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맛집 엔씨?…10년마다 반복되는 위기설

최우영 기자 2024. 2.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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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2003년, 2013년 '게임은 끝났다'던 증권가 예측 모두 빗나가
모바일, 탈 MMORPG 추세 속 '이번이 진짜 위기' 시각도
장르, 고객, 지역 다각화하려는 시도..기동성 갖춰야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우리나라 증권 시장에서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매도 의견' 리포트를 내지 않는다. 리포트에는 덕담만 가득 채우거나 쥐꼬리만큼 '우려할 부분이 있다'고 언급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이 넘치는 한국 증권가에서 주기적으로 날선 비판을 받는 회사가 있다. 메이저 중의 메이저 게임사, 엔씨소프트다.
누군가는 리니지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하고,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위주로 개발해온 엔씨소프트에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엔씨 위기설'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엔씨소프트에는 이제 미래가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 당시와 지금의 위기는 어떤 게 같고, 또 어떤 게 다를까.
"엔씨는 개고기 탕후루, 로제 개고기를 판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엔씨소프트는 '개고기 탕후루'로 불린다. 개고기를 팔아 성공했던 음식점주가, 젊은이들의 바뀌는 입맛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개고기에 집착한다는 것. 매출이 떨어지니 신메뉴를 개발하고 싶어도, 개고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 채 억지로 신메뉴를 개발하다보니 '개고기 탕후루' '로제 개고기' 같은 괴상한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고기는 리니지로 대표되는 엔씨의 MMORPG 라인업, 그리고 이러한 게임들로 성공을 가져올 수 있었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 등으로 해석된다. PC버전 리니지로 시작해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등으로 역사를 이어온 엔씨다. 블레이드앤소울, 아이온 등의 대형 IP(지식재산권)도 MMORPG 일색이다. 최근 내놓은 신작 TL 역시 마찬가지다.

엔씨는 자타공인 국내 MMORPG 1인자다. 우수한 개발 및 서비스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안정적인 서비스와 끊임 없는 콘텐츠 생산 능력에 강점이 있다. 그런데 리니지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리니지라이크'의 범람과 유저들의 피로감이 더해지며 정작 MMORPG 장르 자체의 인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엔씨가 이번에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엔씨는 망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사진=엔씨소프트
이 같은 엔씨 위기설은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모습이다. 2002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된 2003년 초,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엔씨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바라봤다. 목표 주가는 줄줄이 내려가고,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도 불투명하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당시 유명했던 리포트는 BNP파리바의 'Game Over?'였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정액제로 유지되던 리니지의 PC방 이용료 인하,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의 경쟁 심화 등이 있었다.

2013년에도 위기설이 나왔다. 이때는 모건스탠리에서 '게임이 끝났다'(Game Over)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며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모건스탠리는 엔씨의 신작 게임들이 기존 고객을 갉아먹는 자기잠식 효과를 낸다는 전망과 함께 LoL(롤, 리그오브레전드)이 게임시장을 장악하고 엔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PC방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는 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갈 신성장동력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결론적으로 20년 전, 10년 전의 위기설은 모두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엔씨는 리니지 시리즈에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하고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등의 신규 IP를 시장에 내놓으며 되살아났다. 신성장동력이 안 보인다던 비판들은 신작 게임이 나와서 성공을 기록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번 위기는 무엇이 다를까
지난해 2월 2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기획전 'WE'에 ‘THRONE AND LIBERTY(쓰론 앤 리버티) 원화가 게재돼 있다. /사진=뉴스1
지난해에도 어김 없이 엔씨소프트 위기설이 나왔다. 부진한 기존 실적에 더해, 신작 게임들의 성적이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매출을 견인하던 리니지 시리즈는 빠르게 '하향 평탄화' 됐다. 신규 유저 유입은 끊겼고 기존 유저들은 지갑을 예전처럼 열지 않는다. 대작 IP로 개발한 TL은 국내 시장에서 처참한 실적을 거두며 출시 1달만에 서버를 절반으로 통폐합하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다. 당장 올해 선보일 대작 게임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에는 리니지의 주요 유저인 '린저씨'들을 잡기 위한 신규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위기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젠 린저씨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느껴지는 시점이 다가왔다. MMORPG 일색의 한국 게임시장에 질린 소비자들을 붙잡을 새로운 '한 방'이 필요한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2023 엔씨 위기설의 핵심이다.
엔씨도 놀고 있진 않는다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마포구 크리스피크림도넛 메세나폴리스점에서 모델들이 엔씨소프트의 신규 퍼즐 게임 '퍼즈업 아미토이'와 협업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외부의 시선보다 더 심각하게 위기를 느끼는 건 엔씨소프트 내부다. 김택진 대표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공동대표를 선임했고, 조직도 대폭 개편하며 물갈이 작업이 한창이다.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구조조정하고, 그동안 친족경영으로 지목 받던 윤송이 사장과 김택헌 부사장을 국내 사업에서 손 떼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게임'이다. 기존 MMORPG 라인업을 굳이 무리하게 치우진 않는다. 대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시도들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지스타에서 선보인 엔씨의 라인업들은 이 같은 노력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신작 7종 중 MMORPG는 TL뿐이었다. 슈팅게임인 '프로젝트 LLL', 서브컬처풍 수집형 RPG인 '프로젝트 BSS', 난투형 대전액션 '배틀 크러쉬' 등은 기존 엔씨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게임들이다. MMORTS(다중접속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로 개발 중인 '프로젝트G'와 인터랙티브 어드벤처 '프로젝트M'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출시한 퍼즐게임 '퍼즈업 아미토이'도 마찬가지다.

엔씨 위기탈출전략의 핵심은 '새 장르' '새 지역' '새 고객'이다. MMORPG 유저가 아닌 이들을 끌어안아 고객군의 외형을 넓히겠다는 게 다양한 장르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MMORPG라 하더라도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국내에서 써오던 것과는 다른 비즈니스모델을 내세워보겠다는 게 TL의 해외사징 공략법이다. 무엇보다 '린저씨'가 아닌 다양한 연령과 취향의 소비자들을 붙잡는 게 절실하다. 퍼즈업 아미토이의 경우 엔씨가 처음으로 만든 '전체 이용가' 게임이다. 또 신작 게임 대부분을 콘솔용으로도 만들어 PC·모바일을 넘어선 고객들을 받아들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실력들은 좋은데…기동성이 관건
엔씨소프트 판교 R&D 센터.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의 개발진은 판교에서도 실력있는 이들로 꼽힌다. 게임의 운영과 서비스 능력 역시 마찬가지다. 엔씨가 '각 잡고' 새로운 게임들에 도전할 수 있는 배경이다. 방대한 인력 풀은 다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가능토록 한다.

다만 이미 비대해진 조직 구성과 이에 따라 복잡해진 의사결정 체계가 신속한 개발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00년대 이후 IT업계의 개발 트렌드로 떠오른 '애자일'(Agile)한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관측이다. 조직이 커지다보니 게임 기획 단계부터 완벽을 요구할 수 있다. 작은 조직들이 오히려 기민하게 움직이며 '로또 흥행작'들을 만드는 것과 대비된다.

게임도 조직 운영도 애자일하게 하려면, 우선 무게감을 줄여야 한다. 탱크를 타고 대규모 전투에 집중하던 엔씨가, 경보병으로 구성된 기민한 별동대를 만들어 시장을 두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고,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끊임 없이 신속하게 뜯어고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식이다.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조직에서 책임론이 불거지고 증권가에서 또 부정적 전망을 내놓으며 '게임은 끝났다'고 한다. 차라리 수십번 부딪히고 깨져도 문책 받지 않고, 해당 프로젝트를 엎어버리고 곧바로 다른 신작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30여년 전 멜빵바지 입고 골방에서 코딩만 하던 '팀 김택진' 같은 소규모 조직을 여러개 만든다면, 그만큼 엔씨의 다음 성공 가능성도 여러개로 늘어날 것이다. '세번째 엔씨 위기설' 역시 틀린 것으로 결론날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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