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갈림길 선 '그림자 전쟁'…美-이란, 직접 충돌 피하나
가자 전쟁 발발 후 '저항의 축' 대리 전선
확전엔 경계…"보복 악순환돼 폭발할 수도"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지 만 4개월에 접어드는 가운데,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 공격으로 개전 후 첫 미군 사망자가 나오면서 중동 분쟁이 확전 갈림길에 섰다.
미국이 강력한 보복을 예고한 가운데, 그간 직접 충돌은 피하되 대리 전선에서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이란의 '그림자 전쟁'이 확전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란 대리 세력 공격에 미군 사망…바이든, 보복 대응 경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즉시 성명을 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이란 지원의 급진 무장 단체" 소행이라고 직접 거론하며 보복 대응을 예고했다.
백악관은 지난달 31일 이번 공격이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포함한 여러 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이슬람 저항 세력 소행이라고 결론 내고 보복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미 행정부 관료들은 지난 1일 미국 CBS에 보복 대응 관련 이란 인력과 시설 등 목표물에 대해 수일에 걸친 시리즈 공습 계획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관련성을 부인했다. 이란 외교부는 지난달 29일 "이란은 이슬람 저항 세력들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자국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공격 세력으로 지목된 카타이브 헤즈볼라도 미군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며, 이란이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인 쿠드스군의 이스마일 가니 장군이 방문한 뒤 낸 입장 발표였다.
이란, '저항의 축' 통해 美·이스라엘 공격…대리 전선 확대
이스라엘 북부에선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로켓 공격하고 있으며, 예멘 후티 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 요르단에선 미군 기지가 최소 165회 이상 공격받았다.
이란은 대리 세력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건 아니라며, 언제든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도록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분석가들과 이란 소식통들은 이란이 무장 단체들의 전반적인 전략을 주도하곤 있지만, 이란 지시를 받고 행동을 조율하는 정도는 단체마다 다르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공격 수위를 키워가는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란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반면, 이라크 민병대는 단체에 다소 자율성이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은 예측 불가능한 '와일드카드'다.
다만 이란이 한순간의 실수로 미국과 직접 충돌의 문을 열 가능성이 있으며, '타워 22' 공격으로 미군이 사망한 게 그 시발점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은 최근 모든 군대에 최고 경계 태세를 발령하고, 지대공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라크 접경지대에 탄도미사일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이란 모두 확전에 신중…"보복 악순환돼 폭발할 수도"
하지만 이번 미국의 반격 준비 과정은 기존 기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 의회에선 이란을 상대로 한 강력한 보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는 보복이 이란 반격을 불러 가자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걸 꺼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확전은 필요치 않다"며 경계했다.
이란도 속내가 복잡하다. 민병대들이 미국 보복에 반격하지 않도록 말리면 '저항의 축'이라는 명분을 잃게 되고, 강력히 반격할 경우 미국에 군사적으로 대패할 위험이 크다.
NYT에 따르면 이란은 '타워 22' 피습 직후인 지난달 29일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열어 미국의 보복 대응 관련 긴급회의를 개최, 대응 방법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에게 전달했다.
하메네이는 미국과 직접 전쟁을 피하고 대리 세력 행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반격할 준비를 하라는 점도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경제난과 반발 여론도 부담이다. 이미 국제 제재와 실업, 부패로 몸살을 앓아온 상황에 전쟁이 발발하면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테헤란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NYT에 최근 학생들의 행동이 달라졌다며 "전쟁 위험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모든 뉴스에 훨씬 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로서도 전쟁이 내부 혼란을 가중시키고, 신정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NYT에 하메네이가 군 수뇌부 및 외교 정책 고문으로부터 매일 역내 정세 관련 브리핑을 받고 있으며, SNSC 모든 결정에 최종 승인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 출신의 제럴드 파이어스테인 미국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WSJ에 "양측 모두 무력 사용을 고려하지만, 금지선은 넘으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보복 공격을 수일에 거친 '다단계'로 계획한 것도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신호라고 미국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사남 바킬 영국 채텀하우스 중동 국장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긴장 수위를 조절하는 일종의 이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알리 바에스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이란 국장은 요르단 주둔 미군이 숨진 만큼 보복 대응 과정에서 이란에서도 부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에스 국장은 "미국이 이란혁명수비대를 공격하면서 희생자를 최소화한다면 이란도 반드시 상황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진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란도 대응하지 않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딜레마는 이란 코털을 건드리지 않고 피를 흘리려고 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양측이 서로에게 보복하고 반격 필요성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어느 시점 폭발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ey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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