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OTT서 보려면 6개월 대기?"…'홀드백' 바라보는 OTT업계 복잡한 속내
조용한 OTT 업계 반응…"큰 타격 없지만 누누티비 이용 촉발 우려"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1. 미국 유학을 마치고 최근 한국에 돌아온 대학원생 A씨. A씨는 2달 전 극장 관객 수 1000만명을 기록했다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귀국하자마자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극장 상영은 이미 끝난 상황. A씨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TV(IPTV)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뿐이다. A씨는 OTT에서 추가로 돈을 내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A씨는 OTT에서 해당 영화를 보려면 법 때문에 앞으로 4달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결국 A씨는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IPTV에서 1만원을 냈다.
#2. 경기권 소도시에 사는 직장인 B씨. B씨는 영화 흥행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OTT에 최신 영화가 올라오길 기다린다. 그런데 정부가 극장 개봉 후 OTT에 공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홀드백)을 6개월로 강제하겠다는 소식이 나왔다. 매번 OTT에 최신 영화가 빠르게 올라오길 기다리던 B씨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중 한국 영화 홀드백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극장 개봉 1~3개월 후 OTT에 영화를 공개하던 업계 관행이 있었으나 그 기간을 4개월 또는 6개월로 법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원하는 모태펀드 투자작만 적용하며 제작비 30억원 이하 작품을 제외하는 등 예외 규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TT의 경우 홀드백 법제화 시 일부 영화 수급이 늦어지기 때문에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홀드백을 향한 OTT 업계 반응은 누누티비, 음악저작권료 산정 등 다른 이슈와 달리 조용한 양상이다. 문체부가 공식적으로 홀드백 규정을 발표해도 별도 입장을 보이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 OTT, 영화 몇 편 없다고 매출 타격 크게 없을 듯"
"영화산업 위축이 OTT 때문? 극장 3사 책임도 있어…누누티비 활성화 우려도"
업계가 홀드백 규정에 쉬쉬하는 이유는 사업자별로 이해관계가 얽혀서다.
홀드백이 의무화되면 일부 OTT 사업자는 큰 돈을 들여 일찍부터 영화 콘텐츠를 독점 수급하려는 OTT 사업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홀드백 의무화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OTT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다. 이들 기업은 자금력을 기반으로 극장에서 인기 있던 최신 영화를 빠르게 수입해 구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했다.
예컨대 쿠팡플레이는 지난 2022년 8월 영화 '한산: 용의 출연'을 일정 기간 무료로 공개했다. 극장 개봉 한 달 만에 공개된 건데 IPTV를 거치지 않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가 홀드백 규정을 도입할 경우 이러한 일을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홀드백 의무화 시 일부 인기 영화가 특정 OTT에 집중 편성되는 일이 적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극장 개봉 후 4개월 또는 6개월이 지난 뒤 OTT에 편성될 영화는 이미 흥행력 대부분을 극장 또는 IPTV에서 소진했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쓸 이유가 없어서다.
홀드백 의무화 시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매출에 큰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드라마, 예능, 혹은 애니메이션 등으로 OTT 플랫폼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천만 영화 여러 편 없다고 사세가 기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OTT 업계에서는 이번 홀드백 의무화가 본래 목적인 영화 산업 보호보다 OTT를 견제하는 게 숨은 목적인 것 같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IPTV에서 돈을 추가로 지불해 콘텐츠를 시청하는 단건 구매(TVOD) 방식 영화는 홀드백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홀드백이) 좋게 말하면 '상생'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담합'을 정부가 조장하는 꼴"이라며 "자기가 원하는 시기와 플랫폼에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OTT를 견제하려다 극장 개봉 후 다양한 플랫폼에 영화를 알리고 싶은 창작자의 기회도 없애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홀드백 의무화가 아닌 지금 '범죄도시', '서울의 봄' 등 인기 영화 대부분은 극장에서 소비된다"며 "영화 산업이 기운 데 OTT도 일부 영향 있겠지만 멀티플렉스 3사 스크린 독점도 있다"고 비판했다.
홀드백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정훈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는 홀드백이 처음 도입된 프랑스 사례를 들며 프랑스도 자국 영화가 침체기를 겪어 최근에는 홀드백 기간을 줄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1980년대 법 제정으로 극장에 개봉한 지 36개월이 지나야 장편 영화를 TV 등 다른 플랫폼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프랑스는 매출 일부를 자국 영화·시리즈물 제작에 투자한다는 조건으로 홀드백 기간을 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엔터테인먼트 시청 실정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프랑스 정부가 홀드백 추가 단축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홀드백 의무화 시 불법 채널로 한국 영화를 시청할 소비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극장 개봉 후 OTT까지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만큼 그사이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를 찾기 위해 누누티비 등 콘텐츠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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