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7]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로마에서 밀라노까지는 6시간이 넘게 걸린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 최대도시로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다. 늦은 저녁에 도착해 밀라노 외곽의 캠핑장에서 첫날밤을 지낸 후, 3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우선 캠핑장 근처의 지하철을 타고 밀라노 도시 중심으로 향했다.
첫 방문지는 19세기 회화와 조각작품을 만날 수 있는 ‘GAM Galleria d'Arte Moderna’였다. 작품들의 색들이 선명하고 밝은 느낌이 인상적이다. 전시장 한곳에 있는 작품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대형 풍경화 속에서 도둑들에게 죽임을 당한 한 화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둑들은 오른쪽 언덕 위로 도망치고 있었고, 화가의 개는 상처를 입은 채 죽은 화가의 옆에 앉아 있었다. 저기 먼 길 따라 화가의 백마는 도망치는 듯 보였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이런 스토리를 담아내다니….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화가의 죽음은 예술로는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인가!?
예술은 죽었다. 이것은 나의 상상이고 나와는 다른 상상의 꼬리를 무는 것이 그림의 힘이다. 많은 작품을 보며 나오는 길에 머리 위로 반쯤은 벗겨진 가면을 쓴 아이의 그림을 보았다. 표정은 무언가 응시하는 듯했고, 멍한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멍한 시간, 즉 생각의 활동이 잠시 멈춘 그 찰나가 누군가의 창작 시점이 된다고도 했는데, 나 또한 그 시간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에서 외롭거나 힘듦보다는 지금 저 아이의 시간이 휴식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미술관을 나와 바로 옆에 있던 현대미술관 ‘PAC Padiglione d'Arte Contemporanea’로 관람을 이어갔다. 밀라노는 역시 거대도시다. 예술적 공간들부터 미술관, 갤러리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도시 곳곳을 걸었고, 두 곳의 화방을 들려 원하는 재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다시 발길을 멎게 하는 광경을 만났다.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이다.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밀라노 대성당으로 인해 수많은 인파로 광장을 꽉 채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맑은 하늘 아래 더욱 빛나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 독일 쾰른 대성당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장엄함이 압도적이다. 이 떠올랐다. 거대한 외관을 자랑하는 고딕양식의 대성당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14세기에 초석을 놓은 뒤 600년 가까운 공사 끝에 20세기에 들어서야 완공됐다. 고딕양식 성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고,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큰 성당이다. 전장 148m, 신랑 천장 높이 45m, 교차부 돔 위의 탑은 무려 108m에 이른다. 특히 성당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덮여 있어 숭고한 천상의 미를 자랑한다. 가히 압권 중 압권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가 더 큰 감동을 받은 곳은 대성당 바로 옆의 밀라노 왕궁 ‘Palazzo Reale di Milano’이었다.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개인전 덕분이다. 며칠 전 볼로냐에서 모란디 작업실 미술관을 놓쳤기 때문에 그 보상심리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뛸 듯이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1890년부터 1964년에 걸친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대표적인 정물화부터 풍경화, 펜화와 판화, 수채화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밀라노의 마지막 날에 들른 피렐리 행거비코카(Pirelli HangarBicocca)도 빼놓을 수 없는 스팟이다. 오래전 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2004년 설치미술 위주의 대규모 비영리 현대미술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곳이다. 어마어마한 규모가 압도적이다. 넓고 높은 검은 두 개의 공장 안에 제임스 리 바이어스(James Lee Byars)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두 작가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임스 리 바이어의 공간에선 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기둥이 우리를 맞았고, 붉은 천막 사이로 드러나는 의자와 거대 금항아리, 마른 붉은 장미로 만든 둥근 원형의 설치작품들이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어떤 거대한 권력의 힘에 대한 울림이나 에너지, 그리고 그것에 담긴 공허함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안젤름 키퍼의 공간에는 시멘트 덩어리로 만들어진 높은 구조물 7개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대형 페인팅 작품들도 함께 엄숙하고 무거운 공간감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거친 표현의 설치와 페인팅의 전시 구조는 마치 폐허가 된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거대한 시멘트 집 설치작품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저울을 매단 대형 페인팅 작품을 보면서 무엇이 공평한 것인가, 삶의 무게와 가치에 대한 저울질, 끊임없이 저울질당하는 진실에 관한 질문인가라는 질문이 스친다.
밀라노는 정말 멋쟁이들의 도시다. 패션을 뽐내는 미녀 미남들과 중년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오랜 여행 중인 우리의 남루한 복장마저도 그들 속에 묻혀 밀라노와 하나 되고 있었다. 마지막 떠나는 날 이른 아침 밀리노의 ‘프라다재단(Fondazione Prada)’를 찾았다.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을 떠올리며 찾아갔다. 컨템포러리한 작품들을 보며 흥미로웠다. 여러 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총 8개의 기획전시와 컬렉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설치 위주의 현대작품들이어서, 최근 글로벌 아트트렌드를 짐작케 했다.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이탈리아는 정말 보석 같은 자연과 유적지, 수많은 미술관이 깊은 감흥을 전해줬다. 그 여운을 담고 프랑스 남부여행을 시작한다. 날씨도 제법 따뜻해지니 마음이 봄같이 녹았다. 작은 마을을 걸어 아침 산책을 마친 뒤, 꿈에 그리던 니스(Nice)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색채의 마술사 샤갈박물관(Musée National Marc Chagall) 박물관부터 들렀다. 프랑스 남부의 대부분의 미술관은 점심시간에 티켓 부스도 닫고 잠시 휴관이라 그 시간을 피해야 한다. 대략 12시 30분부터 2시까지.
역시 샤갈이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본 샤갈의 작품보다 더 색채가 화려하고 선명했다. 샤갈미술관과 지척에 있는 마티스미술관까지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임시휴관으로 아름다운 외관만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유럽도 아직은 겨울이라 그런지 오후 5시 30분쯤이면 해가 지니, 낮 여행이 가능한 시간도 짧다. 차박지 주차비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급히 우리에게 다가와 1유로를 내고 다음 날 아침까지 머물 수 있게 도와줬다. 캐나다에서 직장 관련해 이곳에 살고 있단다. 어려움을 겪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천사들 덕분에 니스의 첫날도 행복했다.
니스의 아침 해변과 꽃시장을 돌아보고, 벙쓰(Vence)로 향했다. 벙쓰에는 마티스 성당(The Rosary Chapel La Chapelle Matisse)이 있다. 임시 휴관한 마티스미술관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싶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우아하고 감동적인 성당 속 마티스 작품을 본 순간 오랫동안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마티스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 바닥으로까지 그 빛을 다시 그려내고 있었다. 예술가와 종교가 만나 아름다움의 치유를 구현해냈다.
까니흐 슈흐 메흐(Cagnes-sur-mer)의 르느와르 작업실(musée Renoir)로 향가는 길에서 들른 ‘Fondation Maeght’에선 한국의 작가 이우환 작가와 이배 작가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르느와르 작업실은 수백 년 된 오렌지 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르느와르가 태어나고 살던, 작업실 그대로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작업실과 어우러진 르느와르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풍경을 그린 다른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저택 그대로를 미술관으로 꾸며 더욱 친근하고 정겨웠다.
안티베(Antibes)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은 홈페이지 정보와는 달리 임시휴관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프랑스 남부의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서 낭만 가득한 밤을 보냈다. 다시 마르세유( Marseille)를 거쳐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세잔 작업실로 향했다. 미술가라면 한 번쯤은 갈망하던 세잔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작업실은 세잔이 직접 작성한 도면으로 지었고, 그곳에서 4년 동안 작업하며 생활했다고 전한다. 아뜰리에 뿐만 아니라 세잔의 의복과 모자가 그가 살아 있을 때처럼 남쪽벽 구석의 옷장에 걸려있다.
세잔은 어느 날 가을 오후 풍경화를 그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바람에 고열에 시달렸고, 다음날 로브 정원의 정원 관리사인 발리에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일주일 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작업실은 언제나 다시 돌아와 금방이라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의 빈자리를 오랫동안 느끼며 미술가의 삶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프랑스 남부여행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다. 고흐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아를(Arles)이 파운데이션 반고흐(Fondation Vincent van Gogh Arles)를 먼저 들렀다. 마침 다양한 현대미술품과 반 고흐 작품을 두 점 함께 볼 수 있었다. 아를로 들어오는 순간 아를은 반 고흐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르 카페 반 고흐(Le Café Van Gogh)를 지나, 지금은 문화센터로 운영되는 반 고흐의 정신병원(L'espace Van Gogh)으로 갔다. 고흐는 폴 고갱과 함께 작업실을 사용했고, 둘의 애증 관계는 미술계에서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서로 간의 갈등과 회의로 깊은 병을 얻은 고흐가 한쪽 귀를 잘랐던 사건을 계기로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그 후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의 라부여인숙(Auberge de Ravoux)으로 가 생애 마지막 70일을 그곳에서 보낸다. 고흐를 끝으로 이제 우리의 프랑스 남부 여행을 마칠 때가 되었다. 프랑스는 늘 우리가 다른 곳에서 지칠 때, 휴식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다음의 프랑스 여행을 기약하며, 스페인 바로셀로나(Barcelona)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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