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8학군’과 ‘배현진 습격’ 사이 숨겨진 '교육'이란 변수
집안도 넉넉한데 왜?…학교 수준과 정신질환 병력 감안하면 학업 스트레스 영향 무시할 수 없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이 친구 하나 때문에 명문 ○○중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스토리를 올렸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습격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1월26일, 인스타그램에는 이 같은 스토리의 글이 올라왔다. 사건의 피의자 A군(15)이 다니고 있는 서울 강남구 B중학교의 한 재학생이 게재한 것이다. 취재 결과 이 재학생은 A군과 같은 학년이자 학생회 임원인 C군(15)으로 확인됐다. C군은 해당 글을 통해 "(A군은) 평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학생들을 스토킹, 콩알탄을 던지는 등 불미스러운 일을 많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학생회 임원이 학교의 명예를 지키려고 동급생의 전력을 들추며 배척한 셈이다. C군은 현재 관련 계정을 모두 비공개로 돌렸다.
특수목적 학교도, 사립학교도 아닌 일반 공립중학교에 '명예' '명문' 등의 단어가 따라붙는 데는 배경이 있다. 일단 B중은 강남 8학군 중에서도 '교육 1번지'로 통하는 대치동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B중의 학업 수준은 최상위권으로 알려져있다. 시사저널이 교육부 학교알리미를 통해 강남구 모든 중학교 23곳의 2023학년도 1학기 3학년 국어·영어·수학 학업성취도 점수(지필 및 수행평가를 합산한 학기말 성적)를 비교해본 결과, B학교는 평균 87.0점을 기록했다. 전체 학교 중 2위다. 과목별로 살펴보면 국어 3위(89.0점), 영어 2위(90.4점), 수학 7위(81.7점) 등 모두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렇다고 B중이 시험을 쉽게 내는 것도 아니다. 대치동 학원가의 한 관계자는 "공립학교라 교과서 범위를 벗어나는 문항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까다로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B중의 2020학년도 3학년 영어 기말고사 시험지를 입수해 난도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어학원 원장은 "고등학생 수준의 어휘가 섞여있다"며 "타고난 머리가 좋은 학생과 노력해도 한계에 부닥치는 학생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고난도 상대평가 체제에도 B중 3학년 전체 학생 중 평균 80.3%는 국어·영어·수학에서 상위권인 'A' 또는 'B' 등급을 받았다. 2023학년도 1학기 학업성취도별 분포도에 나온 내용이다. 반면 중간 등급인 'C'는 평균 10.1%, 하위 등급인 'D' 또는 'E'는 9.5%로 나타났다. 상위권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 아이 못 보내면 유학 보낼 것"
B중은 진학 측면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지난해 졸업생 중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또는 자율고에 입학한 학생은 총 100명이다. 강남구 중학교 23곳 중 3번째로 많다. 졸업생 수 대비 비율로 따지면 26.8%로 6위를 차지했다. B중의 위상을 오롯이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온 그 위상은 심지어 주민들 간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2003년 당시 고급 주상복합의 시초 격이었던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B중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기존의 인근 주민들과 알력 다툼을 벌인 것이다. 이때 '교육청 로비설'부터 "B중에 아이를 못 보내면 유학 보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B중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학교 진학은 근거리 배정원칙에 따라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학생부터 입학권이 부여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B중에 인접해 입학이 확실시되는 K아파트 1차는 1월 기준 102㎡ 평균 매매가가 28억6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반면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지만 학군이 다른 K아파트 3차는 110㎡가 24억1000만원이다. 이보다 더 넓은 123㎡ 규모의 타워팰리스(2차)도 22억원으로 K아파트에 못 미친다. 모두 반경 500m 안에 있는데 학군에 따라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 것이다. 소위 '학군 프리미엄'이다.
이 일대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K아파트에 대해 'B중 최고학군' '탁월한 교육환경'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1월29일 오전 B중에 등교하던 한 여학생은 '학교가 명문이라는 데 동의하나'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대치동 한가운데에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교육전문가 심정섭 더나음연구소 소장은 "B중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공부 잘하는 순한 학생들이 많아 인근 주거지에 다들 이사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심 소장은 "B중을 비롯해 대치동 일대에는 너무 일찍부터 사교육을 받다 보니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A군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는 과거에 양극성 장애, 일명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범행 다음 날인 1월26일 새벽 A군을 응급입원시켰다. 응급입원은 경찰과 의사가 합의하에 의료기관에 최대 3일까지 입원시키는 제도다.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타해 가능성을 막고자 도입됐다. 그 밖에 C군의 주장처럼 A군이 학교에서 기행을 일삼았다는 목격담도 전해지고 있다.
조울증 앓는 A군…"정신과 다니는 친구 많아"
전문가들은 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특히 청소년의 스트레스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중·고교생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41.3%로 나타났다. 2020년부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구체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는 학생들에게 극단적 성향을 유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2년 설문조사한 결과, 전국 초·중·고교생의 29.2%가 '성적으로 인해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심지어 25.9%는 같은 이유로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해본 적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자해·자살을 시도한 10대가 2018년 인구 10만 명당 95건에서 2022년 160건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5년 사이에 70%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 테러'라는 취지의 주장이 적지 않다. 여권에서는 "어떻게 의원 개인 일정을 15세 중학생이 알았겠나. 분명 배후가 있을 것"(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 "중학생인데 SNS에 정치 관련 글을 많이 올렸다고 한다"(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A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배현진 의원의 수행비서는 "A군에게 '왜 그랬냐'고 묻자 '정치를 이상하게 하잖아요'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A군의 학교 수준과 정신질환 병력을 감안하면, 학업 스트레스가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청소년 비행의 요인으로는 불우한 가정환경도 꼽히지만 최소 A군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B중에 인접한 K아파트 1차 거주민의 재정 현황을 신용정보 기반 금융솔루션 'K-Atlas'로 분석한 결과, 작년 가구당 연소득이 2억1983만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가구당 평균 소득(6762만원·2022년)의 3배가 넘는다. 월 카드 소비액은 1671만원에 달했다. 특히 중학생 부모의 주 연령대인 40대 거주민의 월 소비액이 1000만원으로 모든 연령대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는 대치동의 악명 높은 사교육비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B중 학군지 월소비액만 1000만원...사교육비 탓?
교육 당국은 학생의 정신건강 악화를 막기 위한 체제를 마련해 놓았다. 현행법상 일선 학교는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와 행동 특성을 검사하고 있다. 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교내 위(Wee)클래스에서 상담을 받거나 외부의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다. B중도 지난해 위클래스를 운영할 전문 상담사를 모집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 하지만 검사의 주기 자체가 길고 검사 영역이 너무 광범위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이 때문에 정작 위기에 처한 학생을 판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견돼도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 5년간 관심군 진단을 받고도 2차 기관으로 연계되지 않은 전국 학생은 4만3000명으로 연평균 27.3%였다. 특히 2022년에는 연계되지 않은 이유 중 '학부모의 거부'가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경찰청은 1월29일 브리핑을 통해 "전날 피의자 주거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며 "계획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행 당일과 과거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내역과 SNS 활동 등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A군 부모가 판사'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경찰은 "판검사도, 법조인도 아니다"고 답했다.
경찰과 배현진 의원 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에서 A군 부모와 배 의원 보좌관이 마주쳤는데 거기서 부모가 '미안하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배 의원실은 "어떠한 접촉과 사과의 의사도 전달받은 바 없다"며 "의원과 보좌진 일동은 여전히 피의자와 부모의 신원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앞서 배 의원은 1월25일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A군에게 습격당했다. A군은 '국회의원 배현진입니까'라고 두 차례 물어보고 신분을 확인한 후 갖고 있던 돌로 배 의원을 수십 회 내려쳤다. 배 의원이 쓰러진 후에도 가격은 계속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A군은 1월30일 응급입원에서 보호입원으로 전환된 상태다. 배 의원은 1cm 열상을 입고 봉합 시술을 받은 후 1월27일 퇴원했다. 배 의원은 A군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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