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 박대성 '현대 수묵화' 쾌거…"몇 달씩 전시 연장 새롭다 반응에 놀랐다"[문화人터뷰]
LACMA 최초 한국작가 초대전 두 달 간 연장
하버드대 등 4개 대학 영문 도록 발간 큰 수확
가나아트센터서 '해외 순회 기념'전 3월24일까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어색하게 내 작품을 서구화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작품에 다양한 기법을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작품을 현대화 하는 방법이다.”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79)화백이 지난 2년 간 독일에서 미국까지 해외 순회 전시를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2022년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개별적으로 개최한 초대전으로 포문을 연 해외 순회전은 이후 미국에서 절정을 이뤘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최초로 열린 한국 작가 초대전은 원래 일정보다 약 두 달 간 연장 전시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어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 총 8곳의 해외 미술기관에서 2023년 말까지 계속된 순회전은 유력 경제지 포브스(Forbes)서 집중 소개하며 이목을 끌었다. 특히 찰스왕센터와 메리워싱턴대에서 있었던 'Park Dae Sung: Ink Reimagined'는 30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며 박 화백의 해외 전시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이번 순회 일정의 가장 큰 수확은 다트머스대의 김성림 교수 주관 하에 4의 대학이 전시와 연계하여 발간한 도록이다. 평론집 형식의 이 도록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로, 향후 있을 박대성의 해외 활동과 한국화 연구에 좋은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소외 받던 한국 수묵화가 해외에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큰 성과다. 물론 박대성 화백의 독창적인 현대 수묵화의 쾌거다.
박대성 '법고창신(法古創新)'…현대 수묵화 쾌거
실제로 전시때 마다 관람객이 북적이고 호평이 쏟아졌다. 후드미술관 존 스톰버그(John Stomberg) 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면서 “박대성의 필법과 소재, 그리고 재료는 전통적이나, 동시에 그의 색채 사용, 작품의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박대성 작품이 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데는 그의 작업에 깃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한몫 했다.
풍경의 면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강조하여 자유자재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추상화로 대표되는 서양미술의 언어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작가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동양의 사의적(寫意的) 산수와 닮았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한국 근현대미술 평론가인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대성의 그림은 그만의 독창적이고 기백이 넘치면서 열려 있고 개념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으로 완숙하였으며, 그의 시각적 진화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등 양분화를 뛰어 넘는다”며 소산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실험적 면모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를 통해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수묵화 대가', '불국사 화가'로 화단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성공한 '수묵 덕후' 화가다.
한눈 팔지 않고 집념같은 그림 그리기는 결핍이 키워낸 불굴의 정신이다. 그는 다섯 살 때 고아가 됐고 6.25전쟁 때 한쪽 팔도 잃었다.
"갱지에 끼적끼적 병풍에 있던 그림을 따라 그리면 어르신들이 '고놈 그림 참 잘 그린다'고 칭찬을 했어요. 그게 힘이됐죠. 그래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어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 한쪽 팔의 결핍은 먹과 붓 맛에 취해 일취월장 했다.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고행의 길을 걸었다. 20대인 1970년대 국전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1969년부터 1978년까지 여덟번이나 입선을 수상했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수묵 담채화 '상림'(1979)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박대성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쪽 팔 작가'가 아닌 '한국화가 박대성'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현란한 현대미술이 판을 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순도 '100% 먹 맛'에 빠졌다. 중국 북경, 계림, 연변 등지로 화문기행(畵文紀行)을 떠나거나(1988~1989년), 실크로드(1993년, 1995년)를 방문해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이국적인 풍경을 현장에서 스케치하는 등 창작의 바탕을 넓히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특히 중국 화문기행에서 만난 중국 현대 산수의 대가 이가염의 조언에 따라 먹과 서(書) 연구에 정진했다. 현재까지도 박대성은 "명필가의 서법(書法)을 습득하고 서작(書作) 원리를 배우는 임서(臨書)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1990년대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인기를 끌던 그는 현대미술을 공부하겠다고 199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그는 깨달았다.
"먹의 번짐처럼 퍼지는 수채화 그림을 보던 순간에 가슴에 불현듯 불국사가 떠올랐고 한국으로가야겠다"며 1년 만에 보따리를 쌌다.
“히말라야부터 실크로드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고, 마침내는 뉴욕 소호에서 1년을 보내면서 현대 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의 작품에 여러 양식과 기법을 적용하고 싶어졌다. 붓을 다루는 것은 자신 있었다. 계속 해왔던 것이니까."
경주 불국사로 들어갔다. 무조건 주지 스님을 찾아 "불국사를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릴 암자 하나 내 달라"며 당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듬해인 1996년 인사동이 발칵 뒤집혔다.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산이 불국사 전경을 그린 가로 9m 세로 2.3m '천년 배산'과 가로 8m 세로 2m 화폭에 눈 내린 불국사를 담은 '불국설경'때문이었다.
그렇게 경주에 뿌리를 내린 그는 83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며 경주 솔거미술관 건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박대성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해외 순회전 고 이건희 회장 덕분
"젊은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라"는 이 회장의 선구안 덕분에 그 해 호암갤러리에서 박대성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또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 때는 대거 방한한 해외 미술계 인사들 가운데 90여 명이 그의 경주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나비 효과가 일어났다.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장의 추천으로 세계적인 컬렉터가 그의 그림을 사들였는가 하면, 그 대작이 미술관 특별실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가나아트 1호 전속작가…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전 개최
박대성 화백은 몇달씩 전시가 연장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해외 순회전에 대해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무수한 붓질로 길러온 그의 필력은 그림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무한한 가능성으로 뻗어 나갈 힘의 원천이다.
한국화의 현대화 와 세계화를 이끈 소산 박대성의 작품세계를 모은 전시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가나아트 1호 전속작가라는 자부심이다. LACMA 등 주요 기관에서 총 여덟 차례 열린 개인전의 결과 보고전으로 순회전 출품작과 신작으로 구성해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해외 미술 현장에서 찬사를 받은 박대성의 대형 산수화를 조명한다. 무르익은 필치가 그린 대자연의 풍경은 그의 독보적 미학의 정수다. 마침내 비경(祕境)의 경지에 오른 소산의 산수에서 생동하는 기운은 물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백이 전해진다.
'현대 수묵화'로 K아트의 위상을 재정립한 박 화백은 정작 국내에서는 한국화에 대한 푸대접이 아싑다며 쓴소리를 냈다.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화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수묵화가 내팽겨졌어요. 대학에서도 한국화과가 없어지고 있고 교과서에도 동양화, 수묵화가 없어요. 현대미술도 중요하지만, 선조들이 물려준 좋은 문화유산인데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했으면 좋겠어요."
해외 화단에서 주목한 '소산 수묵화'의 독창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전시는 3월24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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