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보소”…재건축 쏠린 정부 정책에 리모델링 조합 ‘부글부글’
노후도시 특별법 특례적용, 1기신도시
용적률 상향·안전진단 면제
리모델링 추진 단지 재건축 선회 움직임
앞서 정부는 지난해 재건축의 걸림돌로 불리던 안전진단 문턱을 대폭 낮춘데 이어 올 초 준공 뒤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아예 안전진단을 받지 않아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했다.
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 도심 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총 76곳 가운데 23곳은 연내 의무적으로 총회를 열고 조합 해산 여부를 정할 예정이다.
2020년 개정된 주택법에 따르면 조합 설립 이후 3년 내로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총회 의결을 거쳐 조합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합 설립 후 3년 내 사업계획승인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보니 그동안 ‘조합 해산’은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형식상 안건으로 처리됐으나, 최근에는 재건축 규제가 크게 완화되면서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재건축으로 전환하자며 주요 안건으로 추진하는 모습이다.
서울 성동구 응봉대림1차는 2007년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지만, 15년 넘게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며 2022년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최근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 등을 위한 협력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내며 재건축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응봉대림1차의 용적률은 208%로, 재건축을 추진해도 사업성이 괜찮은 편”이라며 “바로 앞에 학교도 위치하고, 한강과 성수동과 인접해 입지도 좋다”고 말했다.
다만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간 갈등이 불거진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강남구 대치2단지는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본격 추진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대부분 조합원이 재건축 전환을 희망한다며 해산 총회를 소집하려고 나섰지만, 조합장이 해산 총회 소집을 거부하고 있어 강남구청에 단체 민원을 넣었다. 지난달 23일에도 강남구청과 면담을 갖고 “식물 상태에 빠진 리모델링 조합을 직권 해산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조합이 해산할 경우 그동안 시공사로부터 받아 사업비 등으로 활용한 대여금을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작년 3월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해산한 송파구 거여1단지 조합원은 수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떠앉게돼 당시 논란이 일었다.
정부의 정책 기조 또한 리모델링 보다 재건축에 방점을 찍으며 리모델링 시공사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송파구 풍납동 ‘강변현대’는 1년6개월 동안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조합 해산 검토에 들어갔다. 서초구 ‘잠원 현대 훼밀리’와 영등포구 문래동 ‘현대3차’, 서대문구 ‘홍제 한양’ 등도 규모가 작고 공사 난도가 높아 시공사를 구하기 애를 먹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4~5년 전 재건축 문턱이 너무 높고 준공된 지 30년이 안 된 아파트들이 면밀한 사업성 분석 없이 ‘리모델링 붐’에 편승한 측면이 있다”며 “기존 평형이 최소 25평은 돼야 리모델링을 해도 이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용적률과 세대수 등을 고려해 재건축으로 전환이 불가능한 리모델링 단지들도 분명히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책이 재건축, 리모델링 중 한쪽으로 쏠리면 또 다른 리스크가 될 뿐”이라며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 사업을 지속해야 할지, 재건축으로 변경해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아 정책 피해가 우려된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는 리모델링에도 특례를 적용해 사업 전 가구 수의 최대 21%까지 늘릴 수 있다. 현행 주택법상 리모델링 시 15% 이내에서 가구 수를 늘릴 수 있고, 여기에 특별법에서 140% 특례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약 1000가구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 특례를 최대로 적용받으면 리모델링 후 1210가구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별법 시행령에서는 재건축과 달리 공공기여 수준을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리모델링도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특별법을 적용해 용적률 완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용적률은 법적 상한의 150%까지 완화된다. 이에 따라 만약 3종 주거지역에 속한 아파트가 종상향으로 준주거지역이 되고, 특별법 인센티브까지 받으면 최대 750%까지 적용받게 된다. 즉, 75층 재건축 단지 탄생이 가능한 셈이다.
다만, 가구 수 증가에 있어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제한이 커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게 유리해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통합 재건축을 하면서 동시에 조례에서 정한 공공기여를 할 경우 안전진단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는 사실상 안전진단을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리모델링은 이 같은 안전진단 면제를 받지 못한다. 이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안전진단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건축의 경우 안전진단은 주민 불편과 건축물이 충분히 낡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실시한다. 하지만 리모델링의 경우 골조를 그대로 남겨둔 채 사업을 실시하기 때문에 충분히 튼튼한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리모델링 이탈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분당 매화마을 1단지는 지난해 리모델링 분담금 확정 총회에서 안건이 부결된 뒤 사업이 중단됐다. 리모델링은 1기 신도시 중 평균 용적률이 높은 평촌(204%)과 산본(205%)에서 추진하는 단지가 많았지만,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평촌리모델링연합회에서 은하수마을 청구아파트와 샘마을 대우한양 아파트가 탈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적용 지역의 경우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으로 주민들 의견이 수렴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이유는 재건축이 어렵기 때문인데, 용적률 완화와 안전진단 면제 등 특례가 적용되면 재건축으로 의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 뒤 재건축 사업으로 선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내고 있다. 안전진단 폐지가 아닌 완화이고 법 개정 절차도 남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의 시행 여부가 현재까지 미지수”라며 “정부의 공급 통계 기준은 착공·준공이 아닌 인·허가인데, 현재 인·허가를 받고 착공한 비중은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허가를 받고 안전진단도 통과한 경우 공급으로 잡혀 실제 공급은 더 적을 수 있다. 사업을 추진한 단계라면 리모델링을 유지하는 것이 공급 부족 상황에서 사업상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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