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금기와 위반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금기'는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 욕구를 억누르는 일이다.
하지만 금기는 깨지기 위해, 어기기 위해 존재한다. 금기와 위반은 동전의 양면이다.
금기를 깬 최초의 '인류'는 창세기의 이브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신의 뜻을 어기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로부터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며 고통이 시작됐으니, 이브의 위반은 참으로 크다. 이 '사건'은 서양 회화에서 매우 즐겨 그린 소재다.
'원근법을 최초로 실현한 화가'로 불리는 피렌체 마사초(1401~1428)가 걸작을 남겼다. '낙원에서의 추방'(1428)이라는 제목으로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에 벽화로 그렸다. 천사에 의해 쫓겨나는 둘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다.
이 그림이 서양미술사에서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처음으로 그림자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림자는 '추방'의 위태로움을 강조하는 '나약한 인간'에 대한 강조 같다.
그리스 신화는 욕망 이야기임과 동시에 금기와 위반의 서사로 달궈져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서 만들게 했다. 왜? 인간에 대한 축복이 아니라 벌하기 위해서였다.
제우스로부터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금기를 위반해 선물 받은 상자를 열고 마는 판도라. 상자에선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질병과 불행, 고통이 퍼져나갔다. 하나만 남았다. '희망'이었다.
그 순간을 잘 그린 작품은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가 그린 '판도라'(1896)다.
무릎을 꿇고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띤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을 그렸다. 아름다운 숲으로 처리한 배경은 신화 세계라기보다는 당대 현실 세계 같다.
'프시케'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연인이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됐지만, 큐피드는 자기 신분을 말하지 않는다. 큐피드는 프시케에게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만날 수 있으며, 자기 모습을 보려고 한다면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시케는 큐피드가 잠든 사이 등불을 밝힌 뒤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만다. 큐피드는 떠난다. 프시케는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해 고난을 자처한다. 큐피드는 그녀를 용서하고 다른 신들의 허락을 얻어 부부로 결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기 드문 해피 엔딩이다.
프시케가 금기를 위반하는 순간을 잘 포착한 이는 바로크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다.
금기를 어기는 프시케 행위에서 '영혼', '심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사이키'(psyche)가 나왔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한 남자가 한 여인을 끝까지 사랑하는 지극한 사랑의 화음으로 울려 퍼진다.
천상의 연주라고 할 정도로 리라 연주에 뛰어났던 오르페우스는 님프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진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에우리디케는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저승까지 찾아간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로부터 그녀를 지상으로 데려갈 것을 허락받는다. 단 하나의 조건은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 뒤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잘 따라오는지 돌아본 순간 그녀는 다시 저승으로 사라진다.
등불을 든 채 에우리디케 손을 잡고 지하 세계를 빠져나오는 장면을 프랑스 화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가 아름답게 상상해 냈다. 현실인 듯, 가상인 듯 신비롭게 묘사한 숲의 정취는 지하 세계임을 잊게 만든다.
일상과 함께 존재하는 갖가지 금기는 초월적 존재가 만든 게 아니다. 인류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며 스스로 만든 가두리다. 깨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1897~1962)가 말했다. "금기를 준수하고, 금기에 복종하면, 더는 그것을 의식할 수 없다. 그러나 위반하는 순간 우리는 고뇌를 느낀다"
이 언술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위반하는 순간 고뇌와 고통이 다가오지만, 자유도 느낀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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