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주진형(朱震亨)의 의술은 OO과 같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원나라 때 주진형(朱震亨)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호를 따서 주단계(朱丹溪)로 불렀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그를 높여 단계옹(丹溪翁)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진형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하루에 천자를 암기했다. 나이를 먹고서는 선생을 두고 사서삼경을 배우며 거자업(擧子業)을 하였다. 거자업이란 과거시험처럼 시험에 붙기 위한 목적으로 입신양명을 위해 하는 공부를 말한다.
어느 날은 문의공이란 선비가 주자의 학문을 바탕으로 해서 도(道)를 강의한다는 것을 듣고 그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셨다. 그래서 도덕(道德)과 성명(性命)의 학설을 한층 더 배워 넓고 깊으며 순수하고 정밀하게 되어 마침내 일가를 이루었다. 이 과정도 모두 벼슬을 위한 공부 과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문의공은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항상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위로 올라 고생을 했다. 특히 밤에 더 심했다. 그러나 주위의 어떤 의원들도 치료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병인지도 몰랐다.
하루는 문의공이 주진형에게 “나는 병을 앓은 지가 오래되어 요즘 의술에 정통한 자라도 고칠 수 없네. 자네는 총명하기가 보통사람과는 다르니 의술의 기예에 몰두해 보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당시 주진형의 모친도 비병(脾病)을 앓았기 때문에 주진형은 의서를 어느정도 읽어서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스승이 의술에 뜻을 두면 어떻겠냐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선비가 하나의 학문에 정통하여 남에게 미치는 인(仁)을 미루어갈 수만 있다면, 비록 세상에서 벼슬하지 않더라도 벼슬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주진형의 결심은 ‘스승의 병을 직접 고쳐야겠다.’라고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주진형은 마침내 지금까지 읽고 읽어서 손때 묻은 거자업 책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만약 관련 책을 놔두면 다시금 입신양명에 미련을 두고 의업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당시에는 송나라 때 지어진 <태평혜민화제국방>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임상 의서였다. 보통 줄여서 <화제국방>이라고 불렀다. 주진형은 밤낮으로 <화제국방>을 읽다가 문득 깨달음이 있었다.
“수백년 전의 옛 처방만을 고집하면서 오늘날의 병을 치료한다면 그 형세가 다 들어맞을 수 없다. 도량(度量)을 정하고 규격과 균형을 맞추려면 반드시 <소문>과 <난경> 등의 의경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고을의 의사들은 이것을 능히 아는 자가 드물구나. 이를 어찌할꼬.”라고 하면서 한탄했다.
주진형은 마침내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나서 다른 스승들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그 지역에 나지제라는 의원이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나지제는 의학에 정통하여 금나라 유완소의 정통을 얻었으며 장종정과 이고의 두 의가의 학설에도 두루 통달한 의원이었다. 그러나 성품이 매우 편협한 데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일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서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웠다.
주진형은 나지제를 찾아가 배알했다. 그러나 만나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자, 나지제는 마침내 그를 불러들이고는 놀라면서 “자네는 주진형 아닌가?”라 하였다.
당시 주진형은 이미 의사로서 명성이 있었으니 나지제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진형은 마침내 나지제에게 북면(北面)하여 두 번 절하고서는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나지제는 주진형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이미 출세출의 명의로 명성을 떨쳤던 유완소, 장종정, 이고의 여러 의서들을 주면서 세 의가의 의도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 중심은 모두 <소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지제는 주진형에게 “자네가 지금까지 옛날 책으로부터 배운 것들은 모두 다 잊어버리게나. 모두 편협한 이론들뿐이네.”라 했다.
나지제의 말은 자만보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들렸다. 그의 설명을 듣자 가슴속이 탁 트인 듯 답답함이 풀렸다. 주진형 자신도 기존의 의학이론에 항상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진형은 얼마 되지 않아 나지제 학문을 모두 전수받고 깨달음을 얻어 귀향했다.
주진형은 “스승님, 제가 스승님의 말씀대로 의도(醫道)를 얻어 돌아왔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알고 보니 모든 병의 근원은 양(陽)은 항상 넘치고 음(陰)은 상대적으로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마을의 의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주진형의 말을 듣고서는 비웃으면서 무시했다. 주진형이 주장하는 말은 지금껏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땀을 내서 치료하는 한법(汗法), 토하게 해서 치료는 토법(吐法), 설사를 시켜서 치료하는 하법(下法)이 최고의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의 부작용을 걱정해서 나온 비위(脾胃)기능을 중시한 보토파(補土派)가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오직 문의공만이 기뻐하면서 “내 병이 마침내 낫겠구나!”라 하였다.
문의공의 열병(熱病)은 10년이 넘었는데, 주진형의 자신만의 방법대로 자음(滋陰)시키니 허열(虛熱)이 점차 진정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주진형을 배척하던 여러 의사들은 비로소 모두 마음으로 탄복하고 입으로 칭찬하였다.
주진형은 이렇게 몇 년 사이에 명성을 떨쳤다. 이에 주진형의 의술이 사방에 더욱 알려져서 병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자가 온 마을에 몰려들었다. 주진형은 환자의 병을 치료할 때 자신만의 자음강화법(滋陰降火法)으로 치료하면서도 제가의 방론(方論)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메아리처럼 따르고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한번은 한 의원이 멀리서 주진형을 찾아왔다.
그 의원은 “저는 <화제국방>을 많이 읽어서 의학에 정통합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주진형은 “<화제국방>은 흩어져 있는 것들을 수습하기는 했으나 간혹 글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있어 의미가 미진한 점이 있거나 새롭게 편차하면서 빠지거나 차례가 어긋나기도 합니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의문이 있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혹이 있는 몇 조문을 대략 지적해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의원은 뭐가 틀렸다고 하는지 그 내용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진형이 우연히 몇 개월 동안 열병을 앓고 있는 어떤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음허발열(陰虛發熱)로 진단하여 음(陰)을 더해주고 혈(血)을 보하는 약을 써 보기로 했다. 그래서 보음시키는 경옥고(瓊玉膏)를 처방했다. 그러자 그 환자의 열병은 서서히 진정이 되어 달포 만에 완치가 되었다.
<화제국방>을 많이 읽어서 의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의원은 그제야 “저의 소견으로는 상한(傷寒)으로 인한 열병인 줄 알았습니다. 상한으로 알고 치료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아마 병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하루는 한 의원이 태극(太極)의 의미를 묻자, 주진형은 음양조화의 정밀하고 미묘한 뜻이 의도와는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가를 설명해 주었다. 조량인은 주진형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누구도 그렇게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진형은 “내가 여러 의생들과는 여기까지 논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자네가 물었기 때문에 우연히 언급했네.”라 하였다.
그 의원은 이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진형의 의학은 이제 탁약(橐籥)이 되었나 보다.”라고 하면서 주진형을 칭송했다. 주진형은 의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 능통했던 것이다.
탁약(橐籥)은 원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단어로 풀무나 공기 주머니가 달린 피리와 같은 악기를 의미한다. 풀무는 속이 비어있지만 쪼그라들지 않고 만약 움직여주면 더욱 바람을 낸다. 악기로서도 속은 텅 비어 있지만 쉬지 않고 소리를 내서 사방 곳곳에 들리게 하는 피리와 같기 때문에 천지간에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진형의 의술은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보약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경옥고(瓊玉膏)도 바로 주진형이 창방한 명방이다. 주진형은 후세에 보음파(補陰派)로서 명성을 날렸고, 그를 추종하는 의원들은 단계학파(丹溪學派)를 이루었다.
* 제목의 ○○은 ‘탁약(橐籥)’입니다.
<의적고(醫籍考)> 徐春甫曰: 朱震亨, 字彦修, 號丹溪, 浙之義烏人. 自幼好學, 日記千言, 業擧子, 講道八華山, 拜許文懿公. 一日, 公謂以己疾久之, 非精於醫者, 弗能起, 子多穎敏, 其遊藝於醫而濟人乎. 於是丹溪復致力以醫方. 旣而悟曰: “執古方以療今病, 其勢難全, 必也參之以素難, 活潑權衡, 乃能濟世.” 遂出遊求師, 渡浙走吳, 歷南徐, 建業, 皆無所遇. 反還武林, 聞太無先生, 往拜之, 數謁弗得接. 求見愈篤, 先生始接之, 以劉張朱三家之書, 爲之敷揚其旨. 彦修受敎, 而醫益神名益著, 四方求療者輻輳於道. 按證施方, 錄爲醫案可考. 又著格致餘論, 致其秘云. (명나라 서춘보가 말하였다. 주진형은 자가 언수, 호가 단계로 절강 의오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매일 천 마디의 문장을 외웠다. 과거 응시생으로서 공부할 때 문의공 허겸이 팔화산에서 유학경전의 의미를 강설하였는데 그를 찾아가 수학하였다. 하루는 문의공이 “나의 질병이 오래 되어 의술에 정통한 자가 아니라면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 그대는 매우 똑똑하니 의학에 종사하면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단계가 다시 의학에 온 힘을 쏟았다. 얼마 뒤에 깨달음을 얻어 “옛 처방으로 지금의 질병을 치료한다면 그 증세를 온전히 치료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소문과 난경을 참고하여 상황에 따라 활발히 운용해야만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세상에 나가 스승을 구하기 위하여 절강을 건너 옛 오나라 지역으로 가서 남서와 건업을 거쳤는데 어떤 지역에서도 스승을 만나지 못하였다. 무림으로 돌아온 뒤에 태무 선생 나제에 대해 듣고는 가서 인사를 올렸는데, 여러 번 알현을 청했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더욱 정성스럽게 만나 뵙기를 청하니 선생이 그제야 만나주고, 유완소, 장종정, 이고 등 3명의 의학가의 저서에 대해 그 의미를 자세히 일러 주었다. 언수가 그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 의술이 더욱 신묘해지고 명성이 더욱 자자해져 사방에서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길에 가득하였다. 증세를 살펴 처방을 내리고, 그것을 기록하여 참고할 만한 의안으로 만들었다. 또 격치여론을 저술했는데 그 신비한 이치를 완벽히 설명하였다.)
<의부전록(醫部全錄)> 一日, 門人趙良仁問太極之旨, 翁以陰陽造化之精微, 與醫道相出入者論之. 且曰: “吾於諸生中, 未嘗論至於此, 今以吾子所問, 故偶及之.” 是蓋以道相告, 非徒以醫言也. 趙出語人曰: “翁之醫, 其始橐籥於此乎.” (하루는 문인 조량인이 태극의 의미를 묻자, 옹은 음양조화의 정밀하고 미묘한 뜻이 의도와는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가를 강론하였다. 또 “내가 여러 생도들과는 여기까지 논한 적이 없는데, 지금 자네가 물었기 때문에 우연히 언급했네.”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도에 대하여 일러준 것이지 의술만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량인은 나와서 사람들에게 “옹의 의학은 이제 탁약이 되었나 보다.”라고 하였다.)
<도덕경(道德經)>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풀로 만든 개로 여긴다. 성인은 어질지 않으니 백성을 추구라 여긴다. 천지 사이는 풀무와 같다. 비어 있으나 오그라들지 않고 움직이면 더욱 바람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궁해지니 중도를 지킴만 같지 못하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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