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쏟아낸 인간이 만든 ‘엑스포좀’의 복수
인간-환경 ‘실존적 연결’
이번 칼럼에서는 생명의 공공성에 대한 세번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앞서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 체계 속에 놓인 생명’을 통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경계를 넘나드는 교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 내부의 공동체와 외부의 공동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채 상호작용하면서 존재가 구성된다는 설명을 했다. 오늘 다룰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노출된 세계를 만들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인간 향한 환경의 반작용 ‘엑스포좀’
인간과 환경 사이에는 꾸준하게 작용과 반작용이 이뤄진다. 이는 인간이 환경 속에 존재하면서 필수적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이다. 문제는 과도한 작용이 벌어질 때이다. 인간의 과도한 작용에 환경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손상된 환경은 다시 인간에게 과도한 작용을 가한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벌어지는 필연이다.
이러한 작용 반작용의 순환을 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인간은 환경에 미치는 작용에 대해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가? 자연은 인간의 작용을 한계 없이 수용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인간의 욕망은 자주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며, 그러한 상황을 자연이 수용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놓여 있다. 즉 일종의 임계점을 넘게 되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반작용은 인간에게 치명적이고 비가역적이어서 다시 돌이키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환경의 반작용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엑스포좀(exposome)이다.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이 아닌 환경적 요인의 유기적 총체 정도가 될 것이다. 이는 크게 △생활 하수 및 쓰레기, 도시화로 인한 토지 이용률, 인구밀도, 녹지 비율 등을 아우르는 생태계 요인 △신체 활동, 식습관, 수면 행태 등을 포함하는 생활양식 요인 △가계소득 불평등, 사회적 자본, 사회적 스트레스, 문화 규범, 사회적 연대의 정도를 포함하는 사회적 요인 △온도, 습도, 소음, 실내외 공기 오염, 제반 화학 제품에 대한 노출, 토양 및 수질 오염 등을 포함하는 물리·화학적 요인, 네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엑스포좀은 이러한 요인들에 인간이 노출되어 일차적으로 받게 되는 영향뿐 아니라, 노출 이후 인체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 즉 염증 발현, 산화 스트레스의 증가, 지질의 과도한 산화, 감염 빈도의 증가 및 장내 세균총구성의 변화와 같은 이차적 영향까지 아우른다. 일차적 요인과 이차적 요인이 서로 얽혀 있는 역동적 회로를 고려하면 인간의 환경 노출을 구성하는 체계는 엄청난 복잡도를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컴퓨터 정보과학의 발전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게 가능해졌고, 초정밀 질량분석기 등 첨단 장비의 보급으로 빠르고 정확한 환경 속 물질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엑스포좀 개념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인간의 환경 노출에 대해 점점 더 명료한 인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엑스포좀 개념을 통해 현 인류가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연구가 2019년 건강 측정 및 평가 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에서 수행되었다. 세계 질병 부담(Global burden of disease) 조사 결과를 보면, 세계 195개국에서 발생하는 사망의 약 60%가 대사·환경·직업·행동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엑스포좀의 한 축을 이루는 대기·수질·토양 오염 등과 같은 환경 요인에 의해 1년에 대략 900만명이 사망하고, 이러한 사망을 줄이기 위해 전세계 경제 규모의 6.2%인 4600조원이 매년 비용으로 발생한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영향과 환경에 의한 반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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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에 넘치는 에너지의 저주
그 원인을 따지자면 여럿이겠지만 가장 핵심은 인간의 통제력 상실이 아닐까 한다. 인류는 무엇보다 화석연료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화석연료는 물질적·에너지적 측면에서 인간의 생활과 활동의 폭을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려놓았다. 유례없이 폭증한 에너지를 통해 대량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이뤄지면서 도시가 거대해졌고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거대한 부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현대 문명의 발전 과정이라 여긴다.
그런데 엑스포좀 연구를 통해 과연 이러한 문명이 앞으로 지속가능한지 성찰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애초에 현대 문명을 지탱시키고 있는 에너지와 물질은 인간이 자생적으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수억년에 걸쳐 일회적으로 형성된 자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데 현대 문명의 한계가 엄존한다. 인류는 수억년에 걸쳐 누적된 에너지를 단기간 내에 사용하면서 인간이 욕망하는 대부분의 일들을 마음껏 실현하고 있다. 분에 넘치는 에너지는 본능의 고삐를 끊고 통제 가능성을 소멸시킨다.
그 결과 인류 사회는 환경으로부터 받는 치명적인 반작용에 직면하고 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가 인간에게 통제력을 부여하는지 여부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환경 사이의 막힘없는 순환은 지속가능성의 필요조건이다. 환경은 인간에게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물적 조건이므로 인간은 환경을 통해서만 순환할 수 있다. 인간이 활동을 통해 환경을 교란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 생명의 순환 체계를 교란하는 일이다. 즉 인간은 환경에 실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엑스포좀 이슈는 다시 한번 생명이 지닌 공공성을 부각시킨다. 개개인은 다른 인간과 연결됨으로써만 존재하고, 인간들의 네트워크는 우리가 노출된 환경과 연결됨으로써만 유지된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단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모색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환경에 미치는 작용에 대한 통제력을 기르는 길이다. 인간 단독으로 설정된 인간의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미래란 인간을 포함한 환경의 미래이다. 생명의 속성은 언제나 연결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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