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미국은 어차피 MAGA다”
고착화할 ‘미국 최우선’ 시대, 한국은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
미국 대선을 9개월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유세에 시동을 걸었다. 많은 한국인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세계가 혼돈으로 빠질까 걱정하는 반면 바이든이 재선될 경우 탄탄한 동맹과 안정이 유지되리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서울을 찾은 미국의 한 정치권 인사는 “한국인들의 이런 이분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위험한 발상”이라며 “미국의 이익만 보고 가는 바이든이 트럼프만큼 MAGA 지향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매가’라고 읽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트럼프 선거구호이지만, 바이든의 정책과 공약 또한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트럼프의 과격한 캐릭터가 유발하는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그가 밀어붙인 미국 최우선주의 정책 중 많은 부분을 바이든이 물려받아 강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대해 트럼프가 부과한 높은(평균 약 20%) 관세를 바이든은 인하한 적이 없다. 오히려 동맹국까지 압박해 중국 봉쇄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무력화시킨 TPP·나프타 등 다자 무역협정도 회복시키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막말을 쓰지 않을 뿐, 바이든은 사실상 트럼프가 추진한 ‘아메리카 퍼스트’의 후계자”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한국에 방위비를 전보다 여섯 배 더 분담하라며 압박했다. 너무 과격하다 보니 관철되진 못했다. 바이든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분담금을 14% 올리고 “2004년 이후 최고 인상률”이라고 홍보했다. ‘바이든의 정책은 두뇌를 장착한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평가(포린폴리시)가 들어맞는다. 한미 FTA를 파기하겠다는 트럼프의 압박에 한국 정부는 FTA를 간신히 살려두는 대신 화물차의 관세 조기 철폐는 포기했다. 바이든 정부는 높은 화물차 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트럼프 때의 결정에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철강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을 미국에서 자급자족하겠다는 방안으로 가득하다.
트럼프 1기 때 무역대표부 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지난해 책 ‘자유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 <공짜무역은 없다>로도 번역)’를 냈다. 미 통상 정책의 목표를 미국 산업·근로자 부양에 집중해야 한다고 촘촘한 논리로 주장한다. 트럼프는 이 책 수천권을 사서 캠프에 공부하라고 보냈다는데, 민주당 의원들까지도 ‘통상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동의하며 밑줄 치며 읽고 있다 한다.
라이트하이저 주도로 2019년 미국·캐나다·멕시코의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가 사실상 파기됐을 때 미 하원은 385대41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를 통과시켰다. 트럼프와 앙숙이던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민주당)까지 동참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극도로 분열된 미 의회를 뭉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의제다. FT는 “트럼프 당선 후 민주당은 미 노동자들의 분노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바이든은 더 이상 세계화를 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초당적 MAGA의 원인을 분석한다.
바이든은 얼마 전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 통과를 호소하면서 “이 지원금으로 애리조나산(産) 방공 미사일을 만들고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 등 전국 12주에서 포탄을 제조하게 된다. 결국 미국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 했다. ‘미국 우선’으로 모든 이슈를 몰고 가는 트럼프식 논리구조와 닮았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나 바이든, 혹은 다른 누가 오더라도 앞으로 더 강력한 미국의 MAGA가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기적인 미국’ 시대에 대응해 한국은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할까. 뭔가를 포기하는 대가로 나머지를 지켜야 한다면 우선순위는 정해 놓았나. 지금 가장 치열히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같은 문제로 다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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