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후드 위에 쇳덩어리 조각상…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그거사전 - 13] 고급 승용차 후드에 튀어나와 있는 ‘그거’
차량 전면의 그릴이나 후면 트렁크 문에 붙어있는 제조사의 로고는 엠블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롤스로이스나 재규어 같은 몇몇 고가 브랜드는 차 후드 위에 입체적인 엠블럼, 후드 오너먼트를 장착한다.
대표적인 후드 오너먼트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형 별, 재규어의 앞으로 도약하는 재규어 ‘리퍼’, 벤틀리의 날개 달린 알파벳 B 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후드 오너먼트를 꼽자면 단연 롤스로이스의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이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두 팔은 뒤로 쭉 뻗은 여성과 바람에 휘날리는 드레스를 형상화해 ‘플라잉 레이디’ ‘실버 레이디’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모델이 내연녀였다는 점이다. 몬태규 경은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신분의 격차로 이뤄지지 못한 연인(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상은 내연 관계였고 둘 사이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의 비서 엘리노어 벨라스코 손튼(1880-1915)의 모습을 본뜬 후드 오너먼트를 원했고, 이때 만들어진 것이 환희의 여신상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위스퍼’다.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댄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인데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사랑’을 은유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내연녀를 본뜬 여신상을 차에 떡 하니 붙여놓고 달린 유부남의 패기가 놀라울 뿐이다.
이에 사익스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에서 얻은 영감과 기존 위스퍼의 특징을 잘 버무려 1911년 환희의 여신상을 만들었다. 롤스로이스는 홈페이지에서 환희의 여신상 탄생 비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연 관계니 불륜이니 하는 것들은 쏙 빼놓고 ‘뮤즈 엘리노어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이런 식이다. 왜 그러니 내뮤남불(내가 하면 뮤즈 남이 하면 불륜)이니.
1915년 12월, 금지된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주둔 영국 군부대의 검열관 직책을 수행하던 몬태규 경은 SS 페르시아호를 타고 비서이자 뮤즈이자 연인(이지만 부인은 아닌) 엘리노어와 함께 인도를 향하고 있었다. 크레타섬 인근 해역에 당도했을 무렵 독일 유보트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은 배는 피격 5분 만에 침몰하고 만다. 승선자 519명 중 343명이 사망한 참혹한 사고였다. 이때 몬태규 경은 36시간 만에 천운으로 구조돼 생존했지만, 차디찬 겨울 바다 속으로 사라진 엘리노어는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완으로 끝난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이후 110년을 넘도록 이어지는 ‘불멸의 아이콘’이 됐다.
고급차의 상징인 후드 오너먼트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보행자 사고 시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는 1968년 이후 시판되는 신차에 고정형 후드 오너먼트의 사용을 금지했고, 유럽에서도 1974년부터 금지했다. 2010년 고급차 브랜드 벤틀리는 자사 차량의 후드 오너먼트가 자동으로 접히는 기능이 부품 부식 등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판매된 차량 1400여 대를 리콜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자 메르세데스 벤츠의 삼격별은 뒤로 접히는 형태로 바뀌었다가 후드 위에서 그릴 엠블럼으로 이사했고, 재규어의 리퍼 후드 오너먼트 역시 포효하는(하지만 평평한) 재규어 ‘그롤러’ 엠블럼으로 바뀌었다.
후드 오너먼트는 확실히 시대착오적이다. 위험하고, 과시적이며, 성능이나 효율 따위 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니까 로망 아니겠는가. 이제는 자동차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구시대의 산물, 후드 오너먼트가 테슬라 사이버트럭의 매끈한 후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전하는 이유다.
- 다음 편 예고 : 문 안 닫히게 고정해놓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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