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말 폭탄인가, 진짜 전쟁할 결심인가?

김창수 2024. 2. 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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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진단했다. 남한을 향해서 핵폭탄급 말 폭탄을 던지던 북한이 일본에는 이례적으로 지진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물리적 충돌에 의한 확전으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은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한때 미국에 많았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누가 내쫓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북·미 대결 관계가 오래 지속된 탓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권위자가 핵문제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로버트 칼린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이다. 두 전문가는 1월8일 북한 전문 온라인 매체인 〈38 노스〉에 공동 기고를 했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그의 할아버지가 1950년에 그랬듯 전쟁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1950년 6월 초 이래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라며 한반도 상황을 진단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경고장이 날아온 것이다.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자산가치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남북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북한 핵 개발 계획이 알려진 1990년대 중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미국 조야를 물들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선제공격론을 주창한 바 있다.

북한은 미국을 한반도에서 긴장 조성과 전쟁 발발을 일으키는 세력이라고 비판해왔다. 북한 역시 선전포고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거친 발언을 주저없이 해왔다. 북한은 이를 자위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에 ‘면역력’이 생긴 뒤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적 발언을 ‘말 폭탄’으로 치부했다.

대결로 점철된 분단 70년 역사에는 화해를 위한 남북 협력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주먹은 가깝고 화해 성과는 더디게 나타난다. 화해를 위해 쌓은 노력은 말 폭탄 앞에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전쟁 피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핵폭탄급 말 폭탄을 터뜨렸다. 말 폭탄 위력이 핵폭탄급으로 강화되었다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점이 있다. 과거에는 북한이 이른바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황을 최대한 악화시키는 전술이다. 이후 극적으로 반전시켜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은 실제로 북한이 보여주는 협상 행태에서 수시로 드러났다.

‘벼랑 끝 협상’의 원조는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의 덜레스 국무장관이다. 그는 “전쟁 직전인 벼랑까지 이르는 능력은 전쟁에 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전쟁을 피하려 하거나 벼랑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에서 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벼랑 끝 전술의 원조인 미국을 향해 북한이 이것을 써왔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가지 않았던 더 높고 더 깊은 벼랑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말 폭탄이 말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정찰위성까지 발사했다.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에 이어 앞으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도 성능을 향상시켜 보란 듯이 국제사회에 과시할 것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에서 ‘전쟁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진단해도 무리라고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8~9일 군수공장들을 방문했다. ⓒ조선중앙TV 화면

하지만 김 위원장의 속내가 꼭 이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전쟁하기로 했다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전쟁을 피하려 하거나 벼랑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에서 지게 된다”라는 덜레스의 말을 충실히, 아니 과감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김 위원장은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물리적 충돌에 의한 확전으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은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사고를 구성하는 1차적 요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인식에 따라 김 위원장은 매우 위험한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적들이 전쟁의 불꽃이라도 튀긴다면 공화국은 핵무기가 포함되는 자기 수중의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원수들을 단호히 징벌할 것이다”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그 자체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폭약 심지에 불을 붙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피하지 않는 모험을 강행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을 결심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의 결심과 무관하게 군사적 긴장 고조로 언제든지 우발적 충돌은 일어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한다는 대목이다.

1월5일 평양 시민들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다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AP Photo

한반도는 동북아 화약고이고, 그 화약고의 심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제기한 뒤 남북은 NLL이라는 화약고 심지에 불이 붙지 않도록 관리해왔다. 북한은 지금까지 NLL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다. 심지어 지난 1월 초 북한이 사흘 동안 서해에서 포사격할 때도 포탄이 NLL을 넘지 않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서해 5도 일대가 머지않아 교전지대로 들어갈 수 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심각한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거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서해 NLL 일대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확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을 결심해서 일어날 가능성보다는, 남북 사이 우발적인 충돌을 예방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1월5일 북한의 서해 일대 해안포 사격훈련을 전하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다. ⓒAFP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가운데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하겠다는 대목은 자가당착이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이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 원칙’, 1980년 10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1993년 4월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말한다. 이는 모두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것이고, 북한 대남 정책의 골격을 이뤄왔다. 게다가 이 세 가지를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고 묶은 것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7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발표해 2000년 평양시 남쪽 진입로인 통일거리 입구에 이 기념탑을 세웠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은 남북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기도 했다. 북한은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축전 장소로 이 기념탑을 고집했다. 남한에서 참가한 단체들은 김일성 주석이 주창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기념하는 탑 아래에서 행사를 하면 남한 보수세력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2001년 8·15 민족통일대축전은 파행을 거듭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평양 광란극’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관계 악화를 이유로 이 탑을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통일을 포기하겠다는 퍼포먼스를 강력 추진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더라도, 김일성·김정일 정책의 상징물을 ‘꼴불견’이라며 철거하겠다는 것은 대상을 잘못 설정한 셈이다. 수령 중심의 북한 체제 특성으로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정책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욕에 사로잡혀 거칠게 밀어붙인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추구하는 목표는 경제와 국방에서 자력갱생이다. 이를 위한 수단은 정면 돌파다. 2021년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경제발전과 국방 건설에 대한 목표를 설정했다. 국방 분야 성과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26년 1월 북한은 노동당 제9차 당대회를 개최한다. 제9차 당대회에서는 국방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국가적 지위를 새롭게 설정할 것이다. 이때까지 북한은 대남 강경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하더라도 북한의 정책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북한에 손을 내밀 것이고, 북한은 이에 응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국가적 지위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와 다르다면서 파격적인 요구를 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의제조차 조율하기 어려운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은 또한 2027년 한국 대선 때까지 현 정부의 공격적 대북 정책을 빌미로 남한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다.

1월5일 북한의 서해 인근 해안포 사격훈련에 우리 군도 대응으로 해상 사격훈련을 했다. ⓒ연합뉴스

김정은·기시다, 관계 개선 나서나

대남 강경 정책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일본을 향해선 손을 내밀고 있다. 탈냉전 이후 30년이 넘도록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에 노력해왔다. 물론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한 시도도 있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전략적 목표였다면, 대일 관계 개선은 그 하위 목표 정도로 여겼다. 일본에 대해 ‘백년숙적’이라며 거침없이 말하던 북한이 1월5일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지진 위로 전문을 보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직함으로 ‘일본국 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각하’에게 보낸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일본 총리 앞으로 위문 메시지를 보낸 것은 최근에 사례가 없었다고 했다.

과거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를 살펴보면, 탈냉전 초입인 1990년에 자민당 실력자인 가네마루 신 부총재가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부위원장과 함께 방북했다. 이때 김일성 주석과 면담해 노동당·자민당·사회당 3당 선언을 했다. 북·일 수교의 문이 열리는 듯했지만, 북한 핵 개발과 일본인 납치 의혹으로 교섭은 중단됐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해빙 물결이 일자,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 선언을 했는데 한반도 평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북·일 관계도 개선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때도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위로 전문을 보낸 것은 경미한 행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두 사례에 비춰볼 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네마루나 고이즈미의 방북은 탈냉전이나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일면서 추진되었다. 지금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초강경 메시지를 이어가면서 일본에 유화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강화되는 한·미·일 삼각 군사관계를 흔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기시다 총리는 이를 환영했다.

기시다 총리는 작년부터 꾸준히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위로 전문을 보낸 것은 이런 맥락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일 간 물밑 접촉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물론 북한 핵 문제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같이 북·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장벽은 여전히 높다. 이것을 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높은 장벽을 알면서도 북한과 일본이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에 대해선 장기 목표를 가지고 정면 돌파를 유지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대일본 관계에서는 인식이 달라 보인다.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강화, 기시다 총리 입지 악화, 기시다 총리의 대북 유화 메시지 등에 착안해 이 시점에 맞는 단기적·전술적 접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미 관계나 북·일 관계와 같이 주변 정세에 변화가 생겨도,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남북한 충돌을 방지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부는 ‘힘만 쓰는 평화’에 매달리고 있고, 다른 수단을 구사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보인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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