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법이 뭔데요?" 식당 사장님 어리둥절…아직도 현장은[르포]

이강준 기자, 최지은 기자, 남양주(경기)=김미루 기자, 오석진 기자 2024. 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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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무산 이후
2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의 한 곱창집에서는 이날 판매될 곱창을 삶고 있었다. 화구에서는 불길이 세게 솟고 있었다. 식당, 카페도 상시 일하는 인원이 5명을 넘기면 중처법 적용 대상이다./사진=최지은 기자


"식당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되나요?"

2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식당 주인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을 묻는 취재진에게 이같이 되물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원칙적으로 식당, 숙박업소 등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를 인지하는 업주들은 만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가 무산된 이후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법은 확대 시행됐는데 정작 법 적용 대상인 영세 사업주들에게 해당 내용이 닿지 않아서다.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묻지마식 입법'이라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2년 1월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 후 지난달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됐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 등은 현장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2년의 추가 유예를 요구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종로구 식당가 "식당도 적용돼요?" "대책? 없는데…"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식당, 카페도 상시 일하는 인원이 5명을 넘기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식당은 안전보건 관리 전담 조직이나 담당자를 설치·지정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사업주는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6개월에 1회 이상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식당도 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업주들이 다수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설렁탕집에서 일하는 B씨는 "5인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이지만 우리 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라는 건 방금 처음 들었다. 전혀 몰랐다"며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논의된 게 없다"고 밝혔다.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규모 식당 등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하는 것보다 산재(산업재해) 처리 절차를 더욱 현실적이고 정교하게 하고 종업원들이 실질적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소고기 음식점에서 일하는 C씨는 "이런 식당에서는 현실적으로 개인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대책이라는 게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주방에서 일하다가 발가락이 부러져서 수술까지 했다"며 "산재를 처리할까하다가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그냥 사비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보통 이런 식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남양주 불판 세척 공장 "중처법은 돈을 이중으로 쓰게 만드는 법"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착용한 공장 직원이 모터 기계에 불판을 닦고 있다. /영상=김미루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준비를 위한 비용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도 확대를 위한 비용을 오로지 사업주들에게 전가한다는 관점이다.

경기 남양주 한 고깃집 불판 세척 공장을 6년째 운영하는 김용기씨(61)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황당무계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김씨 공장은 20평 남짓 크기다. 매일 오전 5시 180도로 끓인 물에 불판을 불렸다 건져낸 후 고압수를 살포해 세척한다. 고압수는 세차장 고압수보다 5배 이상 강하다. 야간 배송 기사들은 300㎏ 무게 불판을 하루에 약 30곳 이상 고깃집에 배달한다.

김씨는 "공장에 안전책임자가 있어도 야간 배송 기사 6명을 모두 감독할 수는 없다"며 "이들이 안전하게 일하는지 보고 받으려면 보조 기사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인건비는 두 배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을 받는 순간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다른 것은 남한테 맡길 수 있어도 중요한 거래처 확보는 대표가 전담한다"며 "대체할 인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몰라도 영세한 회사는 사장이 처벌받으면 직원까지 직장을 잃는다"고 했다.

동작구 건물 해체 현장 "안전교육, 안 받는 근로자도 있어…악용 사례 어쩌나"
2일 오전 11시10분 서울 동작구 건물 해체현장에서 근로자가 잔해를 공사용 줄로 붙잡고 있다/사진=오석진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한다. 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안전관리자'를 고용하는 등 사고 예방 의무를 지켜야 한다.

서울 동작구의 한 건물 해체 현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현장 안전관리자 A씨는 "여기 직원 대부분 오늘 일해야 내일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사업주가 중처법으로 처벌 받아) 당장 일거리가 없어지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A씨가 일하는 현장에선 주유소와 건물 두 동을 해체하고 청년주택을 신설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엔 관리자를 제외하고 9명이 해체 작업 중이었다. 9명 모두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했다. 건물 위 해체 장비 인근에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수가 있었다.

A씨는 "숙련된 노동자에게도 중대재해처벌법은 부담"이라며 "조치를 다 해도 결국 100% 안전이라는 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체나 철거 작업의 특성상 건물을 뜯으면 낙하물이 반드시 생긴다"며 "안전 수칙을 잘 지키면 걱정 없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현장을 잘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A씨는 또 "신규자 안전교육·특별안전교육·전기안전교육·아침 조회 모두 철저히 하고 있지만 근로자 스스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사고를 보면 아무리 일방적인 것으로 보여도 늘 과실을 따지지 않나"라며 "변수가 더 많은 현장은 어떻겠나"라고도 했다.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서울 마포구 소재의 한 철거업체 사장 이모씨는 "건설업은 주로 인력사무소에서 직원을 받는다"며 "처음 본 직원인데 우리 현장에서 다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친 흔적이 있다고 하면, 그런 경우 처벌 받을 수도 있나 우려된다"고 했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남양주(경기)=김미루 기자 miroo@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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