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과 눈이 마주쳤고, 셔터소리에 달아날까 20분을 가만히 서 있었다”[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월 29일자 1면 사진은 이태원 유가족과 시민 100명이 각각 159배를 올리는 1만5900배 사진입니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인 데다가, 이 주에 예정된 가장 큰 뉴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여서 선택된 사진입니다. 유가족들은 숱한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와 삭발과 밤샘 기도로 특별법을 촉구해왔습니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대부분의 기사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갈등이 지난 23일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서천 회동 이후 6일 만에 대통령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장시간의 오찬과 차담을 가지며 현안을 논의했는데요.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윤·한 갈등 종결과 화합을 강조”하는 대통령실 제공 사진을 1면 사진으로 선택했습니다. 오찬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사진보다 한 방향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공 사진의 의도를 더 충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진 제목은 ‘…마음도 같을까’ 사진 이면을 들여다보는 제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특별법 거부권 요구안이 의결되고 오후에 바로 행사된 것이지요. 대통령은 취임 1년 8개월 만에 9번째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에 유족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며 분노했습니다. 거부권 행사가 유력했기에 유가족의 참담한 표정이 31일자 1면 사진이 될 거라고 일찌감치 그렸습니다. 유가족들이 국무회의 의결 이후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진실 말고 필요 없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하라!”라고 쓴 손팻말을 든 유가족 표정을 1면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삭발한 머리와 검게 탄 얼굴이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사진입니다.
1면 사진 자리를 두고 두 장의 사진이 잠시 경합을 벌였습니다. 한 장은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 후보자 면접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설 명절 앞두고 농산물도매시장에 가득 쌓인 선물용 과일상자들 사진이었지요. 1면 사진으로 ‘반드시’ ‘절대로’ 써야 할 사진은 없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대개 합당한 이유보다 부적합한 이유를 들어 경쟁 사진을 탈락시키는 게 회의의 효율을 끌어올립니다. 과일상자 사진은 매번 보아온 혹은 본 듯한 사진이라는 의견이 즉시 반영됐습니다. 남은 사진은 총선 면접 사진. 이 또한 ‘특정 정당’이라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70일 남은 총선의 ‘컷오프’ 시작이라는 의미여서 쓰기로 하되, 노골적으로 특정 당을 부각하지 않는 선에서 쓰기로 했습니다. 파란색만 봐도 다들 아실 테지만 당명이 어느 정도 가려진 사진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가끔 상상을 뛰어넘는 사진이 치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사진도 운명이라는 게 있습니다. 안쪽 지면에는 잘 쓸 수 있겠다 싶었던 사진이 1면으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2월1일자 1면은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회의를 하며 ‘정말 찍기 어려운 사진’ ‘지금껏 본 적 없는 사진’ ‘아마도 처음인 사진’이라고 장황하게 밑밥을 깔았습니다. 야생 산양을 무인카메라가 아닌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인기척에 예민한 산양을 이렇게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20여년 사진기자를 하며 본 적이 없습니다.
취재한 사진기자는 쌓인 눈에 발목이 잠긴 채 숲을 걷다가 산양 한 마리를 만납니다. 산양과 눈이 마주쳤고, 셔터소리에 달아날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20분을 기다렸습니다. 산양이 경계심을 풀었고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 다양한 모습의 산양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눈발까지 날려서 더 없이 귀한 사진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특종이라고 해도 될 사진입니다만, 설악산의 서식환경이 나빠진 이유로 촬영이 가능한 사진이었고, 오색케이블카 설치로 산양의 서식환경이 더 위협받을 터여서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는 사진입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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