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거절술
[아무튼, 레터]
지난 일요일에 이사를 했다. 신혼집부터 따져 보니 아홉 번째다. 이사 전후로 겪어야 하는 온갖 일들이 불편하고 지겹지만 몇 가지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솎아낼 기회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가 평소보다 수월하다. 미루고 미루다 이사를 핑계로 내다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책이 표적이 된다. 대학 시절에 읽은 책, 누가 선물한 책, 기자가 되고 나서 산 책, 출판을 담당하며 소장하게 된 책 등 우리 집에 도착한 시점과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느 페이지에 귀퉁이가 접혀 있거나, 어떤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깨알 같은 메모가 적힌 책이라면 서가에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이번에 이사할 때 약 100권을 구조조정했다. 지난 몇 년간 펼치지 않은 책, 앞으로 몇 년간 펼치지 않을 책 등 퇴출 기준이 있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떠난 뒤 책들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서가에 다시 질서를 부여하다가 깜짝 놀랐다. 같은 책이 두 권 있는 게 아닌가. 2012년 출간작이니 네댓 번 이사하는 동안 둘 다 생존한 것이다.
그 책 제목은 ‘소설 거절술’. 부제가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이다. 캐나다 소설가인 저자가 실제로 숱하게 원고를 퇴짜 맞은 좌절의 경험을 곤충학자처럼 분류해 기어코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실패도 쌓이면 성공의 재료가 된다. 이 책은 우리 집에서 몇 번이나 버려질 위기를 ‘거절하듯이’ 뚫고 살아남은 셈이다.
“안타깝게도 선생님 원고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클래식)
“농담하자는 겁니까? 장난치십니까? 어떻게 우리가 이 원고를 책으로 출간할 거라고 기대합니까?”(맹비난)
“탈락!”(간단명료)
거절의 기술은 이렇게 다양했다. 한 프랑스 편집자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읽고 “제가 아둔해서 그런지 몰라도, 주인공이 잠들기 전 침대에서 뒤척이는 모습을 서른 페이지나 묘사하신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라고 악평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르트르는 10년 가까이 갈리마르 출판사에 원고를 퇴짜 맞은 끝에 첫 소설 ‘구토’를 펴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부디 용기를 내라”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저자 세이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거절당한 일이 떠오른다. 이메일로 정중히 제안했는데 역시 세이노다웠다. 답장이 “사양합니다”로 시작됐다. 그게 “Say No(세이노)”로 읽혔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다. 우리 집엔 ‘소설 거절술’이 두 권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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