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신규 입주 1년 새 30% 줄어···"50대 직원이 공장 막내"

박진용 기자 2024. 2. 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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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인력난에 증설 포기
작년 입주기업 5319곳 그쳐
'사실상 대안' 외국인 근로자는
계약해지 빌미로 태업·결근 압박
2일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경기 안산시의 일자리센터 취업정보 게시판에 제조업 등 구인 공고는 잔뜩 게시돼 있지만, 청년 구직자들의 발걸음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산=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극심한 인력난에 국내 산업의 핵심 터전인 국가산업단지의 신규 입주 기업이 1년 새 30% 넘게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유지할 최소한의 인력마저 구하기 힘들어지자 공장 신설이나 이전·확장 등을 포기하는 기업인들이 늘어난 결과다.

2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산업단지에 신규 입주한 기업 수는 전년 대비 30.8% 줄어든 5319개로 집계됐다. 연도별 신규 입주 기업 수는 2020년 7017개, 2021년 7694개, 2022년 7689개였다. 이처럼 매년 일정한 흐름을 보이던 수치가 지난해 급감한 것은 경기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는 만성적인 구인난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조차 공장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 데 어려움을 겪다 보니 생산라인 확장이나 공장 신설을 보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종 중견기업의 신규 인력 수요는 기업당 평균 41.3명이었지만 실제 충원된 인력은 8.5명에 불과했다. 중견기업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 허용 기준으로 인해 외국인 인력 고용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결국 구인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당초 예상했던 납품 물량을 채우는 데 실패하고 기존 직원들은 늘어난 업무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선택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청년 근로자 유입 감소로 기존 근로자들의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산업재해 위험성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뿌리산업 업종의 한 기업인은 “대학교 졸업 지원자는 발길이 끊긴 지 오래고 그나마 정기적으로 입사했던 고등학교 졸업자들은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퇴사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필요 인력의 20%를 충원하지 못해 지난해 목표 생산량도 80%를 간신히 넘겼다”고 전했다.

중견·중소기업 업계에서는 1년 내내 채용 지원만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채용 포털 캐치에 따르면 2023년 중소기업의 채용 공고 수는 전년보다 135% 증가했다.

박철우 한국공학대 교수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단순 생산 인력 외에도 산업단지 내 설계나 연구 인력이 적극 유입돼야 하는데 이러한 고급 인력도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한동안 전국에 활발하게 지어졌던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하려는 기업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인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인들은 공장을 쪼개 임대를 하거나 아예 통매각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게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기업인들이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애써 키운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속만 태우고 있다. 특히 구인난이 일시적 어려움을 넘어 회사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아예 사업을 접는 길을 고민하는 기업인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반도체 부품 분야의 한 중소기업인은 “정부가 소부장 특화 단지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회사를 옮기는 결단을 내렸지만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면서 “회사가 이전하자 본사 인력의 20~30%가 회사를 떠났는데 막상 부산에서는 청년 지원자가 없어 막대한 타격만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같이 부산과 같은 대도시마저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 중소 도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충청권에 생산 공장을 둔 한 식품 기업은 생활 인프라 부족 탓에 인력난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젊은 일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며 “주변에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보낼 문화 시설도 부족하고 교류할 비슷한 연령대의 지역 주민을 찾기 어렵다 보니 기피하는 경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둔 기혼자들은 교육 때문에 큰 도시로 이직하기도 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괴롭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직원들의 정년을 무기한 연장하며 근근이 버티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울산에서 산업 기자재를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정년이 60세이지만 본인이 원하면 퇴직 후 1년씩 연장하는 방식으로 퇴직자를 재고용하고 있다”면서 “18명 직원 중 7명이 퇴직 직전 대비 연봉 70%를 받으며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들은 평균 6~7년 정도 추가 근무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만성적인 구인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외국인 인력 활용이 거론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은 원칙적으로 처음 근무를 시작한 기업에서 일정 기간 일해야 한다. 회사를 옮기기 위해 근로계약을 해지하려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경우 한국 체류 기간 3년간 최대 3번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이를 악용해 더 좋은 조건이나 친인척들이 근무하는 다른 기업으로 가기 위해 근로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태업이나 무단결근을 일삼는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2일 중견·중소 제조업 공장들이 밀집한 경기 안산국가산업단지 곳곳에 공장 매매·임대 현수막과 인력 알선 업체의 광고가 붙어있는 가운데 유동 인구가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산=오승현 기자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68%는 외국인 근로자의 계약 해지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입국 후 3개월도 안 돼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 비율도 전체 요구의 25.9%에 달했다. 계약 해지를 거절한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태업(33%), 꾀병(27.1%), 무단결근(25%) 등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마지못해 계약을 해지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87.5%였다.

중소기업과 같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견기업의 경우 제도적 한계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마저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제조 업종의 경우 E-9 외국 인력은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에만 허용된다. 이에 중견기업계는 외국인 인력 활용 관련 제도가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점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호준 중견련 상근부회장은 “지난해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300인 이상 비수도권 소재 뿌리 중견기업까지 외국인고용허가제를 확대했지만 현장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라며 “업종과 기업 규모 등 경직적인 기준을 넘어 전체 제조 중견기업까지 외국인 고용을 전향적으로 확대해 경쟁력 하락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기업 부럽지 않은 규모를 갖춘 중견기업이나 일부 중소기업들은 정부 지원책과 별도로 구직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지예 잡플래닛 이사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채용 설명회를 열면 지역 소재 기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큰 편”이라며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다 보니 입사 지원자가 충분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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