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생산에 그치지 않고 판로 개척·유통에도 신경 써야" [귀농귀촌애(愛)]

한현묵 2024. 2. 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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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김이환 전남 영광군 귀농귀촌인협회장
2016년 가을, 그는 전남 영광군 군남면 고향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시골에 살던 그는 군 전역 후 도시 생활을 선택했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면서 서울로 떠났다. 상경해 건설업을 하면서 제법 돈도 벌었다.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에 정당인 생활도 조금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 산천이 그리워졌다. 환갑을 넘기면서 고향으로 귀농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34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마을이다. 전남 영광군 귀농귀촌인협회 김이환(72) 회장의 귀농별곡이다.
“제가 선택한 것 중 가장 잘한 게 귀농입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8일 귀농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함박웃음으로 대신했다. 고향에 농지를 구입하고 집을 새로 지었다. 산속에 있는 집은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넓은 들판과 작은 연못도 그의 집 주변에 자리했다. 귀농과 귀촌의 중간지대인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김 회장은 귀농할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자연환경을 고려해 더덕과 도라지 등 특용작물을 심었어요” 그는 또 영광 특산물인 송편에 들어가는 동부(돈부)콩을 재배했다. 국산 동부가 비싸 송편에는 러시아산 수입산을 쓰고 있다. 송편 동부의 국산화를 위해 싼 값에 제공하는 게 재배 목적이었다.

하지만 특용작물과 동부 재배는 쉽지않았다. “고사리 한근이 6만원데, 이 한근을 만들기위해서 몇 뭉치의 고사리를 따고 삶고 해야 해요” 특용작물은 노동력과 품이 너무 많이 들어 귀농인에게 적절한 작물이 아니라고 그는 판단했다. 인구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농촌 마을 어디에서도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않다. 

어떤 작물이 귀농인에게 적합할까? 그는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노동력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수익을 내는 작물을 찾으러 다녔다. 전국의 농업기술센터와 소문난 귀농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귀농인에게 적합한 작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답은 전북 순창에서 나왔다. “두릅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김 회장이 순창에서 두릅 농사를 짓는 귀농인을 만나 무릎을 쳤다. 재배하기가 쉽고 봄철 한달 정도만 일하면 되는 게 두릅 농사였다. 다른 작물처럼 기후와 강수량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판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두릅은 늘 공급이 달리기때문이다. 두릅 농사를 더 알아봤다. 전남 보성에서 두릅박사 이춘복씨를 이 무렵 만났다. 이씨는 두릅 선구자였다. 이씨가 개발한 ‘이형두릅’이라는 품종을 심어보기로 했다.

2021년 봄, 그는 이형두릅을 심었다. 800평 밭에 7200주를 심었다. 자연이 키워준 두릅은 다음해 4월 파릇파릇한 두릅순이 올라왔다. 신기했다. 잡초를 베고 제거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김 회장은 첫 수확때 두릅을 무료로 나눠줬다. “고향사람과 공무원들에게 밭에서 필요한 만큼 두릅을 따가라고 했어요” 그는 수확의 기쁨을 지역민과 나누고 싶었다. 두릅 농사에 재미를 붙인 김 회장은 두릅농사를 2300평으로 늘렸다. 지난해 봄 그는 지역민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도 1000만원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두릅을 소득작목으로 확신한 그는 영광군 두릅작목반을 조직했다. 작목반에는 귀농인을 중심으로 12명이 가입했다.

김 회장은 두릅 작목반을 영농조합법인으로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다. “단순 생산에 그치지 않고 판로 개척과 유통에도 신경을 써야합니다” 두릅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서는 집하장 설치가 필요하다. 개별 농가가 유통과 판로 시스템을 갖추는데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다. 그는 영광군이 생산된 두릅을 싣고 서울 가락동 시장까지 운송하고 판매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지역 소득작물인데, 농민들에게만 맡겨놓으면 안됩니다” 김 회장은 유통과 판매 시스템을 확보해 달라고 영광군에 수차례 건의했다. 귀농인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소득안정 차원에서도 유통시스템을 행정이 뒷받침해달라는 것이다.
김 회장의 작은 꿈은 후배 귀농인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이다. “귀농하면 그냥 놀 수는 없잖아요. 무슨 작물이든 심고 길러야죠” 귀농인들이 기본적인 소득을 낼 때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경우를 그는 여러번 봤다. 예비 귀농인들이 어떻게 하면 잘 정착할 수 있는지 멘토가 되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김 회장은 예비 귀농인과 초보 귀농인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귀농해 사는 지역과 지역민의 문화에 젖어야 해요” 원주민과 물과 기름처럼 분리될 경우 귀농인은 실패의 맛을 본다. 영농철이면 여느 농촌이나 퇴비와 거름 등의 시골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걸 문제 삼거나 농사철 병충해 방제에 민원을 제기하는 귀농인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아무리 고향에 귀농하더라도 원주민과 원만하게 지낼 자신이 없다면 귀농을 포기하라”고 조언했다. 

영광=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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