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현실을 비추다…'소풍' '플랜 75'
초고령화 사회 진입 일본, '플랜 75' 통해 사회 문제점 적나라하게 드러내
통계청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중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2025년에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인 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17년이 걸렸지만, 고령사회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는 데 든 시간은 불과 7년이다. 서구 선진국이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서기까지 75~154년 걸린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 노인 인구 증가 속도는 압도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의 속성상 노년의 문제는 스크린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나라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소풍'(감독 김용균)과 '플랜 75'(감독 하야카와 치에)를 통해 노년의 현실을 그려내며 지금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를 짚었다.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소풍'. 이 영화는 80대 노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요양원 생활은 물론 특히 '노인 존엄사'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노인 존엄사 문제는 일찌감치 대두된 문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65세 이상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83.1%는 '존엄사를 찬성하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연명 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서비스 활성화'에 동의하는 노인도 87.8%에 달했다.
'소풍'의 주연 배우 나문희는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며 "내가 촬영을 할 때만 해도 연명치료에 대한 상황이 달랐다. 우리 영감의 경우에도 내가 연명치료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그런 절차를 거치는 게 쉽지 않았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마음대로 죽을 수 있다고 하는 걸 보건소에서 봤는데, '소풍' 촬영할 때만 해도 연명치료하는 상황이 달랐다. 영화가 현실과 다른 부분은 그게 변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그래도 이 작품이 현실과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나문희의 남편 유윤식씨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다.
노인 문제를 또 다른 시각에서 다룬 일본 영화 '플랜 75' 역시 초고령사회의 실태와 문제점을 꿰뚫어 보며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 속 정부는 청년층의 부담이 나날이 커지고 노인 혐오 범죄가 전국에서 이어지자 '플랜 75'라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플랜 75'는 75세 이상 국민이라면 별다른 절차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정책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국가가 준비금 10만 엔(약 90만 원), 개인별 맞춤 상담 서비스, 장례 절차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당사자인 노인뿐 아니라 상담사, 공무원, 유품처리사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인 캐릭터들을 통해 '플랜 75'와 초고령사회의 실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영화는 동시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지난 2016년 7월 26일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인 시설에 침입한 2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19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친 사건 소식을 접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플랜 75'의 시작인 셈이다.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와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으려고 했다"며 "학살보다 '플랜 75'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럴 듯한 말로 보기 좋게 꾸며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플랜 75' 속 세상은 단순히 자극적인 미래 예측에 그치지 않고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노인층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사회 분위기는 현실에서 실제로 목격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게끔 만든다. 배려심 부족과 무관심,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공상과학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혹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로 느끼길 바랐다"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고 어떤 게 정답이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이나 감정의 복잡한 감정선들을 만드는 측에서도, 또 보는 측에서도 하나의 즐거움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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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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