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6반 김동영 학생 아빠 김재만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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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만씨(60)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에 다시 진도로 내려갔다.
아이를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진도에 남았다.
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유류품 발견 소식을 다른 가족들에게 전했다.
진도가 고향인 그는 이후에도 종종 팽목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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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만씨(60)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에 다시 진도로 내려갔다. 아이를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진도에 남았다. 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유류품 발견 소식을 다른 가족들에게 전했다. 진도가 고향인 그는 이후에도 종종 팽목항을 찾았다.
“참사 이후에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진도 지원분과 부위원장을 맡았어요. 11월까지 진도에 쭉 머물렀어요. 마지막으로 황지현 학생이 197일 만에 수습됐죠. 그날이 지현 양 생일이었어요. 진도에 있으면서 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미수습자 가족들을 챙겼어요. 외부 인사들 오면 안내하고 바지선 수습 현장에서 애들 유류품 나오는 거 사진 찍어서 가족들에게 올려주고 그런 활동을 했죠. 제 고향이 진도예요. 동영이는 5월5일에 수습되었는데 같은 반에 당시 미수습자가 두 명 있었어요. 얼른 못 떠나겠더라고. 11월 이후에도 여러 번 찾아갔어요.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 서명을 받으러 다닐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반별로 모여서 전국을 다녔죠. 지금까지도 참 아쉬운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 판결문에 세월호 참사가 대통령 탄핵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이에요. 제가 이런 일을 당해보니까 정치는 믿을 게 못 돼요. 피해자인 우리가 그들을 만나서 호소해야 하는 게 참 싫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아쉬움이 많아요. 10년 동안 돌아보면 의지하고 믿을 사람이 없었다고 느껴요. 어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걷는 걸 뉴스로 봤어요. 그걸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 근무복이랑 다른 옷에도 노란 리본 배지가 하나씩 달려 있어요. 차에 스티커를 두고 전국을 다닐 때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요. 10년 전에는 50대였지만 이제 연말까지 일하면 퇴직합니다. 퇴직하면 다시 열심히 활동해야죠.”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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