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효 다했다”…정의당 떠나는 사람들은 ‘진보’할까
정의당 떠나는 사람들
정의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러 갈래로 분화하고 있다. “정의당만으로는 안 되지만 정의당 없이도 안 된다”며 당 안에 ‘대안신당 당원 모임’을 만들어 외연 확장을 모색해온 박원석 전 의원, 배복주 전 부대표, 권태홍 전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자 출신 9명이 지난달 15일 탈당했다. 이들 가운데 7명은 김종민·조응천·이원욱 등 더불어민주당 탈당파가 만든 ‘미래대연합’에 합류했다. 박원석 전 의원은 미래대연합 공동대표를 맡아 이재명 대표 사당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을 탈당해 ‘새로운 미래’를 만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오는 4일 ‘개혁미래당’을 창당한다.
2022년 당대표 경선에서 “이제 6411 버스에서 내릴 때”라며 ‘탈이념, 탈진보, 정의당 해체’를 주장해온 ‘세번째 권력’의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와 류호정 전 의원도 정의당을 떠났다. 이들은 금태섭 전 의원이 만든 ‘새로운 선택’에 합류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까지 아우른 ‘빅텐트 전략’으로 총선을 치르려 한다.
이들보다 앞서 2022년 9월엔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가 “정의당에서다른 의견의 공존이 불가능하고, 다른 방법, 다른 전략은 토론과 논쟁의 주제가 되기보다는 같은 당을 할 수 없다는 배제와 축출의 대상이 됐다”며 탈당했다. 초대 정의당 대표를 지낸 그는 지난해 7월 “정의당은 더는 고쳐 쓸 수 없다. 당 밖에서 새로운 진보 정당을 만들겠다”며 탈당한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 임명희 당시 강원도당위원장 등 전현직 정의당 당직자 60여명과 함께 창당준비위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조만간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고, 민주당을 포함한 제 정당과 ‘비례 연대’를 추진해온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과 설 즈음까지 ‘새진보연합’을 창당하기로 했다.
정의당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창당 10년을 맞은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 패배 뒤 존망의 갈림길에 서자 10년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평가위의 진단에 기초해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당명 개정을 비롯한 강령, 조직 노선을 포함한 재창당을 결의(9월17일)했지만 분열과 이탈을 끝내 막지 못했다. 2022년 11월 당대표에 선출된 이정미 대표는 ‘선명한 제3정당’, ‘제3지대 정치 세력과 연대·연합’을 외치며 “2023년 안에 재창당 완료”를 다짐했지만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정의당 후보가 1.83%의 참담한 득표로 참패하자 물러났다.
정의당 전국위는 녹색당·진보당·노동당 등과 연대를 통한 ‘선거 플랫폼 정당’으로 4월 총선 돌파를 결의하고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했다. 연대 대상 가운데 녹색당만 화답하면서 2월3일 녹색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꾼다. 정의당의 이런 선택에 당 안에서 새 길을 모색해온 세력들은 “정의당 주류가 반복해온 위기 탈출용 정치공학 연대”라며 탈당을 결행하면서 당의 분화를 촉진하는 원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민당 창준위, 세번째 권력, 대안신당 당원 모임 등 정의당을 탈당한 3개 세력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뛰쳐나온 이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정의당이 사실상 ‘제3지대 신당의 충원군’역할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초가삼간에 불…불 안 난 자리만 찾아”
이들은 왜 정의당을 탈당했고,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3개 세력의 대표주자 격인 6명에게 물었다. 개혁미래당 창당에 나선 박원석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 사민당 창당을 주도한 천호선 전 대표와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 새로운 선택에 몸을 실은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와 류호정 전 의원이다.
이들은 모두 “정의당은 진보 정당으로 시효를 다했다”며 제3지대에서 정의당의 가치를 실현하고 외연을 확장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친다. 박원석 전 의원은 “정의당은 거대 양당 바깥에서 가장 오래된 제3정당인데 지지기반의 급격한 축소로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에 질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올해 4월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를 두고도 의구심이 커졌는데, 혁신 재창당을 결정하면서 녹색당과 연합 노선을 선택했다. 녹색정의당을 서구적 의미의 연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원내 의석이 필요한 녹색당과 고립을 피해야 할 위기에 직면한 정의당이 총선에 의석을 확보해 나눠 먹고 총선 뒤엔 각 당으로 흩어지는 위기 탈출용으로, 명분도 실리도 없다. 이들과 함께 침몰할 수 없다고 판단해 탈당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재창당을 책임진 정의당 주류가 옛 방식에 매몰돼 초가삼간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끄고 다시 집을 지을 생각을 않고 불이 안 난 자리만 찾아다니다 결국 진보 정당의 모든 자산을 다 태워 먹은 꼴”이라고 혹평했다.
사회민주당 창준위의 공동위원장인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도 “녹색정의당은 생존 연합일 뿐이다. 정의당이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는데 녹색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고 당에 대한 국민 신뢰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 정당의 맏이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은 제가 탈당한 이후에도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금태섭 전 의원과 함께 새로운 선택 공동대표를 맡은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등의 진단도 다르지 않다. 조성주 대표는 “정의당 주류는 반독재 민주화 시대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거대한 악을 척결하는 게 정의당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거대한 악은 검찰, 국민의힘, 윤석열로 바뀐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산업 전환 등 당면한 근본 문제 해결보다 거악 척결에 집중하면서 그를 위해선 주력군인 민주당 옆에 어쨌든 같이 서야 한다는 논리로 귀착한다.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뒤에도 정의당에선 반윤석열 투쟁을 더 세게 하지 않아 참패했다고 했는데, 젊은 세대는 그런 거악 척결론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젠더·청년·기후…“트렌드만 따라가나”
정파 중심으로 당이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류호정 전 의원은 “정의당의 오래된 정파인 인천연합, 전환, 그리고 심상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그룹, 이 세 세력이 모든 문제를 미리 조율하고 결정한다. 전국위원회도 정파별로 인원수가 안배돼 있다”고 말했다. 조성주 대표는 “우리가 당대표 경선에서 ‘이제 6411 버스에서 내릴 때’라며 새로운 진보를 얘기했을 때, 인천연합 등에선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다른 주장을 하는 우리를 이질적인 병균처럼 취급했다. 더 이상은 내부 설득은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정치 세력으로 이 중요한 순간을 그냥 민주당 응원하는 정의당 주류 옆에 앉아서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의당 지도부가 관성처럼 정의당 이름값으로 선거를 치러왔다고 질타하는 지적도 나왔다. 배복주 전 부대표는 “국민이 무엇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국민에게 어떻게 소구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데 관성대로 정파적으로 조율했다. 유권자·언론은 더는 정의당에 관심도 없는데 우리가 10년 정의당 했으니, 어쨌든 어느 정도 지지율은 나올 것이다, 기본 몇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선거에 임한다”고 비판했다. 배 전 부대표는 “정의당엔 평등 의제 등 좋은 정책이 많다. 그러나 젠더 이슈만 크게 부각됐다. 지도부가 노동·민생 의제를 균형 있게 받쳐주지 못하니까, 국민은 결국 일부 의원의 편향적 주장만으로 정의당을 인식하게 됐다”며 “지난 총선 당시 큰 트렌드가 청년 정치라서 청년 비례를 1·2번에 배정했는데 이번엔 기후위기를 트렌드라고 보고 녹색당과 손쉽게 손잡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2020년 총선에서 청년 비례로 국회에 입성한 류호정 전 의원은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 선택을 통한 제3지대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뒤에도 의원직을 유지해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25일에야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다. 류 전 의원은 “이질적인 조합이라도 거대 양당과 독자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3당을 만드는 게 양당 체제 극복, 다당제를 지향하는 정의당 당론에 더 맞는다”고 말했다. 정의당에 ‘페미니즘당’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비난받던 그가 양당 체제를 극복하겠다며 ‘이대남’(이십대 남성) 논리를 대변해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는 ‘개혁신당’과 연대까지 모색하는 것도 논쟁거리다. 류 전 의원은 “이준석 대표와 함께하려고 제 기존 입장을 바꾼 적도 없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고 양극단에 있는 시민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평범한 시민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주목하는 것”이라며 “싸우더라도 어쨌든 대화하고 타협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그런 정치적 태도를 가진 사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함께하는 제3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당파, ‘새 진보 핵심가치’에 차이
정의당을 나간 세 세력이 이견을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당장 정의당과 민주당의 연대를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 새로운 선택에 합류한 이들은 ‘민주당 이중대 전략’이 정의당이 독자적인 제3정당으로 입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거대 양당 기득권 틀을 깨려면 이준석·이낙연 전 대표와 연대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면 사민당 창당 세력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선거연대나 연합정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잃었다고 진단한다. 천호선 전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심상정 후보에게 민주당에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연합정치를 먼저 제안하자고 요구했지만, 심 대표는 ‘내가 어떻게 그걸 말하냐’고 했다. 당내 주요 정파는 입으로는 민주당과 연대를 말하지만 실제 연대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 만약 우리가 그때 적극적으로 연합정치를 제안했다면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 결과는 물론 정의당도 지금처럼 쪼그라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민당 창준위의 공동위원장인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은 2022년 비례대표 의원이 정의당의 비호감 여론을 높인다며 비례 총사퇴 투표를 제안했고, ‘세번째 권력’이 정의당 해체를 주장했을 땐 당 지도부에 해당 행위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라고 요구했다. 정 전 수석대변인은 “비례대표 총사퇴 투표 당시 지도부가 반대 입장을 밝히며 부결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정의당의 기풍·노선 등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또 정의당 해체를 주장할 때 지도부가 단호하게 조처하지 않고 그냥 안고 가자는 식으로 봉합하면서 정의당은 완전히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사민당에 몸담은 이들이 이준석 신당과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새로운 선택과는 제3지대 신당을 함께할 수 없다면서 민주당을 포함한 범민주 세력과 반윤석열, 이준석 신당 확장 저지를 위한 ‘비례연합정당 창당’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다.
지향점에서도 탈당 세력은 차이가 있다. 정의당 해체까지 주장했던 새로운 선택은 기존 진보 정당과 다른 지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조성주 대표는 “‘세번째 권력’이 정의당에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노동문제의 경우 민주노총 등 노총 중심 조직 운동에서 벗어나 기업별 노조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연금 개혁도 세대 간 불평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외교·안보도 신냉전 국면으로 바뀌었으니 한·미·일 동맹에 대한 (비중 있는) 재고가 필요하며, 이전과 같은 남북 관계는 당분간 어렵다는 것이다. 또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기업으로 경제정책을 가져갈 수는 없다.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반면 사민당 창준위는 교육·의료·주거·일자리 등 4대 분야의 ‘국가 완전책임제’를 현실화하는 혁신적 복지국가와 남북을 각각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평화 2국가 체제’를 핵심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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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과 다르다고 모두 탈당하진 않는다”
이들이 제3지대 신당으로 성공하기까지도 험로가 예상된다. 일단 녹색정의당은 물론 사민당, 새로운 선택, 개혁미래당 등 제3지대 정당을 모색 중인 세력의 총선 성적표는 현행 연동형 비례제 유지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전 당원 투표로 당론을 정하기로 하면서 권역별 병립형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경우 의석 배분 최소 득표율 기준이 정당득표율 7~8%로 올라가면서 모든 세력이 각개 약진할 경우 의석 확보가 쉽지 않다. 특히 범민주 세력과 비례연합정당을 모색해온 사민당 창준위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천호선 전 대표는 “거대 양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거의 의석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양당 독식, 지역주의는 더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선택, 이낙연·이준석 신당 등의 이합집산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당득표율을 올리려면 힘을 합쳐 최대한 많은 지역구에 후보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당으로 뭉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박원석 전 의원은 “지금 제3지대 세력이 화학적 결합을 하고, 새 정치의 실체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가치와 비전을 완벽하게 공유할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 안 하면 아예 기회가 없을 수 있으니 화학적 결합 이전에 함께 총선을 치르고 이후 비전을 쌓고 변화를 모색하는 시간을 갖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새로운 선택의 조성주 대표도 “제3지대 성공을 위해선 정책이나 노선의 차이보다 공통점을 중심으로 일단 생각해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 한·미·일 동맹, 민주주의 등 큰 틀의 최소 강령에 합의하고, 나중에 더 세부적인 정책은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정의당을 탈당한 이들의 주장에 대해 “(득표율) 3~5% 나오는 선거에 소명으로 출마하는 걸 더 지속하고 싶지 않다며 창당 기획이 필요하다고 고민하는 지점은 큰 틀에서 공감할 수 있다”면서도 이들이 탈당 명분으로 제기한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른 일종의 정치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녹색정의당으로 당명 변경은 투표를 통해 75%의 동의를 얻은 것이며, 반대 의견도 25%나 됐다.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이들이 다 정의당을 떠나진 않는다”고 탈당 세력을 에둘러 비판했다. 정파 문제에 대해서도 “이낙연·이준석은 왜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나왔나. 정파는 모든 정당에 존재한다. 탈당한 분들도 정의당에선 특정 정파였다. 제가 정파의 결정을 단순 집행하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분들도 자강을 통한 독자 세력화가 어려우니 탈당해 다른 세력이나 집단에 의탁해 세력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 정의당과 민주당의 연대를 비판하면서 이재명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이낙연, 보수 정당을 자임하는 이준석과 연대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하느냐”며 “정의당이 진보 정당으로 시효를 다했는지 아닌지는 유권자들이 총선에서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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