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서 청소년을 지켜라” 美 새 전쟁
“청소년들은 아직 어리고 정신적으로 발달 중이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한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독입니다. 독.”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지난주 한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서 소셜미디어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2022년 뉴욕주 버펄로에서 10명의 흑인을 살해했던 총기난사범이 소셜미디어의 인종차별 관련 게시물에 탐닉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진 점을 거론하며 그 해악을 강조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관대하고 진보 색채가 뚜렷한 뉴욕이 소셜미디어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지사뿐만 아니라 주 사법 당국, 최대 도시 뉴욕시장까지 소셜미디어와 각개전투를 벌이며 십자포화를 퍼붓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진보 정당 민주당 소속이지만,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양산되면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호컬 주지사는 제임스 레티샤 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과 함께 소셜미디어와 관련한 두 규제 법안을 추진 중이다. 먼저 ‘어린이를 위한 중독성 게시물 착취 방지법(SAFE)’에서는,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소셜미디어 운영업체가 18세 미만 사용자에게 중독성 있는 알고리즘 기반 게시물을 노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미성년자들이 시간순으로 나열한 간단한 게시물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소셜미디어 업체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미성년자의 기기에 알림을 보내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함께 추진 중인 ‘뉴욕 아동 데이터 보호법’은 소셜미디어 업체가 광고 목적으로 18세 미만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13세 미만의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부모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내용도 있다.
이 두 법안 모두 위반 시 최대 5000달러(약 660만원)의 벌금을 부과토록 강제성을 부여했다. 제임스 장관은 “우리의 목표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 반대자들에게)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시 차원에서도 강력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경찰 출신인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최근 “틱톡,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이 중독성 있고 위험한 기능으로 시스템을 설계해 정신 건강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면서 “담배와 총기와 마찬가지로 뉴욕은 소셜미디어를 다른 공중보건 위험 요소로 취급하겠다”며 강력한 규제 계획을 알렸다.
이런 움직임은 뉴욕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전미 주(州)의회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35주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소셜미디어가 청소년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공화당 강세 지역인 아칸소·루이지애나·몬태나, 민주당 표밭인 일리노이와 캘리포니아 등 정치색을 가리지 않고 각 주 의회에서 대거 입법에 나섰다. 뉴저지를 포함한 12주에서는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민자 문제, 총기 소유, 동성결혼 등 각종 현안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던 미국 정치권과 지역 사회는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 있어 모처럼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국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이 강한 뉴욕이 앞장서는 양상이다. 이런 흐름은 연방정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지난해 5월 비벡 머시 미국 의무총감 겸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은 ‘소셜미디어와 청소년 정신 건강-미 의무총감의 경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연방정부를 대표하는 의사직인 의무총감 명의로 발표되는 보고서는 미국 사회의 주요 보건 정책을 좌우할 정도로 권위가 있다. 보고서는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첨부해 객관성을 높였다. 가령 13~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가 ‘기분이 나빠진다’고 응답했고, 14%만 ‘기분이 좋아진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소셜미디어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경우 뇌 발달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소셜미디어가 청소년 정신 건강을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의 위기의식은 31일 워싱턴 DC 연방 상원이 주최한 ‘온라인 아동 안전’ 관련 청문회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청문회장에 불려나온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린다 야카리노 X CEO, 저우서우쯔 틱톡 CEO, 에번 스피걸 스냅 CEO, 제이슨 시트론 디스코드 CEO 등 테크계 거물들은 초당파적으로 이뤄지는 양당 의원들의 송곳 질문과 질책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청문회를 개최한 법사위 공화당 간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의원은 “여러분은 손에 피를 묻히고 있고, 사람을 죽이는 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몰아붙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성과도 있었다. X의 야카리노 CEO와 스냅챗의 스피걸 CEO는 공화·민주 양당이 초당적으로 입법을 추진 중인 ‘아동 온라인 안전법안(KOSA)’을 지지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법안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라인 콘텐츠에 노출돼 괴롭힘, 성 착취, 자해 등의 피해를 겪게 됐을 때, 이를 방치한 소셜미디어 기업의 책임을 물어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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