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집에서 빵 터졌다… 빠져든다, 아재개그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동네 백반집에서 빵 터졌다
유머 감각에 자부심 가집시다
동네에 있는 백반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날마다 바뀌는 점심 메뉴로 주변 직장인들의 구내식당 노릇을 하고, 근처 택시 영업소의 기사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택시 기사로 보이는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뭘 좀~ 무우(먹어) 볼~까?”
식당 사장은 익숙하다는 듯 반응했다. “뭐 드려?” 기사가 “아무거나”라고 대답하자 사장은 오늘의 메뉴를 권했다. “청국장?” “아니.” “된장찌개?” “아니.” “그럼 김치찌개?” “아니.”
잠시 후 그의 앞에는 보글보글 김 나는 청국장이 놓였다. 하지만 기사는 아무 대꾸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사장은 말했다. “맛 괜찮지?” 그러자 기사는 대답했다. “맛있네.” 아니, 이 광경이 웃기는 것은 나뿐인가! ‘아무거나’라고 말하고도 아무거나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손님, 그러나 그가 가장 맛있게 먹을 음식은 청국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식당 주인. 마치 시냇물 흐르듯 이어지는 상황이 잘 짜인 만담 한 편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서서히 아재 개그에 빠져들게 되는데. (*스포일러)
며칠 후에는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동네 안과 의원에 갔다. 툭하면 찾아오는 나를 의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진료하고는 말했다. “스마트폰 보고, 컴퓨터 보고, 일 많이 하죠?”
“네.” “나는 일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해. 왜 그럴까요?” “음… 그래야 병원 오니까요?” “하하, 그렇죠.”
순간 삐져나오는 웃음을 단속하며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아재 개그에 스며들어 버렸다는 것을.
얼마 전에는 집 싱크대 교체 공사를 했다. 생각보다 큰 공사라 오전부터 초저녁까지 싱크대 업체 사장과 집에 머물러야 했는데, 우리 엄마뻘 되는 사장은 입담이 대단한 분이었다. 망치질하면서 딸의 기나긴 반항기를 읊고, 드릴을 돌리며 자기 인생사와 작업 철학을 설파했다. 평소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기꺼이 경청했고, 기사 역시 즐겁게 작업에 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장은 단골인 듯한 식당에 전화해 식사를 주문했다. 신속하게 도착한 배달 기사에게 사장은 물었다.
“아니 뭐여. 번개여?” 그러자 배달 기사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뭐여. 총알이여?” “아닙니다.” “그럼 뭐여?”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프로 아재 개그꾼’으로서 웃음기 하나 없는 만담(!)을 마치고 계산을 치렀다. 거기서 ‘어흐 어흐’ 하고 볼 안쪽을 깨물며 웃음을 참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며칠 후엔 욕실 환풍기가 고장 나 사장에게 또 도움을 요청했더니, 집에 온 그는 싱크대를 먼저 훑어보며 말했다. “아니, 나 환장하겄네. 싱크대를 이렇게 깨끄다게 쓰면 워쩌겠다는 거여.” 그 말에 ‘제가 그렇게 깨끗하게 썼나요?’라고 반응하려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나도 아재 개그 할 줄 알잖아!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대꾸했다. “워낙 설치를 잘해주셔서. 막 써도 새것 같아서 큰일이네요.” 그러자 사장님은 “아이고, 나 웃겨 죽겄네!” 하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모습에 벅찬 만족감을 느끼는 사이, 환풍기 고장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이후 아재 개그에 단단히 중독된 나는 아재 개그를 칠(!) 수 있는 기회만을 노렸다. 다행히(!) 얼마 뒤 후배가 육회 비빔밥을 먹으러 가자며 문자를 보내왔다. 답장을 보냈다. “좋아! 유쾌 상쾌 통쾌하게 가보자고!” 잠시 후 당혹한 후배한테 답신이 왔다. “아…… 아재 개그….” 다시 답변을 보냈다. “아짐 개그라고 불러 줘! 난 아짐이니까!” 더 이상 후배에게서 문자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아재 개그는 남을 웃기고 싶어서 하는 개그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재 개그는 순전히 나 재밌으려고 하는 개그다. 세상을 향해 농담을 던지는 순간의 짜릿함을 자기 혼자 만끽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웃겨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나를 웃기겠다는 심정으로. 더불어 아재 개그는 불통 모양을 한 소통 개그다. 정을 나누듯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깐이나마 실소를 하다 보면 그날 하루는 조금 덜 팍팍해진다. 굳이 죽기 살기로 웃길 필요 있나요? 우리가 개그맨도 아닌데요.
그런 썰렁한 개그만 연발하다가 주변 사람 다 떨어져 나간다고? 어차피 떨어져 나갈 사람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재 및 아짐 개그는 더 잃을 것 없는 어른을 위한 개그다. 연륜과 초연함이 있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고품격 개그인 것이다. 그러니 전국의 아재 및 아짐 여러분, 우리의 유머 감각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우리는 우리의 호칭을 단 개그까지 있는 사람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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