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소파, 푹신하지 않아도 괜찮아…따스해 [ESC]

한겨레 2024. 2.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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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균의 목업일기
‘나무 소파’ 만들기
완성된 ‘나무 소파’를 거실에 설치하고 있는 모습.

목수가 되거나, 목공을 취미로 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은 점은 자신의 생활공간을 채울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바로 내 손으로 만드는 소파다.

주로 소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누워서 티브이(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잠도 잔다. 아이들도 뛰논다. 가정용 소파라는 물건은 대체로 비싼데, 2~3년만 지나면 꺼져버리기 일쑤였다. 나무로 된 소파를 만들면 어떨까? 나무 소파라니. 형용모순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소파의 사전적 정의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길고 푹신한 의자”라고 되어 있다. 쿠션 등을 장착하지 않고, 나무 그대로의 질감을 즐기면서 사용할 소파를 만들 요량이었다. 푹신하지도 않고, 팔걸이도 없으니 엄밀하게는 소파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거실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며, 가족들이 앉거나 누워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소파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자재비만 국산 중고차 값

처음부터 우드슬랩(나무를 통으로 가공한 평평한 판재) 중에서도 최고급 수종인 북미산 월넛(호두나무)을 점찍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수종은 쉽게 질릴 수도 있다. 오랫동안 집안에 두고 쓰는 가구재로 비교적 차분하고 단아한 월넛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네모 반듯한 녀석이 아닌, 목재의 바깥쪽 부분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나타나는 ‘라이브 에지’를 그대로 살린 소파를 만들고 싶었다. 게다가 금속제 피스나 못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 결구법’을 적용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름하여 ‘월넛 라이브 에지 우드슬랩 짜맞춤 소파’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구상이었다.

아내와 함께 상의하며 조심스럽게 옵션을 제시했다. 모든 목재가 비슷한데, 크기가 커지면 비싸진다. 특히 우드슬랩은 2배로 커지면 2배가 아니라 몇배가 더 비싸다. 그냥 그런 것이다. 집성(자재를 이어붙이는 일) 과정이 줄어들면 작업성도 좋아지고 물론 더 아름답다. “여보, 자재를 집성해서 만들면 많이 저렴하게 할 수 있어요.” 가장인 동시에 공방 창업의 일등 공신이자 최대 투자자, 그리고 소파의 주문자인 아내는 이번에도 쿨했다. “집성은 무슨, 하는 김에 통 크게 갑시다!” 고맙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 분골쇄신하리다.

정확하게 밝히긴 어렵지만 ‘비용’에만 국산 중고차 한 대값 정도가 들어갔다. 중형차라기엔 과하니, 소형차라고 해두자. 통상 수제 가구의 판매가는 ‘자재비+작업시간에 따른 인건비+약간의 마진’으로 책정되는데 이 소파는 내가 직접 쓸 물건이기에 인건비와 마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뭇값과 그 외의 여러 잡다한 자재비에만 그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쓸 수 있는 최고급 나무 소파가 아닌가. 대단한 호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또한 목수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어쨌든 통판 우드슬랩의 맛과 멋을 그대로 살린 나무 소파라니. 창업 이래 나무공방 쉐돈의 최대 프로젝트가 될 터였다. 소파를 놓을 거실의 폭이 4.5m이니 길이는 약간 여유를 두어 4.3m로 정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기역자 형태로 제작하기로 했다. 자재의 선택부터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일정한 길이와 폭을 충족해야 했고,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했다. 긴 형태의 의자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보면 된다. 다리, 엉덩이판 그리고 등판. 엉덩이판 두 장은 하나의 나무에서 켜낸 자재를 쓰고 싶었다. 두 판을 나란히 이었을 때 나무의 결과 무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칼코마니’ 형태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기댈 수 있는 등받이 판은 라이브 에지가 물 흐르듯 이어지면서도 예뻐야 했고, 마감했을 때 발색도 서로 튀지 않아야 했다. 여러 조건을 고려해 나무를 고르고 또 골랐다. 골라낸 우드슬랩을 바닥에 깔고 맞춰보며, 뒤집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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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과정 중 공방에 찾아온 둘째 아들이 소파에 처음 앉은 주인공이 됐다.

막걸리 사며 ‘뒤집기 일꾼’ 모아

자재가 도착했고, 구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가공이다. 글로 쓰면 간단하다. 홈을 파서 통째로 다리를 끼워넣고, 정확한 각도로 켜낸 등판은 엉덩이판 아래부터 30㎝ 깊이로 타공한 구멍에 지름 2.5㎝의 목봉 여러 개를 끼워넣어 고정하는 방식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 문장을 써놓고, 한참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쏟아부었던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해선 안 된다. 결구의 정확성은, 결국 가구의 수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못이나 피스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나게 견고한 결구 방식임을 자부한다.

사실 가공 그 자체보다 어려운 건 끝없이 자재를 들고, 나르고, 뒤집는 일이었다. 자르고 켜는 과정도, 샌딩도, 타공도, 조립도 결국 계속해서 나무를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나마 조립 전에는 혼자서 감당할 수 있었다. 조립이 끝난 후에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주변의 형님, 동생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한 번만 같이 뒤집자. 점심에 막걸리 살게.” 그렇게 지인들과 여러 차례 낮술을 마셨다. 순수한 제작 기간만 한 달이 걸렸다.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내 두 손으로 해냈다. 매우 힘들었지만, 즐거움이 더 컸다. 모든 가공을 마치고 한 피스씩 오일 마감을 할 때는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오일이 스치면 월넛 특유의 묵직한 색감과 아름다운 문양이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살아났다.

배송에는 스승의 공방인 ‘레진우드’ 크루들이 함께해 주었다. 완성된 소파를 집까지 날라 거실에 배치하는 순간,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나무로 된, 딱딱한 소파가 불편하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나무가 주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있다.라이브 에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파에 앉거나 누우면 손으로 계속 나무를 쓰다듬게 된다. 그렇게 즐기는 맛이 있는 게 바로 나무 소파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거실을 보며 환호했다. 마음껏 뛰어놀거라. 절대 내려앉거나 망가지지 않을 테니.

소파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했으니, 다음엔 주방을 손대볼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주택이나 아파트 주방가구에 통상 사용되는, 필름을 붙인 엠디에프(MDF)는 나무가 아니라고 배웠다. 톱밥에 접착제, 그리고 기타 화학성분을 섞어 압착해 만드는 게 엠디에프다. 싱크대 문짝 아래쪽을 한 번 손으로 더듬어보라. 물을 머금은 표면이 들떠있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목 주방가구를 만든다면 어떤 수종이 좋을까? 월넛처럼 어두운 쪽보다는 오크(참나무) 계열이 좋겠어요. 그래도 작년에 소파를 했으니, 주방은 몇 년 있다가 하는 게 좋겠죠? 오늘도 가족 모두가 즐거운 상상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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