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꼭 4인팀이 아닌 2~3인 플레이가 편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꼭 4인팀을 맞춰야 하는 게 불문율이잖아요.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민폐, 그런 민폐가 없습니다. 4인팀을 채우기 위해 갑작스러운 대타를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일본은 2~3인팀이 정말 흔합니다. 심지어 1인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소수팀은 골프장에 따라 약간의 요금을 더 내기도 하지만 추가 요금이 없는 골프장도 많습니다.
나리타공항이 있는 치바나 인근의 이바라키로 골프 여행을 오는 것도 좋은 선택지입니다. 나리타공항 근처에는 시설 좋고 저렴한 대형 브랜드 호텔들이 다수 모여 있습니다. 치바, 이바라키는 대표적으로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이 즐비한 지역으로, 나리타공항 인근 호텔에서 숙소를 잡아 매일 라운드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쇼핑 계획이 굳이 없는 '골프에 진심인 분'들에게는 이 방법도 좋은 대안입니다.
앞서 일본의 많은 골프장들이 1980년대에 지어졌다고 했죠? 버블경제 때 만큼 아니지만 여전히 일본에는 2200개의 골프장이 있습니다. 도쿄 인근에만 1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직접 찾아가보시면 40여년이 지난 골프장들이 좀 낡긴 했어도 관리가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기존의 것을 닦고, 조이고, 고쳐서 최대한 오래 쓰는 일본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과거의 영광으로 남은 골프장을 통해 30년 전 일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죠.
경지에 이른 일본인들의 유지·보수 능력은 '잃어버린 30년'을 살아내기 위한 어쩌면 당연한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 30년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새로운 것보다는 있는 것에 집중한 것일테죠. 장기 침체를 지나오면서 그 많은 골프장들이 망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것도 저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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