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120번 하면 1년, 무의식 입력 땐 저절로 행동”
새해 작심삼일 그만, 금주·운동할 결심 체험기
지난달 19일 서울 도심의 한 대형서점 문구 코너에서 만난 김형민(24)씨는 다이어리를 고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정점을 찍은 뒤 다이어리를 사려는 이들이 확연히 줄어 여기저기 50% 할인 표시가 붙어 있었지만 여느 2030세대처럼 형민씨도 ‘갓생(God+生·부지런하고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을 다짐했다. “새해잖아요.” 형민씨의 결심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누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살아갑니다. 이 불안감을 해소하려 달리죠. 추동(drive)이란 심리입니다. 추동이 새해를 기폭제 삼아 발진하면,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을 엔진 삼아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향해 우사인 볼트처럼 내달리는 겁니다.”(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모두에겐 시간적인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나를 분리하고 동기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새 출발 효과(fresh-start effect)라고 하죠. 새해는 메가톤급 랜드마크입니다. 놓치면 ‘올해 폭망 아니냐’며 불안해지는 겁니다.”(정수근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둘 다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그중에서도 최 교수는 인지, 정 교수는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을 작심하고 만난 건 ‘작심삼일(作心三日)’ 때문이다. 작심삼일은 한자 문화권에서 우리나라만 쓰는 말이다.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 즉 고려 시대의 국가 정책이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뒤집어졌던 상황을 패러디한 말이다. 미국의 시장 분석 기관인 통계브레인조사연구소(SBRI)에 따르면 새해 결심에 나서는 사람은 45%, 그중 성공할 확률은 8% 정도다. 바꿔 말하면 92%가 실패한다. 형민씨는 다이어리에 ‘금연·금주·다이어트·학원’ 등의 계획을 빼곡하게 쓸 거라고 했다.
Q : 왜 작심삼일이 되나요.
A : “형민씨에게 연락하고 싶네요. 너무 거창한 계획 아니냐고요. 그동안 삶의 패턴이 그렇게 세팅돼 있지 않다면 의지만으론 해결할 수 없어요. 목표를 세울 때는 ‘비용(cost)’을 산출하고 ‘비용 편익(cost-benefit)’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눈앞의 편익(benefit)에만 관심을 쏟으면 비용에 굴복하기 십상입니다. 인간에겐 당장의 이익을 장래의 유익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최) A : “새로운 습관 형성에는 반복이 필요한데 즉각적 보상이 따르는 안 좋은 행동을 줄이는 게 쉽지 않고, 보상이 지연되는 좋은 행동을 반복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의도적인 행동의 선택엔 대뇌피질의 전전두피질이 관여합니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죠. 반면 습관적인 행동은 자동적·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즉 쉬운 행동이란 거죠.”(정)
두 교수는 그러면서 다이어트와 ‘한잔’을 예로 들었다.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뒤 다이어트라는 새해 결심과 냉장고 속 맥주 들이켜기 중 어느 게 품이 적게 들면서도 행복하겠나요.” 최 교수는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면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가 생겨 판단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엔 작심삼일이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도 “미래 내 의욕이 지금의 내 의욕과 동일할 거라고 생각하는 투사 편향(projection bias) 또한 작심삼일의 주된 원인”이라고 짚었다. 형민씨는 어느 쪽을 택할까. 맥주일까, 다이어트일까.
Q : 실패할지언정 작심은 반복해야 할까요.
A : “새해 목표를 세우는 건 자기 향상 과정의 시작점입니다. 작심삼일을 120번 하면 1년이 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성장할 기회도 많아지는 셈이죠.”(최)
일본의 뇌과학 전문가인 이시우라 쇼이치는 작심삼일을 넘어 30일간의 지속적인 반복, 즉 ‘작심삼십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일정 기간 의식적으로 반복된 행동을 해야 하고, 그래야 무의식에 입력돼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Q : 그렇다면 작심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 “작고, 실현 가능하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더 행복해지기, 부자 되기, 20㎏ 빼기 등 모호하거나 무리한 목표는 삼가야 합니다. 목표에 근접도 못 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어요. 또 작은 목표를 이룬 뒤엔 즉각 보상을 해줘야 동기 부여가 지속됩니다.”(최·정)
형민씨를 만난 지 보름이 흘렀다. 그는 그새 작심삼일을 몇 번이나 했을까. 다이어리는 빽빽하게 채워지고 있을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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