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도 모르는 국가의 ‘기습 사과’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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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이 SNS에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피해자도 모르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 언론보도와 보도자료를 통해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과는 과연 옳은가? 검찰, 법무부 그리고 국가폭력에 관여한 국가기관은 더 이상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진정 위로가 되는 사과의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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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이 SNS에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라는 전두환씨 옹호 발언에 사과한 바로 그날 밤 올라온 사진에 ‘사과는 개나 주라는 거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국민을 조롱했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지만 잘못된 사과는 오히려 큰 상처가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된다.
“국가는 사과하고, 이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0년 12월10일 재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실질적인 조치에 덧붙여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어부들을 월북 어부로 둔갑시켜 처벌한 납북귀환 어부 인권침해 사건에서도 진실화해위원회는 불법 구금·가혹 행위로 인한 허위 진술 강요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지난해 8월9일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열린 납북귀환 어부 재심 공판에서 담당 검사는 “오늘 재판을 통해 피고인들과 가족들의 명예 회복 및 상처 치유를 기원하고 검찰이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대구지검 영덕지청은 납북귀환 어부 재심 사건에서 검찰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사과를 수천 명에 달하는 납북귀환 어부에 대한 ‘국가의 사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 김춘삼씨는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검찰의 사과를 요청했다. 이미 영덕지청 검사의 사과가 있었음에도 또 검찰총장의 사과를 요청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피해자가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사과가 진정 국가의 사과가 맞습니까?”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을 강제로 징집하고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한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사건.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11월22일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국가와 이러한 불법적인 공작에 관여한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각 대학 등은 국방의 의무를 악용하여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국가의 첫 사과는 뜻밖에도 불법적인 공작에 관여한 바 없는 법무부로부터 나왔다.
피해 당사자 한 분이 사망한 사실도 모른 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14일 피해자 두 명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의 패소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해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항소 여부를 지켜보던 당사자 한 분이 사망한 사실조차 모른 채 법무부로부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 사과에 대해 피해 당사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법무부 장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사과했으니 이제 더 이상 사과는 필요 없는 것일까?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한 사건은 2795건(지난해 12월19일 기준)이다. 국가가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날마다 한 건씩 사과한다고 해도 7년 넘게 걸린다. 피해자도 모르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 언론보도와 보도자료를 통해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과는 과연 옳은가? 검찰, 법무부 그리고 국가폭력에 관여한 국가기관은 더 이상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진정 위로가 되는 사과의 방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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