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가 간첩에게 속았다'는 건 더 무시무시한 일 아닌가?
연일 자살골을 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 스캔들을 대하는 국민의힘 이야기다.
국회 과학기술 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재영 자칭 목사"가 "북한 이적 영상물들을 송출하여 지난해 1월 중단된 <통일TV>에 부사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그리고 통일TV가 국가보안법상 찬양·선전죄(제7조 1항)와 이적표현물 반포죄(제7조 제5항)에 해당하는 방송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의 신뢰할 수 없는 일방적 주장과 몰카 사기취재 영상을 공익제보인양 그대로 국민에 전달한 민주당과 좌파 세력들은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는데, 북한 방송을 그대로 들여와 소개한 <통일TV>처럼 '북한 방송 개방'은 윤석열 정부가 2022년 출범하며 추진했던 사안이란 점이다. 그해 7월 통일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 언론‧출판‧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 방안을 업무보고했고, 그해 10월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단기간 내 남북 상호 개방이 어려운 현실 감안해 우리가 먼저 북한 방송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TV>도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 등에 방영된 영상을 합법적으로 들여와 소개하는 형태로 방송을 제작했다. <통일TV>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면, 북한 방송 개방을 주장했던 윤석열 정부와 통일부는 뭐가 되는 걸까.
여하간 최재영 목사에 대한 국민의힘의 '간첩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특히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한발 더 나간다. 그는 최재영 목사가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으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바 있고 북한을 옹호하는 책, 발언, 글을 끊임없이 써온 사람"이라며 "전형적인 종북 인사"라고 했다. 태 의원은 또 "최재영은 4년 전 21대 총선 기간 저를 낙선시키라는 김정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 저를 낙선시키는 운동을 벌였던 정연진 'Action One Korea' 대표와 함께 친북·종북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각종 군사적 도발로 전쟁 위기론을 만들어 보려는 김정은의 대남 총선 전략이 이제는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 공작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성중 의원과 태영호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영부인이 '간첩'의 공작에 당했다는 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어긴 자가, 간첩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자가 대한민국의 영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단 말인가. 간첩은 어떻게 대통령실 경호를 뚫고 영상 촬영이 가능한 손목시계를 차고 들어가 영부인이 '간첩에게 금품 받는 영상'을 촬영해 공개할 수 있었을까.
이 영상을 보도한 <서울의소리> 장인수 기자는 김건희 영부인이 머물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어느 나라 첩보기관이든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도청기를 설치하고 도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첩 의혹'을 받는 사람이 착용한 몰카 손목시계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반입됐는데, 이런 우려를 기우로 치부하기엔 너무 엄중하다. 김건희 영부인이 '간첩에게 당했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안보 태세를 깎아내리는 형국이다. 영부인과 대통령경호처, 국정원을 모두 '바보'로 만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김영란법 위반'이나 '뇌물 수수 혐의'보다 북한의 공작에 당한 '바보'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 판단했을까?
국가보안법 제5조에는 '굼품수수'에 관한 항목이 있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최재영)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자(김건희)"가 나타났다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수수했는지 수사를 통해 먼저 밝혀야 한다. 김건희 영부인은 최재영 목사에게 "적극적으로 저는 남북 문제 제가 좀 나설 생각이에요. 정말로"라고 말했다. 대체 이 말의 참뜻과 배경은 무엇인가. 분단 70년간 쌓아온 공안검사들의 독해법 노하우가 필요하다.
1989년 민주당 부대변인이던 김부겸은 지역주민이라 속이고 접근한 북한 공작원 이선실이 "생활이 어려울 것이니 돈이 생길 때까지 빌려주겠다"며 준 500만 원을 받았다. 이듬해 이선실이 "나는 평생을 김일성주석과 통일사업을 함께 해온 사람"이라며 신분을 밝히자 돈 400만 원을 돌려줬으나 100만 원을 못 돌려줘 국가보안법 위반(불고지, 금품수수, 회합, 통신)으로 구속됐다. 이 사례에 따르면 김건희 영부인은 '불고지, 금품수수, 회합, 통신'의 종합 선물세트다. 설사 김건희 영부인이 최재영 목사의 정체를 모르고 받았더라도 지금은 그 정체를 알게 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여전히 수수한 '금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박성중 의원과 태영호 의원은 대체 뭘 주장하고 싶어서 김건희 영부인을 이런 궁지에 몰고 있는 것일까.
최재영 목사가 북한 정권과 깊숙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김건희 영부인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최재영 목사 간첩설'과 함께, 김건희 영부인이 '피해자'라는 주장도 여권의 '김건희 스캔들' 출구전략의 하나인 모양이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경기도 수원정 지역구에 출마한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덫을 놓은 책임이 덫에 빠진 짐승한테 있는지 아니면 덫을 놓은 사냥꾼에게 있는지 하는 것은 한번 국민 여러분도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윤인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는 사기 몰카 취재에 당한 피해자다. 왜 피해자보고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올수록 매우 불편한 내용이란 점을 무릅쓰고라도 <서울의소리>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을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최재영 목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울의소리>와 본인이 미리 준비한 300만 원 상당의 크리스찬 디올 파우치를 건네고 김건희 영부인은 "이걸 자꾸 왜 사오느냐"고 하면서도 선물을 거절하지 않는다. 최재영 목사에 따르면 김건희 영부인에게 10여차례 면담 요청을 했지만, 딱 두 번, 명품 선물을 준비해 미리 고가 상품의 사진을 보내 확인받았을 때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상은 더 있다고 한다. <서울의소리>는 "국가의 국격'과 관련된 문제"라며 차마 공개하지 못한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재영 목사는 만남 당시를 회상하며 "(영부인의) '애티튜드' 및 '의전 프로토콜'은 고사하고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것 같았다"고 주장했고 "대북 문제, 남북 문제를 진영에 관계 없이 조언을 하고자 김건희 여사를 만난 것인데 그 자리에서 인사청탁을 받으며 마치 자신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인 것처럼 발언하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만약 총선을 앞두고 김건희 영부인의 '애티튜드'가 담긴 영상이 추가로 공개된다면 '김건희 피해자론'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물론 이런 방식의 취재 보도 행태를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다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위 '친윤' 그룹의 '김건희 스캔들' 대응 방법들에 '정무적 감각'이 완전히 결여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최재영 목사가 진짜 간첩으로 밝혀진다면, 그 간첩을 만나 '금품을 수수'한 영부인에 대해서는 뭘 어떻게 설명하겠다는 건가? 정공법을 피하고 본질을 뒤집으려 시도할수록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추가 의문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 해명을 '대응'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김건희 스캔들' 프레임에 걸어들어가는 여권 인사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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