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초중고생 필독서?

곽아람 기자 2024. 2.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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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진학을 꿈꾸는 모든 초중고 학생 필독.’

신간 봉투 뜯다가 어느 책 표지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습니다. 생물학 관련 학습 만화인데, ‘과학 만화’가 아니라 ‘교양 의학 만화’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더군요.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학생 대상 의대 진학반이 유행이라더니, 자녀를 의대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들의 심리를 겨냥해 만든 광고 문구인가 봅니다. ‘의사가 되고 싶은’이 아니라 ‘의대 진학을 꿈꾸는’이라는 표현을 택한 것부터가 수험생용 책으로 포지셔닝하겠다는 의도이겠죠. 해외 과학자와 만화가 등이 협업해 쓴 교양서가 한국 사회에 번역돼 소개되면 의대 진학용이 되는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는 사자성어가 생각나 잠깐 웃었습니다.

어린이·청소년책을 살피다 보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욕망이 읽혀 서글플 때가 있습니다. 욕심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그 지향점이 지나치게 세속적인 성공에만 맞춰져 있을 때요. 유아들을 위한 그림책은 그렇지 않지만 학령기 이후 아동·청소년 ‘필독서’들을 보면 아이가 현명하고 온화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책보다는 명문대에 보내거나,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직업을 갖게 하자는 목표의 책들이 더 눈에 많이 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국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문제의식과 연관돼 있을 겁니다. 독서를 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학에 가기 위한 ‘스펙’을 만들거나 시험에서 몇 문제 더 맞히기 위한 ‘진학용 독서’를 하는 것이 책 읽기의 궁극적인 목표로 끝나 버린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겠죠. 책의 힘은 결국 독자에게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데 있을 텐데요. ‘품성이 훌륭한 어른을 꿈꾸는 모든 초중고 학생 필독’ 같은 문구가 적힌 책을, 언젠가 서점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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