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할 수 없는데 끊을 수도 없는 드라마…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진송의 아니 근데]
어떤 작품이 시청자를 사로잡는 이유는 작품성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다양성은 심지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항목마저 포함한다. 황당함도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면 보는 사람이 그만 속수무책으로 매혹되는 것이다. <꽃보다 남자>는 특유의 ‘오그라드는’ 연출로 지금까지 쇼트폼에서 죽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중이고, 임성한 드라마의 문어체적 대사는 ‘아씨 두리안 말투로 말하기’처럼 밈이나 놀이로 재생산된다. 사실 콘텐츠 시장에서는 아무도 안 보는 것보다, 조롱일지라도 관심을 받는 게 훨씬 낫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망신살의 왕좌는 아무나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마냥 특이하거나 기묘해서만도 안 되고, 대중이 허락하는 범위에 있으면서도 웃음 코드를 자극해야 한다. 황당한 대사나 연기를 소화하는 배우의 연기력이나 그걸 밀어붙이는 뚝심 또한 뒷받침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이런 드라마가 등장했다. 돌아온 <개그 콘서트>보다 웃기고, <나는 솔로>만큼 복장 터지며, <런닝맨>처럼 박진감 넘치는데, <환승연애>가 아니라 <환승우정>처럼 지난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 이야기다.
<내남결>은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으로, 원작 작가는 성소작이다. 네이버에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연재했고, 원작이 크게 흥행하면서 웹툰으로도 제작된 바 있다. 원작 팬이 많은 만큼 드라마 제작의 부담도 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180화가 넘는 원작을 16부작으로 각색하는 과정은 명백히 새로운 창작의 영역이다. 매체가 달라지면 많은 부분이 바뀌고, 저마다 머릿속에 있는 캐릭터의 형상 또한 다르기에 캐스팅이 만인을 만족시키기도 어렵다. 그래서 원작과 비교하기보다는, 드라마 <내남결>의 재미와 강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내남결>은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이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남편과 친구의 불륜을 목격한 뒤 살해당했는데 깨어나니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강지원은 쓰레기 같은 악행을 일삼은 남편 박민환(이이경)과,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은밀하게 빼앗다가 끝내 배신한 친구 정수민(송하윤)을 결혼시키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강지원의 조력자이자, ‘알고 보니 10년 전 강지원을 짝사랑했던’ 직장 상사 유지혁(나인우)과 러브라인도 형성한다. 불륜, 시한부, 회귀, 재벌남과의 로맨스, 복수, 사이다, 친구 간의 가스라이팅과 애증… 입에 쫙쫙 붙는 양념이 다 들어간 <내남결>은 첫 회 5.2%의 시청률로 시작해, 7회 차에는 9%대까지 껑충 뛰었다. 화제성도 뜨거워서, <내남결>이 끝난 뒤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짤과 클립이 빠르게 올라온다. 화제가 되었던 요소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TPO(시간·장소·상황)를 의심하게 하는 박민영의 패션, 이이경의 ‘하(찮은) 남자’ 연기, 송하윤의 겉은 선하지만 속은 악한 캐릭터, 난데없는 BTS(방탄소년단) 등장, 뚝딱거리는 사투리, “도대체 누가 회사 생활을 그렇게 하는데 쓰니야 제발~!”이라고 외치게 되는 사내 문화…. 명백하게 칭찬의 영역은 아니다. 그런데도 끊을 수 없다. 매주 월요일, “오늘은 또 어떤 어이를 잡아뽑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본방을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내남결>에는 있다.
동명 웹소설 원작으로 한 ‘회귀물’
‘판타지 로맨스’라는 설정 앞세워
현실 사회 생활 문법 깡그리 묵살
만화적 리듬으로 밀어붙인 서사
천연덕스럽게 보여줘 웃음 유발
코믹 연기 내공 드러내는 박민영
‘은퇴설’ 나올 만큼 얄미운 이이경
배우들 열연도 이 드라마의 매력
먼저 장르의 특성을 보자. 회귀물, 혹은 다른 사람에게 빙의하는 빙의물은 최근 5년 사이 웹소설·웹툰에서 큰 인기를 끄는 소재이다. 웹소설 원작이었던 <재벌집 막내아들>(JTBC, 2022)이 대표적이다. 웹툰 원작의 <이재, 곧 죽습니다>(티빙, 2023)에서 주인공 이재는 자살한 후 죽음을 앞둔 타인에게 빙의된다. 역시 웹툰 원작인 <고백부부>(KBS, 2017)에서 부부는 죽지는 않더라도 과거로 타임슬립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얻는다. ‘인생 2회차’ 장르의 인기는, 주인공의 능력이 초능력이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현재의 정보’라는 점에 있다. 시청자가 이입하기 쉽고, 자신의 상황에 대입하기도 좋다. 주인공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과 같은 위치로 격상된다. 회귀물에서는 삶의 경험이 곧 무기이다. 시행착오와 고통마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이재는 30대의 지식과 경험으로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의 상황을 바꾸고,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도준은 당시 저평가되었던 분당의 땅을 재벌 할아버지에게 요구해 이른 나이에 자산가로 거듭난다. 2013년으로 돌아간 강지원도 주식시장의 흐름을 예측해 재산을 불리고, 박민환을 빈털터리로 만든다. 또한 회사 임원이 갑질로 물의를 일으키는 미래를 이용해 과거에 기획안을 강탈당했던 억울함을 뒤집는다. 수모를 당했던 동창회에 당당한 태도로 참석해서, 일명 ‘사이다’를 날리기도 한다. 이처럼 ‘미래에서 온 현재의 나’가 실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없음에도, ‘과거의 현재’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위를 누리고, 다른 선택을 한다는 전능감이 회귀물의 인기를 견인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강지원은 고깃집에 시상식 드레스를 입고 가는 기행(!)을 일삼지만… 아니 근데, 이 어이없음이 <내남결>의 재미 중 하나이다. <내남결>이 황당한 드라마로 회자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애초에 드라마의 세계관 자체가 ‘억울하게 죽은 내가 눈 떠보니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라는 ‘판타지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갔는데, 회사에 어깨 한쪽 훌러덩 까고 출근하는 게 어때서? 하지만 여기에, 작품의 환상성과 핍진성의 절묘한 배치라는 기술이 개입한다. 핍진성이란 대체로 문학 작품에서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회귀라는 환상적 설정은 허구의 세계관 안에서 무리 없이 포용된다. 그러나 강지원이 회귀한 세계가 아예 다른 지구의 ‘데한민국’이 아닌 이상, 2013년의 한국 사회와 회사 생활의 문법은 필요한 것이다. 이에 관련해 한 트위터리안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사극에서 필요한 고증은, 영의정이 1000㏄ 오도바이를 타고 출근해도 괜찮지만 주상전하 앞에 오도바이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런데 <내남결>은 만화적인 리듬을 앞세워 이런 암묵적인 요구를 묵살하고 냅다 밀어붙인다. 부산 고등학교의 동창회가 서울의 고깃집에서 열리고, 사내 커플인 박민환과 강지원은 회사에서 대놓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거나 밀회하고, 회사 상사인 유지혁은 부하 직원에게 헤어지라고 오지랖을 부리고, 회사 워크숍에서 몰래 성관계를 하고, 회사 상사의 몸에 웬 스티커 같은 타투가 생기고, 그리고… 그런데… 하도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이니 넘어가게 된다. 터무니없는 ‘구라’에는 따지기보다 웃어버리듯, 꿀밤 한 대 때리는 시늉 하듯 무장해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남결>의 감정선에는 보편적으로 기대되는 감정 대신, 뜬금없이 유머가 엉덩이를 들이민다. 예를 들어 강지원과 유지혁이 서로 회귀했다는 것을 들키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고, 중요한 순간이다. 원작에서는 꽤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방탄소년단의 노래 이야기를 하다가 들키고, 각 노래의 발표 연도가 자막으로 나오고, 급기야 ‘다이너마이트’가 BGM으로 깔리는 순간…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것은 웃음일 수밖에 없다.
<내남결>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배우들의 열연이다. 박민영은 시트콤 출신답게 코믹 연기에 내공을 드러내고, 이이경은 뻔뻔하고 비열한 박민환 역할을 얄미울 만큼 훌륭하게 소화한다. 나체로 수건을 벗어 던지는 연기는 ‘이이경 은퇴설’에 불을 붙였고, 여자 앞에서 지식을 뽐내려고 와인을 요란하게 마시는 모습은 남자에게 와인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필요한 게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 천사 같은 얼굴과 다정함으로 위장한 정수민을 연기하는 송하윤은 단순한 ‘불여우’ 캐릭터를 넘어,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를 싫어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인간관계의 역학을 상기시킨다. ‘약자 포지셔닝’을 활용하는 악녀 캐릭터는 꾸준히 있었지만, 정수민은 자신에게 반격하는 강지원에게 정성껏 쓴 사과의 편지를 주기도 하는 인물이다. 이를 단순히 가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강지원을 향한 정수민의 감정이 집착과 애증으로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강지원 역시 정수민에게 복수하면서도, 상실감에 눈물 흘리며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그런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살리는 배우 덕에 <내남결>을 그저 우스꽝스러운 드라마라고 조롱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와는 또 다른 결로, 끊임없이 뒷목을 잡으면서도 보게 되는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 정말이지 명작과 망작 사이의, ‘ㅕ’와 ‘ㅏ’ 사이의 간극은 이토록 애매하고 절묘하다. 2024 최고의 ‘먱작’, <내남결>로 월요병을 이겨내보는 건 어떨까요?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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