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영예는 누가 거머쥘까
장르 후보에는 인디 뮤지션 다수 올라 주목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한국의 그래미'를 표방하는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후보가 1월26일 발표됐다. 뉴진스, 빈지노, 실리카겔이 '올해의 음악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등을 비롯해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그 외 종합분야에 오른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정국, 이진아, 여유와 설빈, 카리나 네뷸라, wave to earth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이름이 보인다.
평소 음원차트 인기곡 이외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름일 것이지만 평소 음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한두 이름을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 장르 후보로 가면 이 같은 낯섦은 더더욱 심해질 텐데, 그게 결코 여러분이 음악을 듣는 데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장르 후보 대부분은 별다른 언론 노출도 받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그래미' 표방하지만…
확실히 한국대중음악상은 여러모로 여타 시상식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MAMA, MMA, GDA 등 국내 주요 시상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후보작의 면면도 그렇지만, 홈페이지에 올라온 후보 선정의 변들은 이 시상식의 성격과 진정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어떤 시상식이 후보에 오른 작품이나 아티스트의 자격에 대한 논리적인 '썰'을 따로 밝힌 적이 있던가? 자, 여기까지 글을 읽고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대성공. 하지만 불편한 지적은 지금부터다. 자, 그럼 그게 도대체 무슨 상인데? 한국대중음악상, KMA, 한대음…. 모르긴 몰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단어들일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그래미'를 표방하는 음악시상식이라는 표현은 어떨까. 그래미가 어떤 시상식인지, 미국 대중음악에서 그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든지,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다수에겐 이 역시 썩 와닿는 표현은 아닐 듯하다. 혹은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라도 그 표현 자체에 문제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그래미? 과연 누구 맘대로, 어떤 근거와 권위로 그렇게 표방할 수 있단 말인가? 진정 한국의 그래미라면 그 같은 권위와 인지도가 일반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 와닿아야 하는 게 아닐까? 모두 합당한 지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의 그래미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으나 여러 면에서 아직은 그렇지 못한 상,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가치와 의미가 더없이 높은 음악시상식이다.
듣고 좋으면 그만인, 혹은 평가하거나 토론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음악을 왜 굳이 1년 단위로 시상해야 할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실 연예나 문화 산업에서 상이라는 것은 내부자들끼리의 존중과 인정, 거기에 사기진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니 누구보다도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선배, 동료,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상을 주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다. 이것은 미국 연예 산업의 4대 시상식인 EGOT(에미·그래미·오스카·토니)에 모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들은 모두 업계 동료나 업계 임원들에 의해 결정되고 수여된다.
그런데 한대음의 경우는 좀 묘한 위치에 있다. 분명 한국의 그래미를 표방하고 있고 그런 평가를 종종 듣기도 하지만 이는 '인기투표'가 아닌 음악적 평가에 의한 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음반 업계 인사이더들이나 창작가들이 주체가 된 그래미 커미티와는 달리 한대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음악평론가다. 음악평론가나 음악제작자 혹은 창작자가 뭐 크게 다르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산업 바깥에 놓여있는 전문적 식견을 가진 대중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물론 대중이라 하기에는 음악계 내부의 논리나 정보를 비교적 잘 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단은 제작자·창작자와는 일종의 긴장감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 직업인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어 아쉬움
사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평론가들이 선정의 가장 큰 주체라는 사실은 한대음이 기본적으로 비평적 판단에 의한 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반드시 '음악성'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기준이 적용된다. 물론 평론가들에게 음악성을 판단하는 나름의 확고한 기준들은 경험과 통찰에 의해 마련돼 있는데, 가장 큰 근거는 평론가 개개인의 '안목'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한대음의 가장 중요하고도 귀한 변별점이 된다.
이미 차트의 성적이나 음반판매량으로 한 번 평가를 받은 대중음악을 다시 대중적 수치를 근거로 상을 수상하는 여타 시상식과 달리 한대음은 대중성이라는 필터링에 걸려 미처 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음악들을 호명해 낸다. 그 작업은 결코 과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많은 인디 뮤지션이나 제작자들이 한대음의 호명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중요한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것이야말로 시상식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상호작용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벌써 20년이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대음은 그 흔한 정부나 지자체의 후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별의별 기획이 다양한 이유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시상식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대음에는 불행히도 남의 일이다. 평단과 학계가 함께 노력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게 단지 시상식을 운영하는 사무국의 수완에만 의지할 일일까.
몇 년 전부터는 대관 문제로 오프라인 시상식을 열지 못하고 유튜브 생중계 방식을 택했는데, 올해는 리테일 미디어 플랫폼 프리즘 앱을 통해 신개념의 시상식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퍽 다행이다. 우리는 선진국의 앞선 문화를 부러워하지만 그 문화들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다. 미국 대중음악이 세계를 휩쓰는 것은 폭넓은 재능 풀과 아울러 시상식 및 차트 같은 기록, 아카이빙 문화가 오랜 세월 굳건히 그 명맥을 이어오기 때문이다. K팝과 한국 대중음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정말 원한다면, 한국대중음악상은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쏟아야 할 중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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