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 눈물 젖은 초코파이 드셔보셨습니까?
반세기 스테디셀러… 초코파이 속 별별 사연
포르투갈 국가대표 골키퍼 조제 사(José Sá·31)에게 얼마 전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초코파이’였다. 한국인 팬이 보낸 것이었다. 그가 우리나라 축구 선수 황희찬의 소속 팀(울버햄프턴) 입단 동기이자 절친한 동료이기 때문이다. 초코파이는 싹수 있는 친한파(親韓派)에게 보내는 표창이기도 한데, 이 문화는 박지성 선수가 영국 무대에서 뛰기 시작할 무렵 생겨났다. 손흥민 선수의 소속 팀 토트넘이 2년 전 단체로 내한했을 때도 어김없이 초코파이가 전달됐고, 손흥민의 태클로 발목을 다친 안드레 고메스(에버턴) 역시 초코파이 박스를 받았다. “먹고 힘내라”는 뜻이었다.
외국 선수에게 초코파이를 건넨다는 건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는, 끼니 거르지 말고 다니라는 한국인의 정(情)을 드러내는 행위다. 직경 7㎝에 무게 30g 남짓한 둥근 과자, 적당히 달콤하고 먹으면 배도 부른 ‘국민 간식’이니까. 그 자체로 사람 간의 온정 같은 것을 상징하는 흔치 않은 군것질거리.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 통계정보에 따르면, 초코파이는 지난해에도 국내 소매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파이 부문 1위. 국내 점령에 이어 60여 국으로 뻗어나가 세계 무대를 휘젓는다. 올해로 탄생 50년, 전성기는 현재진행형이다.
◇1974년 4월생, 성장해 ‘월클’이 되다
떡잎부터 달랐다.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던 선수였으니까. 당시 동양제과(현 오리온) 연구소 직원들은 한국식품공업협회 주관으로 구미(歐美) 선진국을 순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한 카페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문파이·Moon Pie)를 맛본 뒤 미뢰를 홀리는 강렬한 충격에 휩싸였다. 귀국해 2년간 개발에 매달렸다.
1974년 4월, 초코파이가 태어났다. 카스텔라·단팥·크림 등 비슷비슷한 맛으로 점철돼 있던 한국 시장에 초콜릿과 마시멜로라는 새로운 판도를 열어젖힌 것이다. 누적 매출 7조원. 460억개가 팔렸다. 줄 세우면 지구 130바퀴를 돌 수 있는 양이다.
처음엔 개당 50원이었다. 라면 한 봉지가 20원 할 때다. 초코파이는 빵이 아니다. 파이, 그러니까 과자다. 과자치고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잘나갔다. 맛있으니까. 수요가 급증해 연 매출 규모가 1977년 17억원, 1978년 26억원, 1979년 83억원, 1980년 122억원으로 뛰었다. 1996년에는 제과 업계 최초로 단일 제품 월 매출 50억원을 넘겼다. 경쟁자가 나타났다. 1978년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 1986년에는 해태제과, 1989년에는 크라운제과가 초코파이 라인업에 뛰어들었다. 이제 대결은 숙명이었다.
◇초코파이 對 초코파이, 승자는?
상표부터 부딪쳤다. 크라운제과는 ‘쵸코파이’로 점이라도 하나 더 찍었으나, 롯데는 아예 똑같았다. 이름도 맛도 모양도 비슷하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오리온은 “롯데 측의 상표등록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초코파이는 상표로서 인식되고 있다기보다는 원형의 작은 빵과자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지칭하는 명칭”이며 “초코파이는 원고가 창작한 조어임에 상관없이 희석화돼 해당 상품의 보통명칭 내지는 관용표장이 돼 상품의 식별력을 상실했다”고.
이렇게 초코파이는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는 ‘보통명사’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본의 아니게 국민 상호가 돼버린 셈이다. 억울한 오리온,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情’이 필요했다. 1989년 도입했으나, 이제 본격적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정 마케팅’에 집중했다. 2011년 지상파 TV 광고로는 처음으로 2분짜리 영상을 광고로 내보냈다. 거의 장편영화에 해당하는 수준.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기에 15초는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가족·친구·이웃의 가치를 앞세우는 전략은 적중했다. 단순 과자가 아니라 ‘마음’의 징표로 인식된 것이다. 관련 논문까지 나올 정도로 독특한 사례로 손꼽힌다. 현재 초코파이 시장에서는 원조가 승기를 잡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출시 50년을 맞아 고객 보은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님·부처님, 초코파이 좀…
초코파이가 가장 존귀한 곳은 바로 군대다. 정확히는 신병 훈련소.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성당과 교회와 절을 오가던 기억은 남자들에게 흔하다. 짬밥을 아무리 먹어도 허기지는 곳.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초코파이를 하나 더 준다는 소문이 들리면 빠른 태세 전환으로 배교(背敎)하던 사내들. 주한 미군에게도 초코파이는 특별한 맛인 듯하다. 이제는 유명한 밈(meme)이 된 영상이 있다. 2013년 열린 한국어 웅변대회, 리샤드 호르네 소위가 외친다. “지금도 이 초코파이를 보면 13년 전 나의 카투사였던 최가 생각납니다… 눈물 젖은 초코파이, 드셔보셨습니까?”
왜 초코파이는 눈물에 젖어 있는가. 쉽게 당 떨어지는 곳이고, 너무 춥기 때문이다. 외부와 단절돼 겪어야 하는 황당한 고독과 서러움 때문이다.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다. 가수 이승기는 군복무 당시 “왜 군인이 단것에 환장하는지 피부로 느낀다”며 “목사님 뒤에 쌓여 있던 초코파이를 장발장 뺨 때릴 정도로 훔쳐 먹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재’라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털어놓을 초코파이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다. “초코파이 받고 너무 좋아서 화장실 앞에서 손 벌벌 떨면서 봉지 까다 떨어뜨린 거 얼른 주워먹던 생각이 나네요.”
◇북한에서 끓여먹던 ‘초코파이죽’?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인민군 송강호가 초코파이를 입에 까 넣으며 말한다. “우리 공화국에선 왜 이런 걸 못 만드나 몰라, 응?” 그때 남한 병사 이병헌이 말한다. “형, 안 내려올래? 초코파이 배 찢어지게 먹을 수 있잖아.” 그러자 씹던 초코파이를 정색하며 손바닥에 뱉는 송강호.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기야. 알갔어? 그때까진 어쩔 수 없이 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그러곤 뱉었던 초코파이를 다시 입에 쏙 넣는다.
개성공단에서는 2004년부터 북한 근로자들에게 초코파이를 간식으로 지급했다. 초코파이를 받으려 잔업을 자청할 정도였다. 장마당에 흘러나와 당시 개당 1500원 수준에 거래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귀한 걸 어찌 한입에 털어넣겠는가. 북한 주민들은 양을 늘리려 초코파이를 뜨거운 물에 넣고 죽처럼 녹여먹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도찮은 시장경제에 북한 측이 긴장했고, 2015년 북한산 초코파이 ‘쵸콜레트 단설기’를 대신 공급하면서 개성공단에서 초코파이는 자취를 감췄다. 반응은 냉담했다. 맛이 별로였다고. 그리하여 2017년 총상까지 감수하며 판문점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씨는 치료 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초코파이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초코파이 평생 무료 구매권’이 제공됐다. 대한민국의 정.
◇예술이 된 초코파이
남북을 묶는 하나의 맛, 김정은의 체중 증가에도 한몫했을지 모를 그 맛. 초코파이는 모순과 묘한 평화의 상징이 되면서 예술 작품으로도 변주돼 왔다. 재미(在美) 화가 채진주(41)씨는 북한 ‘노동신문’을 구해 정중앙에 물감 대신 초콜릿을 녹여 초코파이를 그렸다. 체제의 중심을 파고든 과자. 2014년 뉴욕에서 기획전 ‘북한의 초코파이제이션’을 연 채씨는 CNN 인터뷰에서 남한의 흔한 과자가 바로 윗동네에선 값비싼 암거래 품목이 된 “비극적 현실”과 더불어 “초코파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물로서 초콜릿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18년 부산비엔날레를 달군 화제의 작품은 단연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였다. 부산현대미술관에 초코파이 10만개를 둥그렇게 쌓아놓고 누구나 마음껏 먹도록 한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어딘가에서는 일부만 접할 수 있는 전유물의 상징”을 제한 없이 나눠먹는 행위를 통해 남북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 것. 천민정 작가는 “예술에는 치유의 측면이 있다”면서 “초코파이의 달콤한 맛과 향으로 사람들을 달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은 情, 중국은 仁, 일본은 美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고 한문 모르는 아이들은 간혹 ‘아홉’으로 읽곤 한다는 ‘情’. 중국에서는 ‘仁’이다. 오리온 측은 중국 사람들이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2008년부터 포장지에 이 글자를 삽입하고 있다. “소비자의 공감을 일으켜 매출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일본 포장지에는 맛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가 들어간다. 한·중·일, 각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초코파이에 담겨 있다.
러시아에서는 전 대통령(메드베데프)이 간식으로 즐겼고 망고·체리·양귀비 등 초코파이 종류만 14개. 베트남에서는 제사상에 올라갈 정도로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모두 오리온이 꽉 잡고 있는 국가들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롯데가 2004년 현지 회사를 인수하며 먼저 치고 나갔다. 종교적 이유로 소고기를 먹지 않는 입맛을 고려해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마시멜로를 개발했다. 시장점유율 약 70%. 현지화에 성공하며 매출도 2022년 650억원에서 지난해 760억원으로 뛰었다. 고속철 기내식 메뉴에도 포함됐다. 롯데웰푸드 대표가 올해 첫 해외 방문지로 인도를 택한 이유다.
초코파이는 지금 명실상부 ‘K푸드’의 전령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인기의 증거는 짝퉁의 등장. 2015년에는 대놓고 ‘Choco Pie’라는 제품을 출시해 동남아 및 인도까지 수출한 베트남 제과 회사도 있었다. 2018년 베트남특허청(NOIP)이 현지 업체의 상표권 침해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짝퉁 업체들은 ‘Choco Pai’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웃지 못할 배짱 장사를 해오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오인 소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치를 하고 있긴 하나 아무래도 맛이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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