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는 왜 하늘을 향하고 있을까
3월17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암각화 또는 사진》展 개최
(시사저널=심정택 칼럼니스트)
강운구(83)의 암각화 사진은 사진집 《경주 남산-신라 정토의 불상, 1987》 작업을 하며 맞닥뜨린 돌부처에서 시작됐다. "나에게 돌부처들은 한국 조각의 원형인 미술품이다. 그것은 저 먼 선사시대 암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경북일보 2017년 1월11일자)
암각화 사진은 1971년 12월25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국보 제147호) 조사단이 주민의 제보를 받고 울주군 대곡천 암벽으로 향했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강변 암벽에 고래·물개·거북 등 바다 동물과 호랑이·사슴·염소 등 육지 동물, 탈을 쓴 무당, 사냥꾼, 어부, 목책, 그물 등이 새겨져 있다. 강운구는 고래에 꽂혔다.
3년간 중앙아시아 등 8개국 답사
"반구대의 모든 고래는 수직으로 유영하고 있다. 하늘로 향하고 있는 고래들은 초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고래가 수직으로 서있는 모습을 신문에서 보고 쇼킹했다. 해석을 기대했으나 없었다. 답답한 이가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신중하게 자료 조사를 마친 후 배낭을 꾸렸다. 중앙아시아에 가서 눈을 뜨면 반구대가 제대로 해석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강운구는 2017년부터 약 3년간 한국과 문화의 친연성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과 톈산, 알타이산맥에 걸쳐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러시아, 몽골, 중국 등 총 8개국의 30여 개 사이트(site)를 답사했다.
"바위 표면의 망간이 산화돼 검은 빛깔의 파티나(patina)가 된 예는 흔하다. 그것은 순광(해를 등지고)으로 보면 검은색이다. 검은 표면에 새긴 그림의 선은 그 바위의 본디 밝은 속살을 드러낸다. 역광으로 보면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난다. 그러면 새긴 선은 검은색으로 보인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바위 표면에 새긴 이 파티나를 알고 있었다."
강운구는 (수백~수천 년 전) 선배들이 그린 그림에 쳐들어가지 않았다. 사진 촬영은 인공조명을 쓰지 않고, 자연광으로만 했다.
"사진은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방향을 사람과 동물이 새겨진 암각화에만 두었다. 꽃과 식물을 찾았으나 없었다. 그림의 대상인 짐승의 90%는 사슴이었고 5%만 사람이었다. 짐승의 뿔은 과장돼 있었다. 반구대는 있는 그대로 모습이었다."
강운구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이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영화에서 처음 나왔다. 1926년 존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필자 주: 프랑스어 '도퀴망테르, Documentaire')라는 용어를 만든 것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것을 대체하고자 한 영화를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이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사진에서 빠르게 통용됐다(《사진이론》, 리츠웰스(엮음), 두성북스, 2016》.
"반구대는 고래만 있다. 다른 물고기가 있었다면 수직으로 세워진 모습이었을까. 중앙아시아를 다녀와서 보니 달라 보였다. 수직의 고래는 살아있는 놈이다. 조선회화사 최고의 금자탑인 정선(1676~1759)의 수평과 수직으로만 그려진 준법과 필획의 《금강전도(金剛全圖)》는 여전히 현대적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삶과 죽음을 구분 지은 고대인들이 그 원류다."
강운구는 경북 문경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출향, 중·고를 마치고 경북대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어깨너머로 사진을 배웠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직후 '전국 대학생 사진 컨테스트'에 낸 작품이 최우수작에 선정됐다. 이 대회 심사위원이 입회를 권유한 대구사우회(1933년 설립)에서 사진에 눈을 떴다. 곧이어 임응식(1912~2001) 주도로 만든 전국 규모의 사진가 집단 '한국창작사진가협회'에 가입했다.
강운구는 조선일보 입사 4년 만인 1970년 '신동아' 등 잡지를 출간하는 동아일보 출판국으로 옮겼다. 1975년 소위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지고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옳은 편(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에 머리 하나 보태준' 이유로 해직됐다. 강운구는 "길거리에 벌거벗고 나선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곧 프리랜서(자유기고가)를 자처했다. 출판사 및 잡지사도 이 개념이 없을 때였다. 일거리를 부탁하기보다는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야 했다.
수평과 수직으로 삶과 죽음을 구분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에서 사진 편집위원과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했으며, 중앙대 사진학과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차피 팔리지 않는) 전시보다는 잡지 게재나 사진집 출간에 비중을 두며 활동했다.
"사진가는 표현 수단이 사진이기에 사진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 고민해야 작가가 된다. '나는 아직 사진을 합니다'는 (현재의) 사진이 다른 방향으로 가기에 '전통적인 사진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촬영을 위해 인터뷰에 동행한 임준선 기자가 질문했다. "사진가로서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그의 답은 이랬다. "(작가 생활) 처음에는 자기희생이 따른다. 원칙적으로 작업 경비는 내 주머니에서 나온다. 중요한 건 자기 성취감이다." 프린트(출력)는 직접 하는지 묻자 "아날로그 시절에는 현상과 인화를 직접 했다. 지금은 작가 말 잘 듣는 오페레이터가 최고다"라고 답했다.
'미래의 문맹(文盲)은 펜의 쓰임에 대해서처럼 카메라의 효용에 대해 무지한 자다(The illiterate of the future will be the person ignorant of the use of the camera as well as the pen).'(라슬로 모호이너지)
이 글은 다르게도 읽힌다. '미래의 까막눈은 글자가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에스터 레슬리 엮음, 위즈덤하우스, 2018) 강운구 전시 《암각화 또는 사진》은 서울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3월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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