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 빨아들인 중국 로봇청소기… 주가는 왜?[딥다이브]
이른바 ‘3대 이모님’으로 통하죠. 식기세척기·건조기, 그리고 로봇청소기.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을 줄여줘서 요즘 인기 끄는 가전제품입니다.
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2001년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삼엽충이란 뜻)’를 선보인 지 23년. 과거보다 한층 똑똑해진 로봇청소기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시장이 쑥쑥 커가는데요. 하지만 무한경쟁에 놓인 제조사들 간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시장 구도가 빠르게 변해갑니다. 서비스 로봇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로봇청소기 시장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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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
아이로봇(iRobot), 또는 룸바(Roomba)를 아시나요? MIT 출신 로봇공학자가 설립한 미국 아이로봇은 오랫동안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을 선도해온 점유율 1위 기업입니다. 아이로봇이 2002년 내놓은 룸바는 출시와 동시에 각종 언론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에 오르며 히트를 쳤죠. 룸바가 채택한 자동 충전기능이나 낭떠러지 인식 기능, 사이드 브러시은 청소 로봇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탄탄한 로봇공학 기술과 함께 충격적인 가성비(초기엔 199달러)가 인기 비결로 꼽혔는데요. 룸바가 로봇청소기의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미국에선 룸바라는 명칭이 로봇청소기를 일컫는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입니다.
빅테크 규제에 앞장서는 엘리자베스 워렌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를 처음부터 강하게 반대해왔죠. 아마존이 아이로봇 주인이 되면 경쟁업체는 쇼핑몰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질 거란 이유였는데요. 동시에 스마트 로봇청소기 기능을 이용해 아마존이 미국 가정을 감시하게 될 거란 다소 특이한 논리도 펼쳤습니다.
EU 집행위원회 역시 “아이로봇 인수로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킬 수 있다”라며 지난해 11월 반대 입장을 냈죠. 아마존이 쇼핑몰에서 경쟁 로봇청소기를 목록에서 빼버리거나 잘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었습니다. 결국 아마존의 포기로 매각이 무산된 아이로봇은 직원의 31%인 35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고요.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이런 규제당국의 입장, 동의하시나요. 적어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1월 29일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렌이 중국에 아이로봇을 선물했다”며 강하게 비판했죠. “2025년까지 로봇 공학을 장악하는 목표를 가진 베이징(중국) 외에 이 거래 실패로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워렌 같은) 진보주의자들이 걱정하는 아이로봇의 라이벌은 중국 기업”이란 지적입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 포기가 결과적으로 로봇청소기 시장을 중국에 내주는 결과를 가져올 거란 뜻이죠.
결국 기술의 차이
미국 언론의 이런 걱정은 꽤 일리 있어 보입니다. 실제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중국기업의 공세가 상당히 위협적이죠.
과거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아이로봇 점유율은 46%에 달했습니다. 2016년 64%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2위인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科沃斯, 17%)와 격차가 꽤 있었죠.
이후 정확한 세계시장 점유율 통계는 집계된 게 없는데요. 대신 매출로 변화를 추정할 수 있겠죠. 아이로봇은 지난해 1~9월 매출이 전년보다 29%나 줄어든 5억8303만 달러(약 7771억원)에 그치며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는데요. 에코백스의 같은 기간 매출은 105억3200만 위안(약 1조9520억원)에 달합니다. 이미 매출에서 중국 경쟁회사가 크게 앞서가죠.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큽니다. 아이로봇 시총(3.79억 달러, 약 5000억원)은 에코백스(194.84억 위안, 약 3조6100억원)와 비교해 7분의 1 수준이죠.
로봇청소기 시장 개척의 일등공신이었던 기술기업 아이로봇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밀리게 됐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술과 성능에서 경쟁업체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죠.
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제조사들은 자율주행을 위한 최첨단 센서 기술을 채택해 이 내비게이션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石頭科技)은 라이다(LiDAR), 에코백스는 dToF(direct Time-of-Fligh) 센서를 탑재하는데요. 그 결과 가격은 룸바보다 오히려 비싸졌지만, 성능 면에서 크게 앞서갑니다. 한층 똑똑해진 거죠.
한국이나 중국에서 필수인 ‘물걸레 기능’을 통합한 것도 중국 제품이 인기를 끈 이유입니다. 문화권에 따라 바닥 재질이 다르죠. 미국은 집에 카펫이 깔려있기 때문에 물걸레는 별로 필요 없고 먼지를 잘 빨아들이는 게 중요했는데요. 동양권에선 마루 걸레질까지 빤짝빤짝하게 해야 청소한 기분이 들잖아요. 바로 이런 수요에 맞춰 먼지를 흡입하는 동시에 물걸레질까지 하는 겸용제품을 내놨고, 이게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대세가 됩니다.
더 나아가 에코백스나 로보락은 2020년 말부터 ‘올인원 로봇청소기’로 불리는 고급형 제품을 내놨는데요.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서 열풍건조까지 해줍니다. 바닥을 쓸고 닦는 건 물론이고, 걸레 빠는 것조차 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인데요. 물론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배로 뛰었지만 그 수요가 꽤 있습니다.
결국 가성비에 연연하지 않는 로봇청소기 고급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이런 트렌드에 둔감했던 아이로봇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잃게 됐습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의 제품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가 13개 로봇청소기 성능을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그중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중국 브랜드 로보락의 Q5를 꼽았습니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로보락보다 매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이제 똑똑하지 못한 로봇청소기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됐습니다.
에코백스 주가는 왜 이래?
여기까지만 보면, 중국 제조사의 압도적 승리로 보일 텐데요. 정작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엔 지금이 상당한 위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는데 왜 위기이냐고요?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치열해도 너~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은 꽤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직 보급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죠.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미국의 로봇청소기 보급률은 14%, 독일은 9%에 그친다고 합니다. 2029년까지 글로벌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6.6%에 달할 거란 전망치도 있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중국 경제가 꺾이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탓이 큽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고급화 경쟁으로 인해 로봇청소기 가격이 너무 비싸진 것도 원인이고요. 대당 5000위안(약 93만원)이 넘는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척척 살 수 있는 중국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그 결과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로봇청소기 제조사 주가는 놀랍도록 추락했습니다. 중국시장 1위 에코백스는 ‘로봇청소기계의 마오타이’로 불릴 정도로 주가가 급등해서 2021년 7월엔 주당 220위안을 넘었는데요. 2월 1일 종가는 그 7분의 1인 31.6 위안입니다.
중국엔 이미 200개 정도 되는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있거든요. 가전 대기업인 메이디그룹과 그리일렉트릭까지 진출했으니 정말 붐빕니다. 특히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뒤쫓으면서 선두기업 에코백스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데요.
중국 내 2위 기업 로보락은 매출과 이익 모두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지난해 3분기 매출 58%, 순이익 160% 급증). 로보락은 시가총액이 348.58억 위안(약 7조1300억원)으로 에코백스의 두배 수준이죠. 또 다른 중국 제조사인 유니콘 스타트업 드리미(중국명 追觅科技·주미커지) 역시 파격적인 가격 할인으로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고요. 오죽하면 에코백스 치안쳉 CEO가 지난해 8월 공개 행사에서 “모방품은 외관만 원본과 유사하다”면서 드리미를 견제하는 발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이죠. 그만큼 쫓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잔디깎기 로봇, 세탁기 등) 해외시장 개척에 열심히 나서야죠. 로보락뿐 아니라 에코백스까지 모두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50만원이 넘는 로보락의 고가 신형 제품이 홈쇼핑에서 5분도 안 돼 매진됐을 정도로 한국에선 불티나게 팔리죠. 오랜 세월 로봇청소기를 만들어온 한국의 대기업(LG전자는 2003년, 삼성전자는 2006년 첫 출시)까지 중국의 공세에 밀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요. 소비자는 지갑을 열 때 아주 냉정한 법이죠. 결국 혁신과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해서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결론입니다. By.딥다이브
개인적으로 아이로봇은 십수년 전 결혼 선물로 받아서 썼던, 추억의 가전제품입니다. 물론 당시 부실한 성능 때문에 기대만큼 많이 쓰지 못하고 고철 신세가 됐지만요. 한때 혁신의 대명사였던 아이로봇이 이렇게 밀려나는 신세가 될 줄이야.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가전 시장에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가 규제 당국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로봇청소기 대중화 시대를 연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업체의 공세로 내리막을 걷고 있는데요. 미국 언론도 ‘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고 지적합니다.
-로봇청소기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이제 중국 제조사입니다. 발빠르게 최신 첨단 기술을 채택해서 로봇청소기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정작 중국 기업들은 실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중국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중국 안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인데요. 중국 1위 기업 에코백스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결국 중국 기업의 살길은 해외 진출이죠. 한국 시장에서 중국 로봇청소기가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갑니다. 로봇청소기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한국 가전 대기업이 과연 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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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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