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0.8평 쪽방에도 사람이 산다

조인원 기자 2024. 2. 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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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순간 24. 여인숙 사진가 이강산
피를 토하고 사라지기 전 3호실 아우. 하루 양식은 담배와 술, 라면이 전부다. /사진가 이강산

쉽게 사진을 찍는 이 시대에도 인생을 걸고 힘들게 촬영하는 사진가가 있다. 사진가 이강산(66)은 대전역 앞 달방 여인숙, 쪽방들이 있는 철거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사진을 위해 3년째 살고 있다. 가족이 있는 집에서 나와 따로 산다. 2년 전 이곳의 한 달방(월세방) 여인숙에서 1년을 살았고 그때 촬영한 사진과 글을 모아 책 ‘인간의 시간(눈빛)’도 냈다.

매섭게 춥던 지난달 20일 오전 대전역 앞 사진가가 사는 쪽방촌 여인숙을 찾았다. 그곳은 허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방을 찾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좁고 어두운 여인숙 복도를 잠시 걸었는데 시린 외로움이 밀려왔다. 사진가는 기자에게 “슬리퍼가 문 앞에 기대 있으면 사람이 없고 바닥에 있으면 있다는 뜻”이라고 알려줬다.

좁은 방안을 들어서자 냄비 옆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기자가 온다고 전기장판을 깔았다지만 20여분이 지나자 무릎이 시려 올 정도로 추웠다. 창문 아래 있는 박스 종이는 잘 때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라 했다. 빨간 뚜껑의 빈 플라스틱 김치통을 들어 보이며 “여기가 화장실”이라고 했다.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지만, 겨울엔 춥고 바닥이 미끄러워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에 살던 여인숙에 비하면 호텔이라고 했다. 사진가에게 묻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침실이며, 부엌이며, 마당이며, 화장실이며, 때때로 별이 뜨는 하늘, 여인숙의 0.8평짜리 방안. /사진가 이강산

집 놔두고 왜 이런 고생을 하나

집에서 출퇴근하면 외부인이 된다. 이곳에서 먹고 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이 되는 것이다. 달방을 빼면 여인숙 출입이 안 된다. 처음 왔을 때 6개월간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앞니, 어금니 해서 이빨 3개가 빠졌다. 여인숙 식구들과 네 명이 자장면을 먹었는데 나빼고 세 명의 별(전과)이 28개였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 살아야 겨우 카메라를 들 수 있다.

처음 왔을 때 나도 밖에서 사먹고 잠깐씩 와서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여인숙의 한 형님이 “그래서는 안 될걸. 여기서 같이 먹고 자야 이 사람들도 마음을 열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번은 방문이 열려서 폰으로 몰카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찍고도 스스로 부끄러워 다시는 찍지 않았다. 그때 쓴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인숙에 입실한 후 최초의 촬영을 한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나는 막상 핸드폰을 열고 사진을 확인하면서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노인이 쓰러져 있는 7호실 풍경은 생의 막장 같은 참혹한 모습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닫고 생각을 바꾸었다. 다시는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지 말자. 몰카 사진은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부도덕이고 양심이다… 나는 메모지를 떼어내서 한 문장을 덧붙였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이렇게 달방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진은 사실 한 달에 겨우 한 두 컷 찍는다. 니콘 D-810을 항상 준비하고 있지만 6개월에 한 번 찍은 적도 있다. 그만큼 이 분들을 찍기가 어렵다. 한번은 이모에게 카메라를 들었다가 찍지 말라고 손으로 렌즈를 쳐서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난 적도 있다. 본인들이 촬영을 허락해도 나중에 가족들한테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초상권 각서를 쓰고 함께 인증 샷을 찍고, 글을 모르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은 영상까지 촬영한다.

서울 창신동 여인숙 달방 형님을 촬영하는 모습. 왕년의 주먹 형님은 작년 여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가 이강산

인간의 생존 공간 탐구가 내 사진의 주제

어릴 때 대전의 신탄진역 앞에서 40년을 살았는데 역 앞이 대부분 여인숙이었다. 여인숙엔 누가 사는지 늘 궁금했다. 40년 전엔 달방이 없었다. 늘 봐왔던 풍경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인숙이 사라져갔다.

아버지가 장돌뱅이였다. 시장에서 톱이나 칼을 벼리던 일을 했다. 누님은 매형과 대전에서 작은 사진관을 했다. 나도 거기서 결혼식 사진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끔 아버지가 일하시던 장터 모습을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1991년 경기도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기 전 불법건축물에 살던 철거민들을 보고 다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2호실 아우가 한 끼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어둡고 좁은 공용세면실 입구에서 비틀거린다. 생존을 위해 아우는 날마다 목숨을 건다. /사진가 이강산

2007년 포항 매월여인숙을 시작으로 10년간 전국의 여인숙들을 찍었다. 3년 전부터 대전역 앞 여인숙에서 직접 살면서 작업하고 있다. 벽이 무너질까봐 못질을 못할 만큼 낡은 여인숙들이 모인 이 동네도 과거엔 화려한 유곽이었다. 대전의 중심이 서구로 옮겨지고 원도심이 공동화되면서 낙후된 이곳을 이제야 개발 중이다.

사진가 이강산이 지난 2020년 7월부터 이듬해까지 살던 대전역 앞 한 달방(월세) 여인숙. 매달 20일 기초생활 수급비를 타면 가족들은 여인숙 복도에 둘러앉아 배달 음식을 먹으며 잠시나마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용금을 갚고 나면 대부분 다음날부터 빈손이 된다. /사진가 이강산

시인이자 소설가며 사진가인 이강산

사진가 이전에 중고등학교에서 34년을 국어교사로 일하고 퇴직했다. 나는 사실 6권의 시집과 3권의 소설집을 낸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미 2권의 사진집을 냈고 6번의 개인 사진전도 했다.

하지만 여인숙에 살면서 썼던 시는 다 쓰고 찢어버렸다. 시란 은유나 상징인데 실제 여인숙에서는 사람들이 배가 고파 죽어 가고 있는데 비유라니. 내가 썼지만 다 웃기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어 모두 버렸다. 소설은 지금도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사진은 직설이다. 여인숙 사진은 실존의 진실을 탐구하는 사진이다.

사실 여인숙이나 철거민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 말고도 핫셀브라드 같은 중형 카메라로 풍경사진을 20년째 찍고 있다. 아내가 제발 집에 걸만한 사진도 찍으라고 해서 사람보다 여백이 강조되는 자연 풍경 사진을 흑백으로 찍고 있다. 2004년부터 찍기 시작해서 올해로 20년째인데 겨울에만 촬영한다.

이강산 사진가가 2014년에 촬영한 전북 고창. 사진가는 20년째 중대형 흑백필름으로 전혀 다른 풍경사진도 찍고 있다. /사진가 이강산

앞으로 계획은

여인숙 가족들이 문맹이 많다. 후원을 통해 철거 전까지 도와주거나 가족을 찾아서 돌아가도록 돕고 있다. 나도 사진집 때문에 후원을 시작했지만 이젠 여인숙 가족들을 위해 후원을 기다린다.

후원은 메일(lks5929@hanmail.net)이나 페이스북(www.facebook.com/gangsan.L)으로 받는다.

집 놔두고 여인숙에서 사는 걸 반대하던 아내도 요즘은 어묵탕 같은 반찬을 준비해서 나눠 드리러 온다. 식구들이 내게 “저 사람은 아내까지 와서 봉사한다”고 말한다.

가끔 카메라를 든 외부 사람들이 왔다가 크게 혼이 나서 쫓겨났다. 아무리 작고 초라한 방이지만 이 사람들도 사적인 공간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50여 년 전, 인근에서 가장 돋보였던 2층 현대식 건물이던 대전의 한 여인숙. 지금은 철거를 앞둔 채 폭설에 파묻히고 있다./ 사진가 이강산

달방에 사는 누군가는 가난한 하층민이나 부랑자, 가정 파탄자일 수 있지만, 이들도 인간이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벗어나질 못한다. 돌아갈 가정이 없고 일할 수 있는 육체가 안되니 경제적 능력이 없다. 젊은 사람들도 이곳에서 버티지 못한다.

이들은 하루 한번 주는 무료급식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가끔 홍보용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값싼 우유나 라면 박스 주고 가는 자선단체도 온다.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봉사나 후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이 사람들도 그게 싸구려인 걸 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대전의 한 달방 여인숙에 사는 사진가 이강산(66). 방이 너무 좁아 문을 열고 복도에서 광각렌즈로 촬영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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