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저승사자'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채 상병 사건' 회수 개입? [서초동M본부]
작년 8월 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이 모 과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 과장은 전국의 강력범죄 수사 상황을 점검해 상부에 보고하는 경찰 핵심 간부입니다. 전화를 걸어온 건 대통령 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 소속 박 모 행정관이었습니다. 박 행정관은 대통령실에 파견 간 경찰이었습니다.
박 행정관은 국수본 이 과장과 통화에서 국방부 내부 갈등 상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어,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처리를 위해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관할인 경북경찰청에 전화할 것"이라고 통보했습니다. 대통령실의 지시 하달인지 업무 협의인지, 아니면 그저 참고하라는 건지 성격은 모호해 보입니다. 다만, 이 과장은 이 내용을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전달했습니다.
박 행정관이 전달했다는 국방부 내부 상황이란 뭘까.
작년 7월 채상병은 물난리가 난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숨졌습니다. 당시 군사경찰인 해병대 수사단이 사망 경위와 책임자를 따지는 초동 수사를 맡았습니다. 소방관의 아들로, 해병이 좋아 자원입대했다는 채 상병. 참척의 아픔을 겪은 유가족에게 해병대는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수사단은 구명 조끼나 보호 장구조차 지급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해병대 1사단장이 "허리까지 강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수사단은 1사단장을 혐의자 8명 중 최고 책임자로 특정해 경찰에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 결과를 결재했던 국방부 수뇌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경찰에 사건을 보내지 말고, 기록을 넘길 땐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겁니다. 수사 책임자였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실상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수사 외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부당하다고 느낀 그는 그 자체가 직권남용 범죄가 될 수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8월 2일 오전, 해병대 수사단은 원래 계획대로 1사단장을 혐의자로 적은 수사기록을 경찰에 인계합니다. 이첩 사실을 보고받은 국방부는 원점으로 돌리기로 합니다. 기록을 다시 경찰에서 받아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한발 나아가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입건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와 MBC 취재를 종합하면, 공직기강비서관실 박 행정관이 국수본에 알려준 대로 국방부 유재은 관리관은 경북청 수사부장에게 연락합니다. 경북청 수사부장은 유 관리관과 이날 오전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넘긴 '채 상병 사건' 기록을 돌려달라고 협의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바로 당일 수사기록은 신속하게 해병대가 아닌 국방부로 넘어갑니다.
MBC가 입수한 국방부 검찰단의 '사건 회수 경위 보고서'를 보면, 이날 오후 2시 40분 국방부 검찰단장이 사건 회수를 위한 회의를 열고, 곧바로 검찰 수사관을 경북청으로 급파합니다. 해병대 수사단이 오전 10시 반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넘겼고, 내용 설명까지 한 뒤 11시 50분 청사를 나왔는데 불과 세 시간 만에 상급기관인 국방부가 실제로 행동에 나선 겁니다. 일과가 끝난 저녁 7시에 경북청에 도착한 국방부 수사관은 사건기록과 인계서 전체를 그대로 들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국방부와 경찰, 성격이 전혀 다른 기관입니다. 그런데 채 상병 사건 회수 과정에선 신속하게 협조했습니다. '고 이 중사 사건' 등을 계기로 군내 사망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도록 아예 법까지 개정됐습니다. 자칫 경찰이 제 할일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속하게 사건을 달라는 대로 넘겨준 건 더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이 회수 과정에 대통령실 소속 행정관의 전화 조율이 있었던 정황이 나온 겁니다. 대통령실의 누가 어떻게 관여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전화를 건 행정관의 소속입니다. 국방부와 소통할 법한 안보실이 아니라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나선 겁니다.
사정기관 생리를 잘 아는 이들은 박 행정관이 이른바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수사관은 "현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실 힘이 더 강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서장급 경찰 간부는 "경찰 인사를 하고, 공직감찰팀을 운영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연락을 받고 말을 듣지 않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화를 건 공직기강비서관실 박 행정관은 파견 경찰로, 계급은 경정입니다. 전화를 받아 경북청에 전달한 국수본 이 과장은 총경으로, 오히려 한단계 계급이 높습니다. 왜 별 다른 문제 제기 없이 따랐을까.
두 사람을 모두 잘 아는 전직 경찰관은 "박 행정관은 이번 정부 인수위 때부터 합류해 여태 역할을 한 단 두명 중 한명"이라며 "총경 승진은 물론 이번 정부 내에서 경무관도 가능하다고 하는 실세"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박 행정관의 전화가 행정관 개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을 거란 얘깁니다.
다만, 현재로선 박 행정관이 공직비서관실 차원의 의사결정에 따라 전화한 것인지, 개인 판단에 따라 재량껏 연락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없습니다. 통화 상대방인 두 사람 모두 여러 날에 걸친 MBC 취재에 일절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또한 박 행정관의 전화가 경북청을 시켜 서류를 돌려주라는 압박성 지시였는지, 통상적인 업무 협조였는지도 규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의문은 또 이어집니다. 박 행정관은 어떻게 국방부의 내부 상황을 알고 있었을까요? 누가 국방부 내부 상황을 알려 준 걸까요? 또,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누구로부터 경북청 수사부장과 협의하면 된다는 사실을 안내 받았을까요? '채 상병 사건'을 되돌리는 '사후 처리' 과정의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는 아직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조율이 안됐으면 경북청이 이렇게 순순히 기록을 뻇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국방부와 용산 대통령실 파견 근무자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또 있을 거라는 얘기"라고 분석했습니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유례 없는 기록 탈취"라고까지 비판합니다.
반면, 경북청은 "당시 공문 접수가 끝나지 않아, 최종 이첩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국방부가 이첩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돌려줬을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국방부도 정상적 절차였다는 입장입니다.
해병대 수사관은 뒤늦게 자신들이 넘긴 수사기록을 국방부가 그대로 회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넘겼던 경북경찰청 팀장에게 전화를 겁니다.
"오늘 저희가 사건을 정확하게 인계를 드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정상적으로 다했는데 결국은 저희가 죽일 놈이 됐습니다."
이미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로 수사를 받게 된 상황.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해병대 수사관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묻어났습니다.
"우리는 겁이 안 나서 이렇게 했습니까? 겁났으면 이렇게 말도 안 했습니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진실을... 이렇게 왜곡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에 꼭, 사건이 꼭 거기로 가면 철저하게 수사를 좀 해주십시오."
국방부가 다시 '채 상병 사건'을 경찰에 넘겨야 할테니 "경찰이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끝까지 당부한 겁니다. 경찰 팀장은 먹먹한 전화에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만 답했습니다. 해병대 수사관은 "채상병 부모 앞에 맹세를 했다"거 거듭 호소했고, 경찰 팀장도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해병대 수사관은 울음을 삼키는 경찰 팀장에게, "해병대 대선배이신 걸 안다"며 "필승" 경례로 통화를 마무리합니다.
기록을 회수한 국방부는 사건을 일주일 뒤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배당했습니다. 이후 조사본부 조사단은 1사단장을 혐의자에 포함해야 한다는 해병대 수사단 판단을 뒤집고 대대장 2명만 처벌대상이라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해병대 수사관의 맹세는 지켜질 수 있을까요? 공수처는 사건을 넘긴 과정에 이어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최종 수사결과가 축소된 과정에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관련보도: ① [단독] '국방부 전화 갈 것'‥"대통령실 행정관이 조율" 진술 확보 / 정상빈 기자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67161_36515.html
② [단독] 국방부 검찰단 압수수색‥"해병대 결과 왜 뒤집었나?" / 박솔잎 기자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67162_36515.html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68292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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