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관리 800여명, 서방 친이스라엘 정책에 집단 반기
"서방 정부, 전문가 우려 무시…전쟁범죄·대량학살 방조에 해당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미국과 유럽 11개국의 현직 관리 800여명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의 정책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방 각국 관리들이 합심해 자국 정부 정책에 대해 대거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파장이 주목된다.
2일(현지시간) 영국 BBC·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이들은 성명에서 미·유럽 각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묻지마식' 지지로 인해 "이번 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앙 중 하나"에 연루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군사작전에서 "한계가 없는" 행동을 보였으며, 이는 "막을 수 있었던 민간인 수만 명의 사망과 의도적인 원조 차단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또 "이스라엘 군사작전은 9·11 테러 이후 축적된 중요한 반테러 전문성을 모조리 무시해왔다"며 "이는 하마스 격퇴라는 이스라엘의 목표에 기여하지 않았고 하마스·헤즈볼라와 기타 부정적 행위자들의 설득력을 강화해왔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를 지지하는 미·유럽 각국 정부의 정책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 전쟁범죄, 심지어 인종청소나 대량학살에 기여하고 있을 위험성이 상당하다"고 우려했다.
또 이런 친이스라엘 정책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추가 사망 위험성을 초래하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잡혀 있는 인질들은 물론 이스라엘 스스로의 안보와 지역 안정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가 속한 정부들의 현 정책은 스스로의 도덕적 입지를 허물고 세계적으로 자유·정의·인권을 옹호할 능력을 약화시켰다"고도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자국 정부에는 "모든 영향력을 행사해" 휴전이 성사되도록 촉구하고 "확실한 팔레스타인 국가(창설)와 이스라엘 안전 보장을 포함한 지속적인 평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낸 동기에 대해 자신들이 전문가 입장에서 내부적으로 우려를 나타내왔으나 "정치적·이념적 고려에 의해 기각돼 왔다"고 설명했다.
성명 참가자들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절반 가까이는 소속 국가에서 최소한 10년 이상 공직에 종사한 인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BBC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약 80여명의 관리와 외교관 등이 성명에 참여했다고 한 소식통이 CNN에 밝혔다.
이번 성명은 미국, 유럽연합(EU), 네덜란드 관리들이 조율했고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덴마크·핀란드·스웨덴·스위스 공무원들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미국에서는 백악관·국무부·연방수사국(FBI) 등 다양한 정부 기관 관리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스라엘 지지 정책에 항의하는 서한을 발표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25년 이상 국가안보 분야 경력자로, 이번 성명에 동참한 한 익명의 미국 관리는 BBC에 "그 지역(중동)과 역학을 이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우려가 "계속 묵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서 진짜 차이는 우리가 뭔가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상황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성명에 서명한 영국의 한 고위 관리도 BBC에 영국 공무원들 사이에서 "동요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포드(66) 전 시리아·알제리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40년간 대외정책을 지켜봤던 내 경험에서 이번 성명은 독특한 일"이라면서 "관리들이 공개적으로 나서야겠다고 느낄 정도로 가자지구 전쟁의 문제와 영향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번 성명에 대해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데이비드 캐머런)외무장관이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국제 인도주의법 틀 안에서 행동하기로 약속해왔고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또한 가자지구 민간인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면서 가능한 한 조속한 휴전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EU 집행위원회도 성명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따르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은 대량학살 테러 조직에 맞서서 계속 행동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26일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대량학살을 방지하고 가자지구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한 데 이어 서방 각국 공무원의 집단 성명까지 나오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외교적 타격을 입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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