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그래서 가능한 것들…'대혐오 시대'에도
대중음악 구조적 한계서도 최대한 고민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톱 가수 겸 배우 아이유(IU·이지은)의 신곡 '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 뮤직비디오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지켜보면서 문인수 시인의 시(詩) '이것이 날개다'가 떠올랐다.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이것이 날개다' 중)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의 빈소를 다뤘다. 정식씨와 그의 동료들을 보는 비장애인 자원봉사자가 있는 풍경이다.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덤덤하게 그렸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아이유의 '러브 윈스 올' 뮤직비디오는 장애와 비장애를 낭만적으로 구분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홍역을 치렀다.
아이유와 그룹 '방탄소년단'(BTS) 뷔가 뮤직비디오 주인공을 맡았다. 이 뮤직비디오 현실 속에서 아이유가 맡은 인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 뷔가 연기한 캐릭터는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둘은 수어로 대화한다. 그런데 캠코더를 통해 펼쳐지는 영상 속에서 두 사람은 장애 없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채 행복한 모습이다. 헤테로(이성애자)의 멜로 감정을 위해 장애가 대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사실 캠코더 속 세상도 행복하지는 않다. 두 사람은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이들에게 끊임없이 쫓긴다. 이미 억압된 상태였는데 이 부분은 언급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번 뮤직비디오에 대한 성명과 만평을 내면서 "아이유님을 비난하거나 책망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들을 예술 콘텐츠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시민분들과 아이유님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밝힌 건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원래 '러브 윈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러브 윈스 올'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전에 이미 어려움을 겪었다. 성수자 커뮤니티에서 아이유가 '러브 윈스'라는 곡 제목을 사용하면, 이 말이 원래 가진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역사적인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린 직후 성소수자와 이들의 지지 단체가 '러브 윈스'(Love Wins·사랑이 승리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환호했기 때문이다. 목숨까지 걸고 투쟁 끝에 얻은 슬로건인데, 아이유 같은 영향력이 큰 스타가 이성애자 시선으로 해당 용어를 쓰면 동성애자를 타자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가난한 상상력, 대중음악 문법 안 구조적 한계
이번에 아이유가 뮤직비디오와 노래로 장애인·성소수자를 다룬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한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문구는 '러브 윈스 올' 노랫말과 이전 티저 포스터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가난한 상상력'이다.
사실 이 비판은 아이유에게 아프다. 일견 조롱으로 볼 수 있는 가혹한 비난이다. '가난한 상상력'이라는 표현은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적인 한계에서 제한되는 상상력을 표현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19금'이 난무하는 영미팝과 달리 아직까지 한국 대중음악은 '무해함'이 기본 설정값이다. K팝이 영미권 부모로부터 환영 받았다는 사실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다 보니, 아티스트의 개인적 정체성과 의견 표출은 최소화되고 그의 예술 세계는 표백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이유가 '국민 여동생'으로 통하면서, 인기를 얻은 과정 역시 그렇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보다 순응하고 겨우 용기 내 하는 말도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아이유 '좋은 날' 중)일 때부터 아이유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아이유의 데뷔곡 '미아'는 어두운 발라드였다. 그녀는 이유 없는 혐오의 피해자다. 어린 여성 솔로가수라는 이유만으로 데뷔 무대에선 야유 심지어 욕이 쏟아졌다. 언론도 그녀에게 마냥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성적대상화가 됐고 주요 방송에선 성희롱이 나오기도 했다. 장애인, 성소수자와는 다른 결로 '대혐오의 시대'를 그녀 역시 몸소 겪어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 메이저 신에 입성한 것이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다양한 리메이크곡, 인기 드라마 등에 출연하면서 젊은 대중가수 중 '국민가수'에 가수 근접하게 됐다.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다. 아이유의 아티스트적이거나 진보적인 의견이 상당수 반영된다고 해도 결국 대규모 시스템 안에서 움직여야 하므로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다.
'러브 윈스 올'이 발표 즉시 콘크리트 차트인 국내 멜론 '톱100'에서 1위를 차지한 것에서 보듯, 소수의 의견을 따르려고 해도 다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메인 스트림의 대중 음악 문법은 따로 있다. 아티스트가 아닌 시스템이다. 그 안에서 편한 선택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가수는 드물고 그 중 한명이 아이유다. 누군가는 트렌디하게 이슈를 잘 이용한다며 눈을 흘겨보지만 본래 대중음악 속성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좀 더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가수가 아이유다.
실제 국내에서 '러브 윈스'의 맥락을 모르는 이들은 상당수였고, 평소 화면에 비치는 장애인에 대한 이슈를 무시한 이들은 대다수다. 아이유가 아니었으면, 국내 대중음악 신(scene)에서 이런 소재가 화두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농아인 병든 할머니(손숙 분)와 단둘이 남겨져 팍팍한 삶을 사는 '이지안' 역을 맡아 수화를 배웠던 아이유는 농아 어르신들을 위해 써달라며 농아인협회에 5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아이유는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자가 강청'(autophony) 현상 등이 나타나는 '개방성 이관증'(이관 개방증)을 앓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지속적으로 따지는 건 중요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이라 믿는다. 그런데 유독 아이유에게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실제 국내 다양한 콘텐츠물에서 장애인, 성소수자를 다루는 걸 따져보면 비판할 게 넘친다. 물론 콘텐츠 길이가 짧다고 밀도가 부족한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5분23초짜리 뮤직비디오, 4분32초짜리 곡은 은유가 많을 수밖에 없다. 바라보는 시각의 순진함에 대한 지적들은 일견 타당하지만 종종 인신 공격으로 변질된 비난은 '러브 윈스 올' 뮤직비디오에서 혐오의 시선을 뜻하는 정육면체와 같다
정당한 비판이 아닌 가혹한 비난이 계속될 경우 창작자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 앞서 아이유는 '해석의 다양성' 측면에서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 아이유가 첫 프로듀싱에 나선 음반인 미니 4집 '챗셔'(2015) 수록곡 '제제'가 영감을 받은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캐릭터 '제제'를 아동성애 등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지적이 난무했다. 한편에선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발 의견이 거세지기도 했다. 아울러 '롤리타'로 부당하게 소비된 아이유의 모습이 투영된, 가슴 아픈 노래라는 해석도 나왔다.
"사회적 실천에서 두담론을 비교하면,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집단의 경우, 아이유 해석에 있어 원작의 본질과 윤리성의 문제, 지식적 전문성을 주요 판단기준으로 설정했다. 이에 반해, 아이유 중심의 집단은 해석의 다양성과 창작의 자유, 그리고 이미지성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중 '대중문화 텍스트에 관한 SNS 비평 담론 연구- 아이유 를 둘러싼 미학적 해석의 차이를 중심으로'에서)는 학술적 분석도 있었다.
특히 장애인 같은 소수자를 대할 때 중요한 건 의식적 공감의 눈물이 무의식적인 감사의 눈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유의 '러브 윈스 올'은 의식적 공감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상태가 나아서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우월적 판단이 아닌, 억압된 무엇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메시지에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눈에 띄게 달라진 문화 소비자의 기준에 맞춰 좀 더 세공이 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유는 자신이라서 가능한 것들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고민해서 꺼내 보인다. 지금껏 현명하게 어려움을 돌파해온 아이유는 다수가 주목하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녀의 행보를 톺아보는 시선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백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됐고 혐오의 대상이 됐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뮤지션이 된 지금도 딥페이크의 희생양이다.
아이유는 2년2개월 만인 오는 20일 새 음반을 낸다. 여섯 번째 미니앨범 '더 위닝(The Winning)'이다. 그녀라면 어찌할 수 없는 이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화법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해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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