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 고우석의 등장곡, ‘질풍가도’였으면 [이재익의 노보세]

한겨레 2024. 2.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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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 메이저리그 개막전 서울서 열려
김하성·오타니·야마모토 등 스타들 등장
3월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다. 선수들의 등장곡이 궁금해진다. 누리집 갈무리

스포츠 경기 중에 선수들이 등장할 때 노래를 틀어주는 종목들이 있다. 격투기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 은퇴한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은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에 걸맞게 등장할 때 크랜베리스의 ‘좀비’를 틀었다. 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축구와 달리 야구도 등장곡을 따로 가진 선수들이 있다. 등장곡이 가장 인상적으로 강조되는 포지션이 마무리 투수인데,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 후반에 투수가 교체되는 동안 꽤 긴 시간 동안 노래가 흐르기 때문이다.

길고 긴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견 없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수많은 선수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입성한 선수였다. 그는 포스트시즌의 최강자이기도 했는데 100이닝 가까이 되는 통산 평균자책점이 0.7이라는, 뭔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기분이 드는 기록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서 리베라를 상대로 점수를 내본 타자보다 달 표면에 발을 디뎌본 사람이 더 많을 정도. 이 선수는 늘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부상으로 지난 시즌은 통째로 쉬었지만, 2022년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였던 에드윈 디아스 선수도 인상적인 등장곡을 갖고 있다. 트럼펫 연주자이자 디제이인 티미 트럼펫의 ‘나르코’.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뛰고 있는 소크라테스 선수의 응원가로도 쓰여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막상 티미 트럼펫은 평생 야구장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2022년에 직접 메츠 구장을 방문해 라이브로 디아스 선수의 등장곡을 연주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 시즌에 내가 본 수백 경기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짜릿한 순간이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고우석 선수의 엘지(LG) 시절 등장곡은 드라우닝 풀의 ‘솔저스’였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등판하면 ‘질풍가도’를 추천한다. 드라우닝 풀 누리집 갈무리

3월20일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종종 경기를 치르곤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정식 경기가 열리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엘에이(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다. 박찬호와 류현진이 뛰어서 국민구단처럼 느껴지는 다저스, 김하성 선수가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파드리스,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매치업이다. 그뿐인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무려 7억달러를 받고 다저스로 이적한 뒤 뛰는 첫 경기이기도 하다. 작년까지 일본 최고의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기도 하다. 이러니 표가 남아날 리가 있나.

지난 금요일에는 연습경기 예매여서 그나마 나았는데 개막전 티켓을 오픈했던 날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눈을 부릅뜨고 시계를 보다가 저녁 8시가 되자마자 예매 버튼을 눌렀으나 표는 순식간에 매진. 아주 가끔 나오는 취소표를 잡으려고 뚫어져라 화면을 보면서 마우스를 움직였지만 나보다 빠른 누군가 혹은 매크로 프로그램에 밀려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정신 차려 보니 새벽 2시가 넘었고 허리가 아파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개막전에 못 가느냐고?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 동행을 제안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

앞에 언급한 스타들의 이름에 가려져 있지만, 엘지(LG)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건너간 마무리 고우석 선수도 개막전에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검증받아야겠지만, 그래도 장소가 서울인 만큼 개막전 라인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등장곡은 뭘까? 한국에 있을 때는 사이렌 소리가 인상적인 드라우닝 풀의 ‘솔저스’를 썼는데 이 노래를 계속 쓸까? 이벤트로라도 서울 개막전에서만큼은 ‘질풍가도’를 등장곡으로 추천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하겠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전해지지 않을까?

“한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지난가을, 무려 29년 만에 우승을 확정하던 순간 엘지 마운드에는 고우석이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떠난 마지막 공이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키자마자 중계방송에 깔렸던 노래가 바로 ‘질풍가도’였다. 그야말로 최고의 뮤직비디오였다.

가끔 할 일이 많거나 유난히 힘이 빠지는 날, 어릴 때부터 좋아한 록밴드 데프 레퍼드의 노래를 들으며 집을 나선다. 나만의 등장곡인 셈인데 꽤 응원이 된다. 독자님들의 등장곡은 무엇인지? 없다면 응원이 필요한 날을 위해 하나쯤 만들기를 권한다. 오늘이라는 경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니까.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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