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외벽 그을음… ‘그날의 상흔’ 여전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3·4층 전소 세대 등 피해 복원 ‘먼길’
이재민 23명 중 4명 아직 못 돌아가
최초 화재발생 70대 조사 지지부진
원인 몰라 범죄피해 배상도 불투명
“이웃 숨진 사실이 가장 가슴 아파요”
침대 옆에 놓였을 협탁, 소파와 어울렸을 탁자 그리고 거실을 장식했을 화분까지….
아파트 3층에서 뻗어 나갔던 거센 불길의 흔적인지 9층까지 외벽 그을음이 눈에 띄었다. 3·4층 전소 세대와 일부가 소실된 5층 세대 베란다는 회색 가림막으로 덮였다.
이날 한 주민은 “사람이 죽은 게 너무 가슴 아프다”며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주민의 도움으로 아파트 내부로 들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3층과 4층에는 멈추지 않게 조치해 5층에서 내렸다. 계단을 타고 불길이 번져서인지 5층의 한 세대는 수도·가스 검침표와 현관문이 검게 그을렸고 초인종도 새까맣게 탔다.
계단 고압 세척과 엘리베이터 통로 그을음 제거 등을 1월 말까지 끝낼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승강기에 붙어있었다.
화재현장 청소 전문업체는 지난달 5일자 안내문에서 “일정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날도 계단 청소가 진행 중인 점으로 미뤄 1월 말 일정 변경 여지는 있어 보였다. 화재 피해 세대의 복원을 포함하면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초로 화재가 발생한 호실의 거주자 70대 남성에 대한 경찰 조사도 끝나려면 멀어 보인다. 남성의 입원으로 경찰이 지난달로 계획했던 첫 조사를 이달로 미뤘는데, 이날 현재 입건조차 안 된 터다.
A아파트는 건축 허가 시점인 1997년 기준 16층 이상 아파트의 16층 이상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를 규정한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만 적용된다. 화재 피해를 본 3∼5층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던 배경이다. 이후 2004년 11층 이상 아파트 전 층 설치, 2018년에는 6층 이상 아파트의 전 층 설치로 점차 강화됐지만, 소급 적용 대상은 아니다.
노후 아파트는 스프링클러 등 대응시설이 완벽하지 않아 화재 취약 우려가 크다.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추가 설치가 쉽지 않아 A아파트에서는 관련 논의도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의 20년 이상~30년 미만 아파트는 387만가구, 30년 이상 아파트는 173만가구로 더하면 560만가구에 달한다.
서울시는 ‘노후 아파트 화재 예방 및 피해 경감대책’을 마련했다.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해 화재 예방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자동 개폐 방화문 등을 설치한 아파트의 장기수선충당금 지원 등을 정부에 건의키로 하고, 공동주택 관리 주체의 방화문 점검 등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A아파트 화재 신고는 지난해 12월25일 오전 4시57분쯤 접수됐다. 장비 60대와 인력 312명을 동원한 소방 당국은 오전 8시40분쯤 불길을 완전히 진압했다. 주민인 30대 남성 2명이 숨지고 30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국은 재산 피해 규모를 1억980만원으로 파악했다. 숨진 한 남성은 불이 순식간에 번지자 생후 7개월 딸을 이불로 감싼 채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도봉구청에 따르면 그동안 임시 숙소에 머물던 이재민(총 8세대·23명)은 지난달 30일 기준 1세대 4명만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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