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기관지가 무슨 기자”…서울교통공사의 ‘갈라치기’
집회·시위·언론·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후퇴’ 사회 전반에서 속출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역사 내에서 취재활동을 하던 기자 등을 잇따라 강제로 퇴거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사 측 책임자는 일부 기자들에게 “이게 무슨 기자야”, “불법 시위대” 등 비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취재 현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및 선전전이 열리고 있던 곳이었다.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전달하는 통로를 차단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는 언론 기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에 쫓겨난 기자 등은 모두 여성이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의 시위 등을 원천 금지하고 경찰과 합세해 강제 해산하는 행위 또한 법적 근거가 없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회·시위, 언론, 표현의 자유 등 각종 기본권이 후퇴하는 양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강제 퇴거 기자·감독 모두 여성
전장연은 지난 1월 22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3주기를 맞아 선전전을 진행했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추락, 아내는 사망했고 남편은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운동이 촉발한 계기가 됐다.
이날 선전전 자리에는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지하철 보안관, 경찰관이 여럿 배치됐다. 당시 최영도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장이 현장 대응을 지휘했다. 그런데 공사 측은 경향신문 취재기자를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퇴거 조치했다. 해당 기자의 설명이다. “먼저 활동가들이 끌려나가면서 휠체어에 탄 중증장애인들만 남게 됐다. 나를 포함해 기자 여러 명이 이를 취재하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공사 소속 지하철 보안관이 나를 막아섰다. 순식간에 서너 명이 다가와 양팔을 끼운 채 끌고 갔다. ‘취재 중’이라고 여러 차례 항의하자 그들은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기자증을 찾을 틈조차 주지 않았고, 겨우 기자증을 꺼내 보여줬는데도 ‘일단 나가라’고 하면서 개찰구 밖으로 끌어냈다.”
같은 날 비마이너 소속 하민지 기자도 강제 퇴거당했다. 최 센터장은 하 기자가 명함을 제시하자 “전장연 계간지(기관지)”라며 “퇴거 시켜”라고 주변에 명령했다고 한다. 하 기자는 “2010년 창간한 비마이너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는 현장을 집중 보도해왔다”라며 “‘전장연의 기관지’라는 표현은 비마이너엔 엄청난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앞서 2022년 3월 공사 홍보실 직원이 작성한 문건에도 ‘비마이너는 완전한 당 기관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건에는 전장연의 약점을 찾아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겨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자 퇴거는 이틀 뒤인 지난 1월 24일에도 발생했다. 전장연이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환승 통로에서 개최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 및 복직 투쟁’ 기자회견에서 레디앙 소속 여미애 기자가 마찬가지로 끌려나갔다. 여 기자도 명함을 제시했으나 최 센터장은 “이게 무슨 기자야”, “장애인 계간지(기관지)”라고 했다. 여 기자가 촬영을 시도하자 이를 막기도 했다. 여 기자는 “기자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공권력이 이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감시한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당일 장호경 다큐멘터리 감독도 같은 일을 당했다. 장 감독은 “최 센터장에게 왜 끌려나가야 하냐고 따지니 삿대질을 하며 ‘불법 시위대잖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촬영을 하고 있다고 항의했지만, 최 센터장은 ‘내가 불법 시위대라고 하면 불법 시위대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장 감독은 2001년부터 장애인과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의 삶 등을 주제로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는 “심지어 용산참사를 기록할 때도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다”고 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변, 전장연 등 인권단체와 언론단체 등은 지난 1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9개 단체가 참여한 공동성명을 통해 “평화로운 기자회견이나 선전전에 10배 이상의 보안직원을 동원해 기자의 신체에 물리력을 행사, 사건 현장에서 끌어내는 건 취재 방해이자 언론의 자유 침해, 신체의 자유 침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경찰은 이런 위법행위를 그저 보고만 있거나 폭력적인 격리 조치에 합세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기자에 대한 물리력 행사는 장애인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언론에 보도되지 못하게 한다”라며 “강자의 목소리만 남고 사회적 소수자처럼 힘없는 집단의 목소리가 사라지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교통공사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 1월 30일 피해를 본 기자 등에게 개별 접촉해 사과의 뜻을 전달하거나 이를 시도했다. 최 센터장은 직위해제했다. 그는 공사 인재개발원 수석교수로 전보 조처됐다. 이들 단체는 그러나 “비판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며 “공사는 해당 책임자를 징계하고 개별적 사과가 아닌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경찰청장의 공식 사과도 요구했다.
공사 관계자는 공식 사과 여부를 두고 “아직 계획된 건 없다”라고 말했다. 최 센터장의 전보를 놓고는 “보통 인사발령을 낼 때 그 사유가 (문건에) 적혀 있지는 않다”라며 “다만 취재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사의 노력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번에 강제 퇴거당한 기자와 감독 4명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성별과 나이 등 사회적인 차별 기제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강제 퇴거 위법성 논란
취재기자 강제 퇴거 사건은 공사가 전장연의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막고 이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 또한 법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는 지난해 11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하철에서 시위가 불가능하도록 진입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하면 시위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집시법의 해당 조항은 ‘옥외 집회’에 적용된다. 또 지하철 역사처럼 ‘옥내 집회’는 집시법상 신고 대상도 아니다. 나아가 미신고 집회라고 해도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이상, 강제 해산할 수 없다는 게 사법부의 일관된 판례다.
그러자 공사 측은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들었다. 법 제48조는 ‘철도 보호 및 시설유지를 위한 금지행위’를 규정하는데, 여기엔 ‘폭언이나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가 포함된다. 전장연이 승강장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음향장비를 이용해 기자회견을 개최하자 공사는 이를 ‘소란을 피우는 행위’라며 퇴거 조치했다.
이에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13~20일 혜화역 승강장이 아닌 대합실로 옮겨 ‘침묵 선전전’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마이크·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마스크를 쓴 채 피켓만 들고 서 있었다. 공사는 이번엔 철도안전법과 함께 법 시행규칙 제85조를 해산 근거로 댔다. ‘역 시설에서 철도 종사자의 허락 없이 연설·권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전장연의 침묵시위가 ‘권유’에 해당한다는 게 공사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도 퇴거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전장연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민변의 ‘집회·시위 인권침해 감시 변호단’은 지난 1월 30일 서울 성동구 공사를 찾아 ‘서울교통공사 대응의 위법성 의견서’를 전달하려 했다. 공사 측은 의견서 접수를 거부했다.
의견서의 핵심은 공사 측의 대응이 위헌, 위법이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것이다. 우선 철도안전법과 시행규칙에 명시된 금지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철도 보호와 질서유지를 저해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질서유지 등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어떤 행위도 금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전장연 측은 기자회견과 침묵시위가 지하철 탑승·이동 등 질서유지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전장연의 행동은 권유나 소란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무의미하게 소음을 내며 시끄럽게 한 게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한 것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따라 보장되는 행위”라며 “침묵 선전전도 공공장소인 대합실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드러낸 것에 불과해 주변에 어떤 불편도 초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외려 공사와 경찰이 질서유지를 해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장연이 피케팅 등을 하자마자 수십명의 공사 직원들이 참가자들을 에워쌌고, 사람이 한 곳에 몰리면서 승객들이 다른 출구로 승하차를 해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을 에워싼 행위는 국제인권기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유엔자유권위원회가 2020년 발표한 일반논평 제37호(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법 집행 공무원이 어느 구역의 집회 참가자를 에워싸고 가두는 방식인 봉쇄와 ‘케틀링’(Kettling·주전자 전술)은 필요성과 비례원칙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실제 폭력 또는 임박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봉쇄가 무차별적 또는 징벌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평화적 집회의 권리가 침해되고, 자의적으로 억류되지 않을 자유와 이동의 자유 같은 기타 권리도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명숙 활동가는 “아무런 무기도 없고 위험한 상황이 아님에도 에워싸고 가두는 방식을 행사하고 있다”라며 “헌법과 국제인권 기준을 위반한 폭력행위”라고 했다. 지난 2월 1일 전장연의 선전전에서도 공사의 퇴거 명령에 항의하는 활동가를 지하철 보안관 등 네댓명이 둘러쌌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 계획
철도안전법 조항을 보면, 특정 행위를 금지할 때는 (그 행위를 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런데 전장연의 행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에 해당하고, 이 집회가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로 봐야 한다는 게 민변 측 견해다. 공사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회 등을 차단하는 건 헌법이 금지한 ‘집회 허가제’에 해당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공사 측은 퇴거의 근거로 자신들이 지하철 역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장한다. 이를 두고 전장연과 민변 측은 “지하철역을 소유물로 보고 민법상 권리를 무한히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공공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공기업으로서 초유의 주장”이라고 했다.
공사 측이 승강장에서 퇴거했거나 대합실로 진입하려는 전장연 활동가 등의 이동을 사전에 차단하는 행위도 비판 대상이다. 공사 측은 지난해 12월 연대 기자회견에 참가하려는 종교인 일부를 역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 열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가려는 전장연 활동가에게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남선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대법원 판례 등을 언급하며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이 철도안전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개별적·구체적 상황에 따라 철도 안전보호 및 질서유지라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라며 “전장연 활동가는 물론 연대하는 시민들의 지하철역 출입을 선제적으로 금지한 건 명백하게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했다.
전장연과 민변 등은 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공사 측이 기자회견과 침묵시위 등을 막고 참가자들을 강제 퇴거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취지다. 소송이 시작되면 공사의 퇴거 조치가 정당하고 적법한지 등을 가릴 수 있게 된다.
최근 법원도 공사 대응의 적절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유진우 전장연 활동가는 지난 1월 22일 동대문역에서 탑승을 시도하다 저지당한 뒤, 열차 운행 방해 등 혐의로 체포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그러나 1월 24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기각 사유 가운데 하나로 “(공사 측의) 탑승 제지가 정당한 업무 집행인지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공사 측의 대응이 법에 근거한 적절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유 활동가처럼 전장연의 기자회견과 침묵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최근까지 최소 10여명에 이른다. 전장연과 연대하기 위해 참석한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 등도 포함된다.
■만연한 기본권 후퇴
공사와 경찰의 이런 조치는 헌법이 보장한 각종 기본권이 후퇴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숙 활동가의 말이다. “이번 언론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단순히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입막음 정책, 즉 지속적인 표현의 자유 및 집회·시위의 자유 후퇴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인권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의 인권이 침해되면 모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다. 한 사람의 인권 침해를 사회가 용인할 때, 다른 사람과 영역의 인권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경찰은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법원은 그러나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에서 잇따라 경찰의 금지통고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집시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통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앞을 지나는 이태원로 등을 추가했다. 우회로를 통해 대통령실 앞 집회를 차단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한 금지통고 사건에서조차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대통령의 검증보도를 한 언론사 여럿을 수사 중이다. 인사와 제재 등을 통해 공영방송 등 언론장악을 시도한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 언론 자유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라며 “아마 올해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게 될 ‘세계 언론자유 지수’는 폭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에는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국정 기조를 전환하라”고 말한 뒤, 경호처 직원들에게 입이 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대통령실은 “경호상의 위해 행위라고 판단될 만한 상황이어서 퇴장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비판도 용인할 수 없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차단하겠다는 뜻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태”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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