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별천지] ㉒ 파로호, 6·25전쟁 격전지에서 평화의 호수로(끝)
남북 댐 동시 조망 백암산엔 케이블카, 한반도 꽃섬까지…DMZ 관광지 변신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한때 이 호수의 이름은 대붕호였다.
호수의 생김새가 하루에 구만리 장천을 날아간다는 상상의 새 '대붕'(大鵬)을 닮았다고 해 대붕호로 불렸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격전지로 돌변했고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가 됐다.
남한강과 함께 한강의 젖줄을 형성한 북한강 상류 파로호가 그 주인공이다.
파로호는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에도 남북 관계 부침에 따라 오늘날까지도 소환되고 있다.
평화롭던 산골 호수서 중공군 수만 명 수장시킨 호수로
파로호는 일제가 대륙 침략에 필요한 군수 산업용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1938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북한강 협곡을 막아 수력 발전용 댐을 건설하면서 들어섰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파로호는 중공군을 지평리 전투에서 막아낸 뒤 북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에게는 장애물이었다.
북한군과 중공군은 파로호 수문을 열어 수공 작전을 전개했고, 이 바람에 북한강의 수위가 2m가량이나 올라가면서 부교가 파괴되는 등 작전에 막대한 차질을 줬다.
1951년 5월 1일 동해 미 항공모함 프린스턴호에서 출격한 뇌격기 8대는 화천댐에 어뢰를 투하해 수문을 폭파했다.
댐 폭파로 중공군의 수공작전은 불가능해졌고, 국군과 미군은 같은 달 16∼25일 용문산 전투 등에서 패배한 중공군이 화천댐에서 퇴로가 차단되자 대대적인 섬멸 작전을 벌였다.
육군본부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지암리·파로호 전투'는 5월 24∼30일 파로호에서 사살된 중공군은 2만4천141명이고, 포로는 7천905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해 1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라는 휘호를 내렸다.
파로호는 애초 대붕호라는 이름과 함께 화천댐, 화천저수지로도 불리었으나 이후로는 파로호로 굳어졌다.
북한 금강산댐 대응, 평화의댐 건설·증축으로 또 수난
파로호는 6·25전쟁 정전 협정이 맺어진 뒤에도 남북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부는 1986년 11월 금강산댐(임남댐) 건설로 인한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성금을 걷어 파로호 상류에 평화의댐 건설을 추진했다.
2002년 1월에는 임남댐 정상부에서 폭 20m, 깊이 15m의 훼손 부위가 관측되자 평화의댐 높이를 기존의 80m에서 125m로 높이는 2차 증축 공사까지 벌였다.
평화의댐 건설과 증축 공사를 위해 파로호의 수위를 낮추면서 수중 생태계는 파괴되고, 관광객과 낚시꾼들의 발길은 뚝 끊어졌다.
쏘가리 등 어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어종은 퇴수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가량 감소했고, 외래어종인 배스는 급증했다.
금강산댐 건설 이후 파로호로 유입되는 북한강 수량은 40% 정도 감소했다.
파로호가 이처럼 갈등과 대결로만 점철된 곳은 아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협정 추진 등 평화의 바람이 불던 2018년에는 파로호의 수장된 중공군 유해를 발굴해 송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적대적인 의미의 파로호를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더는 진전되지 못했다.
평화누리호 띄우고, 양구 상류엔 '한반도 꽃섬' 조성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에 있는 파로호 주변 지역은 최근 청정 관광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화천군은 2022년 10월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한의 금강산 댐과 우리 측 평화의 댐을 조망할 수 있는 백암산에 케이블카 운행을 시작했다.
케이블카는 파로호 유람선 평화누리호와 연계해 운행한다.
화천군은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자 40t 규모인 평화누리호를 건조해 케이블카와 함께 선보였다.
유람선은 파로호 구만리 선착장에서부터 평화의 댐 구간 23km를 왕복 운행한다.
평화의댐 정상에는 세계 30여개국 분쟁지역에서 수집한 탄피 등으로 제작한 37.5t 규모의 평화의 종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2명의 핸드프린팅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정부가 평화의댐 공사를 위해 파로호 수위를 낮추면서 양구지역도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고 아름다운 호수 경관이 심하게 훼손됐다.
양구군과 원주지방환경청은 수위 급락으로 인한 피해가 더는 발생하는 사태를 막고자 2004년 사업비 65억원을 투자해 길이 142.9m, 높이 14.4m 규모의 수중보를 조성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양구 방면 파로호 상류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수중보와 습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흙을 모아 만든 게 한반도섬이다.
양구군은 최근 한반도섬을 꽃섬으로 가꾸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조성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군은 133억원을 들여 파로호 꽃섬과 양구읍 동수리를 연결하는 폭 2m·길이 510m의 출렁다리와 전망대, 포토존, 편의시설 등을 2025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양구군 관계자는 "파로호 꽃섬 하늘다리 조성으로 관광객 동선을 넓히고 인근 관광지와 연계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양구읍 상무룡리 파로호 상류는 겨울철 냉해를 덜 받는 데다 일교차가 커 당도 높은 사과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생산한 사과는 주문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파로호는 최근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용수를 제공하는 기능으로도 조명받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화천댐에서 '한강수계 발전용댐 다목적 활용 실증 협약'을 했다.
협약은 경기도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 기존 소양강댐·충주댐 등 한강수계 다목적댐 외에 추가로 수원을 확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금강군 옥밭봉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비무장지대(DMZ)에서 시작된 수입천을 아울러 내륙의 바다를 형성한 파로호는 냉기 가득한 최전선에서 생명과 평화의 호수로 부활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dm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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