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국 체제’ 선언에 한국도 헤어질 결심?
자고 일어나면 북한발 미사일 발사와 전쟁 위협 소식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안보가 강화됐는지, 되레 악화했는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다. 외신은 이러한 혼란에 근거를 더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월 25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대남) 정책을 적대적 노선으로 변경했다”며 “앞으로 몇 달 안에 한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치명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분석대로면 내일 한반도가 전쟁상태에 돌입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국 정부 역시 발언 수위를 높이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열고, “연초부터 북한 정권은 미사일 발사, 서해상 포격 등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은 오로지 세습 전체주의 정권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정권세습과 폐쇄적 경제운영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동시에 이해가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도발’, ‘핵 선제 사용’ 등의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정의하고 북한 정권의 특징은 ‘비이성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북한을 상대로 자극적인 ‘강 대 강’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 마치 외국에 거주하는 평론가가 한반도 긴장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여유다. ‘핵을 보유한 비이성적 국가’와 전쟁을 전제로 한 입씨름을 반복하는 상황은 ‘누가 이성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만든다. 이는 ‘속 시원하게 지르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북한은 ‘2국 체제’를 노리나
얼핏 보면, 늘상 있는 도발과 위협이다.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북은 각종 무기로 서로를 겨냥해왔다. 이러한 정전 상태가 70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제 ‘북한이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정도로 한국사회가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남북관계가 ‘도발’과 ‘화해’의 순환구조 위에 있다는 믿음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변해온 것은 있다. ‘확인’, ‘재확인’ 과정을 거쳐왔던 통일원칙에 대한 합의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시작된 북한의 도발은 하나의 대원칙 아래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30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이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한반도 내에 별도의 국가체제, 즉 2국 체제 확립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통상적인 위협 같지만 단순하지 않다. 지금껏 북한은 위협을 하면서도 민족통일 대원칙은 일관되게 ‘1민족 1국가 연방제통일’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유사시 하나의 민족 문제로 통일에 관한 주변국의 개입을 배제할 근거가 된다. 문제는 2국 체제로의 전환이 전혀 다른 국면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 영토에 대한 배타적 주권과 외교권 확립을 의미한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문제에 있어서 북한과 주변국은 한국과 관계없이 상호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과거부터 ‘납북자’ 문제를 빌미로 북한과 독자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미국은 한국을 염두에 둔 북·미관계 접근을 지향하지만 올해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모토가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만 아니면 된다)’였다면 정확히 반대 상황도 가능하다. 한국을 뺀 독자적인 북·미관계 수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의 최종 진화 형태다.
■북한과의 완전한 결별, 이득일까?
문제는 북한의 ‘2국 체제’ 전환 움직임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통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안보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례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양태를 정립하고 있다. 국제전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이 배타적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핵의 존재는 국제전으로의 확전 요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두 전쟁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작동 중이다.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 이스라엘의 핵전쟁 위협이 국제사회의 물리적 개입을 차단해 사실상 양자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이는 유사시 동맹국의 개입이 제때 작동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연결된다. 특히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제한전 상황이 문제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상대로 반격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고, 미국은 어느 규모의 제한전부터 개입할 것인지 모두 알 수 없다. 게다가 남북관계가 민족적 특수성을 벗어나 ‘2국가 체제’로 전환되면 한반도 내 분쟁은 주권국 간 대결이 된다. 국제사회가 제때, 빠르게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상호 비난 외에 뚜렷한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틈타 북한은 한반도 내 ‘2국가 체제’ 확립으로 전략을 변화시킨 모양새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는 북한 문제를 필요할 때 쓰는 ‘꽃놀이패’ 정도로만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미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북한이 소환되고 있다. 윤 대통령부터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는 (북한이) 늘 사회 교란과 심리전 그리고 도발을 감행해 왔다”며 “올해도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묵은 ‘북풍’ 논쟁이 한창인 와중에 남북관계는 종전과 다른 변곡점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한반도에서 2개의 국가가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의 인정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이러한 상황이 정말 한국에 이득일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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