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가 선보인 '스페인의 밤'…박규희 섬세한 기타 협연

강애란 2024. 2. 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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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예술의전당…잘 준비한 음악 미식회로 '듣기의 경험' 선사
국립심포니와 기타리스트 박규희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스페인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난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다비드 라일란트 예술감독이 이끈 국립심포니 공연에서 스페인은 무궁무진한 민요와 기타라는 탄주악기, 정열적인 춤의 리듬으로 하나의 원천 역할을 했다.

이날 연주된 작품의 작곡가 샤브리에, 드뷔시, 라벨 등은 모두 프랑스 작곡가지만, 스페인 땅에 깃든 이국적인 생명력에 자극받아 명작을 탄생시켰다. 공연 프로그램은 연주자의 기량을 보여주는 초절기교의 협주곡이나 '블록버스터급' 대작 위주의 프로그램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미묘한 듣기의 경험, 아마도 그것이 키워드였을 것이다.

1부는 샤브리에의 '에스파냐'로 열렸다. 국립심포니의 연주는 산뜻하게 출발했다. 다소 여유로운 템포는 흥겨우나 굴곡이 많은 선율 라인을 드러내기에 적합했고, 스페인을 상징하는 캐스터네츠와 탬버린 등 타악기군도 적절한 강세로 흥을 불어넣었다. 지휘자 라일란트가 지닌 미덕은 강력함보다는 세심함에 있고, 영웅적인 제스처보다는 담백함으로 음악을 빚어낸다. 국립심포니는 밝고 유희적이지만 가볍지 않았고, 힘을 빼면서도 유연한 흐름을 충분히 들려줬다. 악단 전체의 응집력도 계속 나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심포니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 번째 곡으로는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기타 협주곡'을 연주했다. 원래 기타 독주는 밀로시 카라다글리치가 맡을 예정이었지만, 건강상 이유로 박규희가 대신 출연했다. 이 곡은 널리 알려진 명작이지만, 실연으로 접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품이다. 오늘날 콘서트홀 환경에서 음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기타 독주가 부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립심포니는 박규희의 밝고도 섬세한 기타 음색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연주했다. 관현악 총주가 전면에 나서 악상을 이끄는 몇몇 대목을 제외하면 악단은 대체로 차분하고도 안정적으로 독주 악기를 보좌했다.

기타는 전통적인 '반주 악기'로, 오케스트라의 솔로 악기가 선율을 맡을 때는 마치 독주 악기가 뒤바뀌는 듯한 효과가 난다. 국립심포니는 솔로와 반주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뒤바뀌는 작품의 실내악적인 성격을 제대로 붙잡았다. 박규희의 유려한 독주가 드러나도록 균형을 잘 조절했을 뿐 아니라 솔로 악기들 또한 기타의 음색, 리듬과 잘 어우러지도록 전체 중 일부로서 연주했다.

남국의 따사로움과 유쾌함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1악장이든, 고상한 애수로 유명한 2악장에서든, 고전적이지만 유머 있는 3악장이든, 박규희의 독주는 청아하고 담백했다. 무엇보다 과장된 제스처 없이 품에 안고 연주하는 탄주 악기의 친근함을 살렸다. 작품 자체에는 낭만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지만, 박규희와 라일란트는 역사가 오랜 악기인 기타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중세적, 고전적, 민속적 감성을 디테일하게 살려내 작품의 표정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기타리스트 박규희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넓은 콘서트홀에서 미묘한 색채의 변화에 집중해 귀를 기울이는 것, 이는 그 자체로 특별한 '듣기의 경험'이다. 이날 공연은 그런 면에서 성대한 만찬은 아닐지라도 잘 준비한 음악적 미식회 같았다. '아랑후에즈 기타 협주곡'에서 기타의 작고도 진귀한 울림에 귀를 기울였던 관객들은 2부에서는 드뷔시의 '이베리아'를 통해 마치 얇고 가느다란 음향들이 겹겹이 겹치고 또 풀어지며 만들어내는 화성의 너울을 경험했다. 국립심포니는 음향적 이미지와 색채가 빼곡한 이 작품을 대체로 훌륭하게 연주했다.

비록 악단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질이 시종일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지는 못하고, 1악장과 3악장에서 보다 넘실거리는 움직임이나 분방한 약동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2악장 '밤의 향수'에서만큼은 드뷔시 음악의 미묘한 음악적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고요히 떠도는 소리의 결을 힘을 뺀 채 배합해내는 라일란트의 지휘는 탁월했고, 국립심포니 또한 잘 따랐다.

국립심포니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의 마지막은 라벨의 '볼레로'로 채워졌다. 작은북이 연주하는 기본 리듬 위에 두 개의 길고 구불거리는 선율이 악기를 달리해 열여덟 섹션 동안 연주되는 단순한 작품이지만, 그 효과는 미묘하고도 탁월하다. 국립심포니는 시종일관 안정된 호흡으로 볼레로의 리듬을 지켜냈고, 라벨이 말한바 '길고 현대적인 크레센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비록 솔로 악기들이 겹치는 이음매가 매끄럽지 않았던 대목이 있었지만, 악단은 작품의 기본 얼개와 효과를 충실하게 재현했고, 그 결과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갑작스럽고 대단한 흥분감을 선사할 수 있었다.

흥미진진한 공연이었다. 스페인이라는 주제, 국립심포니의 진일보한 연주력, 라일란트의 해석 등도 그러했지만, 관객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신선한 음악 청취의 경험을 제공하는 순간이 많았다. 화려한 대작은 아니더라도 귀가 즐거웠다. 작은 음량에서 큰 음량, 민속성과 인상주의, 다양한 실내악적 앙상블과 큰 관현악 등을 귀로 구별하는 경험은 음악 감상의 본질이다. 이런 공연을 자주 접한다면 관객들의 귀는 더 예민해질 것이고, 그 취향 또한 향상될 것이다. 분명 라일란트와 국립심포니는 관객들의 향상이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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