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자전거 위 두손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ESC]
첫 대회 때 자전거로 1시간 이상
넘어질까봐 물도 못 마시고 갈증
오프시즌 ‘손 떼고 페달질’ 훈련
지난해 가을 첫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대회 전날 자전거 검차를 앞두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공기주입기(펌프)를 집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주차장 옆자리에서 바람을 넣던 중년 남성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한 눈에 보기에도 ‘초짜’인 내가 혈혈단신으로 대회장에 온 게 안쓰러웠나 보다. 부산 ‘해운대철인클럽’에서 왔다는 두 사람은 직접 내 타이어의 공기압을 점검해 주고, 자전거와 헬멧에 빕(번호표)을 부착하는 것도 도와줬다.
“입 양 옆이 허옇잖아”
두 선배 철인을 다음 날 대회를 마친 직후 다시 마주쳤다. 두 사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목이 엄청 마른가보네”라며 생수 두 병을 가져다줬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내가 물었다. “제가 목마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지. 입 양 옆이 허옇잖아. 물도 못 마시고 달렸나 보네!” “네…”
땀을 많이 흘리는 장거리 대회에서는 수분을 제때 보충하지 않으면 탈수가 오기 쉽다. 그래서 500㎖짜리 물통 두 개에 생수와 이온음료를 나눠 담아 자전거에 거치해 뒀지만, 정작 한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는 도중 준비한 음료를 단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창피하게도 자전거 핸들에서 한 손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은 두 손을 자유롭게 쓰며 겉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하고 바나나·초코바 등을 꺼내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지만, 내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두 선배 철인은 “올겨울에는 꼭 ‘롤러’ 훈련을 하라”고 조언했다. “평롤러 위에서 균형 감각과 코어 힘을 길러야 경기 도중 두 손을 자유롭게 쓰고, 업힐(언덕) 주행 실력도 좋아진다”는 거였다.
‘평로라’라고도 부르는 롤러는 평평한 바닥 위에 둥근 드럼 세 개를 평행하게 두고, 그 위에 자전거를 얹어 제자리에서 페달을 굴리게 하는 훈련 도구다. 잠시라도 페달질을 멈추거나 균형이 흐트러지면 바로 균형을 잃고 낙차하기 쉬워, 초보 사이클리스트들이 균형감각을 익히거나 장거리 선수들이 인터벌 훈련(속주와 완주를 교차하며 오랜 자전거 주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하는 데 주로 쓴다.
마침 내게 로드자전거를 처음 ‘영업’한 친구인 다운이가 자신이 속한 사이클 동호회 사람들과 겨울 ‘오프시즌’을 맞아 ‘롤러방’ 훈련을 시작했다고 했다. 다운이를 따라 간 사이클 전문 훈련센터(서울 서초구 ‘으랏차차타이거그라운드’)에서 난생처음 평롤러 타기를 시도했다.
자전거를 평롤러 위에 세운 상태에서 안장에 올라가 처음부터 그 상태를 유지하며 자전거를 타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게 안전바다. 한 손으론 핸들바, 다른 손으론 바닥에 고정된 안전바를 잡아 자전거를 곧추세운 뒤 페달질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자전거 바퀴를 돌리기 시작한 뒤 안전바를 잡은 손을 살짝 떼어 보는 시간을 5초에서 10초, 30초로 조금씩 늘려 갔다. 자신감이 붙자 안전바를 잡고 있던 손을 핸들바 위로 옮겨놓았다. 드디어 양손으로 핸들바를 잡고 평롤러 위에서 자전거를 온전히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턴 한순간도 몸통에 힘을 풀거나 딴생각을 할 수 없었다. 코어 힘을 푸는 순간 바퀴가 좌우로 크게 휘청이며 자전거가 롤러 바깥으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롤러 양옆에 나사 모양의 이탈방지장치가 있어 부상을 방지하지만, 긴장한 탓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손바닥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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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시는 ‘시늉’까진 성공
“안장 위에서 물 마시고 싶어서 왔어요.” 본격적인 훈련을 하고 싶어 집과 좀 더 가까운 다른 센터(서울 마포구 ‘그릿그라운드’)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평롤러 테크닉 클래스’에 등록하고 이렇게 말했다. 4주 동안 수업을 듣게 된 다른 수강생들도 “저도 그게 목표예요”라고 했다. 육지환 코치는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에겐 양손이 깜빡이”라며 “안장 위에서 두 손이 자유로워야 더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육 코치는 “자전거는 시선 운동”이라며 몸의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구령을 따라 시선을 아래에 보이는 롤러 드럼에서 정면 거울에 비친 자전거 앞바퀴, 핸들바, 어깨, 얼굴로 천천히 옮겨 갔다. 이때 시선을 따라 고개까지 위나 아래로 움직이면 곧바로 균형이 흐트러지며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이어 무겁게 올려뒀던 기어비를 하나씩 낮춰 보는 훈련을 시작했다. 기어비가 가벼워지면 다리에 걸리는 부하가 줄어들어 몸이 편해질 것 같았지만,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페달질을 해야 속도를 유지할 수 있어 균형 잡기가 훨씬 어려웠다.
둘째 주엔 두 손을 핸들바에서 하나씩 떼어 브레이크 레버를 잡았다가, 다시 드롭바(낮은 자세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메인 핸들 아래쪽에 단 보조 핸들바)를 잡으며 몸의 무게중심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훈련이 이어졌다. 한 손씩 핸들에서 떼어 위·아래·양옆으로 수신호를 보내는 연습도 했다. 시선 운동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손만 가볍게 움직이고 몸의 무게중심은 계속해서 코어에 두는 게 포인트였다.
그 다음 주엔 손을 아래로 뻗어 자전거 프레임에 거치한 물통을 가져오는 연습을 했다. 손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데 신경을 쓰려니 페달질이 느려졌다. 페달질이 느려지자 균형이 흐트러졌다. 몇 차례 실패 끝에 겨우 물통을 거치대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다. 입 근처로 물통을 가져가 물 마시는 시늉을 한 뒤(아직 실제로 마시지는 못했다) 겨우 손을 다시 거치대 쪽으로 뻗었지만, 물통을 다시 꽂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물통을 거치대에 넣는 데 성공했다. 어느덧 4번의 수업 가운데 마지막 수업 날, 핸들 대신 골반을 좌우로 움직이며 롤러 위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훈련을 했다. 코어 힘을 활용해 골반을 바닥으로 꾹 누르는 힘을 활용해야 했다. 같은 힘을 활용해 상체를 조금 들어올린 채, 한 손을 핸들바에서 떼어 안전바로 옮겼다.
첫 수업 때 느끼던 두려움이 조금 가신 게 느껴졌다. 용기를 내 핸들바를 잡은 손을 떼어 허리를 잡아 봤다.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두 손을 허리춤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마치 서커스 배우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안장 위에서 두 손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봄, 자전거 위에서 내리지 않고도 여유 있게 물을 마실 내 모습을 상상하며 계속 페달을 굴렸다.
글·사진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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