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비선실세’ 파문에 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 돌연 사임
하피즈 가예 에르칸(45) 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는 2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대통령에게 총재직 사의를 표명했다”고 적었다. 골드만삭스 이사 등을 거친 미국 월가 금융인 출신 에르칸은 지난해 6월 튀르키예 첫 여성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 살인적인 고물가로 신음하는 튀르키예에서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지휘해왔다.
에르칸의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는 부친의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나왔다. 지난달 한 중앙은행 직원이 “에르칸 부친에 의해 자신이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한 현지 매체에 폭로했다. 에르칸 부친은 수도 앙카라 소재 중앙은행 안에 자신을 위한 집무실과 관용 차랑을 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에르칸 총재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소문일 뿐”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등에서 자신을 둘러싼 ‘마녀 사냥’이 이어지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X에 “최근 저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선동이 조직됐다”며 “생후 1년 6개월된 아이를 포함해 제 가족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에르칸 후임으로는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파티 카라한 부총재가 즉각 임명됐다.
2014년부터 대통령으로 재임해온 에르도안은 ‘이자 장사’를 멀리해야 한다는 이슬람적 신념을 내세워 저금리 정책을 고수해왔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고금리 정책을 쓰는 게 맞다”고 주장한 중앙은행장을 3차례나 교체하고 법정 통화인 리라화를 마구 찍어내는 등 시장경제의 상식에서 벗어난 조치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살인적인 고물가와 리라화 폭락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대통령 3선에 성공한 이후 생각을 바꾸고 월가 금융인 출신 에르칸을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했다. 에르칸이 재임하는 동안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8.5%에서 45%까지 끌어올리며 저금리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 에르칸은 이날 X에 “제가 튀르키예 중앙은행의 첫 번째 여성 총재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해준 재무부 장관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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